3화
‹ ›강태호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초옥 안의 공기가 문득 얼어붙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이는 천설화였다. 그녀는 미간을 좁히며 문밖을 향해 시선을 던졌는데, 그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본 시아가 조용히 검집에 손을 얹었다. 천설화는 낮게 읊조리듯 말했다.
“왔군, 놈이.”
그 목소리에는 놀라움이나 두려움 대신, 마치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이 마침내 도착했다는 듯한 담담함만이 배어 있었다. 문짝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서늘한 검기가 문틈으로 스며들어 왔고, 그 기운은 마치 겨울 새벽의 냇물이 살갗을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초옥 안의 온기를 순식간에 앗아갔다.
콰직!
문짝이 검에 베여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이지운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어젯밤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듯 은신처의 위치를 끝내 추적해 낸 것인데, 뒤따르는 흑사방 하수인 셋을 대동한 채 부러진 문틀을 넘어서며 초옥 안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은 냉랭했고, 손에 쥔 검은 여전히 서릿발 같은 기운을 뿜어내며 검신을 타고 희미한 안개가 흐르는 듯했다. 목젖 아래로 흐르는 상흔 하나가 그의 오랜 검로를 짐작케 했다.
“살아 있었군. 명이 긴 사내로다.” 이지운이 이도윤을 향해 내뱉은 말에는 조롱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검을 든 손목을 가볍게 돌리며 천천히 다가섰는데, 그 걸음걸이에는 이미 승부가 정해졌다는 오만함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 순간 강태호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 자식들아! 도윤이가 뭘 잘못했다고! 그놈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죽이려 드는 거냐!”
그의 목소리는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여 갈라졌고, 무릎에 힘이 다 빠진 채로도 상체만은 이도윤을 감싸려는 듯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자 천설화의 시녀 시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계월문주와의 혼약 때문일 겁니다. 이 청년이 죽으면 혼약이 파기되고, 그것으로 얻을 이가 있겠지요.”
시아의 목소리는 낮고 절제되어 있었으나, 그 안에는 이미 모든 정황을 꿰뚫어 본 자의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그 한마디에 강태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혼약…? 도윤이가, 계월문주랑…? 검선이랑?”
그는 떨리는 눈으로 이도윤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천설화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자세, 눈빛, 그리고 조금 전 시아가 검집에 손을 얹던 그 자연스러운 몸짓과 시녀들 사이에서도 느껴지던 격차 없는 무위가 하나로 꿰맞춰지며, 강태호의 머릿속에서 진실이 번개처럼 스쳤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여자가… 검선…….”
그러나 경악할 틈도 없이 이지운이 검을 뽑아 들며 달려들었다.
쐐액!
검이 강태호의 목덜미를 노리고 파고드는 순간, 이도윤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듯 깨어났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불씨가 한순간에 타오르는 것처럼, 그의 시야가 하얗게 번쩍였다.
[시스템이 각성합니다.]
낯선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며, 눈앞에 형체 없는 글자들이 명멸하듯 떠올랐다. 이도윤은 그 문구를 이해할 겨를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부러진 목검 조각을 집어 들었는데, 그 순간 몸이 마치 오랫동안 익혀온 무공을 다시 떠올리는 것처럼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끝이 땅을 밀어내는 감각, 팔꿈치가 굽혀지는 각도, 어깨의 회전까지, 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쐐액!
그는 목검 조각으로 이지운의 검을 흘려내며 몸을 비틀었다. 마치 물살이 돌부리를 피해 굽어 흐르듯 부드러운 회피였는데, 이지운의 눈썹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그 틈에 달려들던 흑사방 하수인 하나가 강태호를 노리자, 이도윤은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그 하수인의 목을 목검 조각으로 찔러 넣었다.
푹.
둔탁한 소리와 함께 뜨거운 피가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수인의 눈이 크게 벌어지더니, 목에서 끄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대로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도윤은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서 있었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떨림이 팔을 타고 어깨까지 번져 올라왔고, 사람을 죽였다는 감각이 관원으로서 배운 순박한 도의와 현대의 기억 속 법과 질서를 동시에 무너뜨리며 그의 손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내가, 사람을…….”
그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목검 조각을 쥔 손가락이 하얗게 굳어 펴지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지며, 죽어가던 하수인의 눈빛이 잔상처럼 남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천설화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이도윤이 벌어준 틈을 타 검을 뽑아 이지운의 옆구리를 깊게 그었는데, 그 동작은 마치 나비가 꽃잎을 스치듯 가벼웠으나, 이지운의 옷자락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보면 그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지운은 낮은 신음을 삼키며 뒷걸음질쳤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다음에는 이렇게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야.”
그는 마지막으로 이도윤을 노려보고는, 남은 하수인들과 함께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 그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초옥 안에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정적만이 남은 초옥 안에서, 창밖의 하늘은 핏빛처럼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노을이 짙어질수록 죽은 하수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 웅덩이도 검붉게 굳어갔다. 이도윤은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내려다보며, 그 붉은빛이 씻어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에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강태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런 이도윤의 어깨를 붙잡았고, 천설화는 검을 검집에 갈무리하며 붉게 물든 하늘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 눈빛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