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천하제일 검선의 데릴사위

4화

그날 이후 열흘이 흘러갔다. 이도윤은 계월문의 한적한 별채에서 요양하며 몸의 상처는 서서히 아물어갔으나, 사람을 죽였다는 감각만은 밤마다 그를 찾아와 잠을 앗아갔다. 창밖의 매화나무는 여전히 봉오리조차 맺지 못한 채 마른 가지로 서 있었는데, 그는 자주 그 가지를 바라보며 어쩐지 자신의 처지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겨울바람이 창호지를 스치는 소리마다 그날 밤의 칼끝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고, 그럴 때면 이도윤은 이불깃을 움켜쥔 채 숨을 죽였다. 그런 그를 곁에서 돌본 이들은 천설화의 네 시녀였다. 작약은 매일 아침 죽을 끓여 나르며 짓궂은 농담으로 그의 어두운 표정을 풀어주었는데, 오늘도 죽 그릇을 든 채 방문을 열어젖히며 “공자님, 이렇게 누워만 계시면 계월문 담벼락에 이끼가 먼저 자라겠습니다”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홍하는 말없이 그의 옷을 손질하며 얼굴을 붉히곤 했는데, 바늘을 놀리는 손끝이 유난히 조심스러워 옷깃 하나를 여미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시아는 그가 겪은 일을 침착하게 되짚어주며 “살인이 아니라 지킴이었습니다”라는 말로 그를 다독였는데, 그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어 이도윤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영영은 그저 곁에 앉아 천설화의 흉내를 내며 그를 웃게 만들려 애썼는데, 문주의 나지막한 어조를 흉내 내다가 스스로 웃음을 터뜨려 방 안의 분위기를 한결 가볍게 만들곤 했다. “공자님, 오늘은 낯빛이 한결 나아지셨네요.” 작약이 죽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도윤이 나지막이 대답하며 숟가락을 들었지만, 그 손끝은 여전히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작약은 그 떨림을 못 본 척 넘어가며 죽 그릇의 온도를 손등으로 재보고는, “너무 뜨거우면 목젖이 놀랍니다”하는 시시한 말을 덧붙였다. 홍하는 옆에서 그의 겉옷 소매 끝을 매만지다가, 실오라기 하나가 풀린 것을 발견하고는 조용히 바늘을 꺼내 들었다. 그 손길이 스칠 때마다 이도윤의 팔뚝에 잠시 온기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천설화는 매일 저녁 그를 찾아와 한두 시간씩 서책을 함께 읽었는데, 등불 아래 그녀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늘어질 때마다 방 안의 공기는 한결 차분해졌다. 그녀는 그의 부친 이학주의 학식을 자주 언급하며 “그대의 부친은 검보다 붓으로 더 많은 이를 구하였다”는 말을 반복해 들려주었고, 그럴 때마다 이도윤은 서책의 글자들 사이로 부친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으나 그 얼굴은 언제나 흐릿하게 흩어졌다. 천설화는 그런 그의 눈빛을 알아채고도 굳이 캐묻지 않았는데, 다만 서책의 다음 장을 넘기며 “아는 것과 기억하는 것은 다른 법입니다”라고 나지막이 덧붙일 뿐이었다. 이도윤은 그 말들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정체성—순박한 관원과 현대의 기억이 뒤섞인 자신—을 다시 세워가고 있었으니, 그 밤들은 상처를 꿰매는 시간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다시 짜맞추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관아에서 파견된 서리가 별채로 찾아와 딱딱한 목소리로 문서를 내밀었는데, 그의 차림새는 관복 위에 눈발을 그대로 뒤집어쓴 채였고 걸음걸이에는 급한 기색이 없어 오히려 그 무심함이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이도윤은 무공을 잃고 몸이 문약하여 더 이상 관원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관직을 박탈한다는 상부의 결정이오.” 이도윤의 손이 그 문서를 받아 든 채 굳어버렸다. 종이의 서늘한 감촉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그는 이미 관직을 통해 부친의 뒤를 잇는 것을 유일한 삶의 방향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방 안에 있던 작약과 홍하, 시아, 영영도 순간 말을 잃고 서로의 얼굴을 살폈으나,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제가, 더는 필요 없다는 말입니까.” 서리는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섰고, 별채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 소리가 방 안의 침묵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는데, 작약이 조심스레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 했으나 이도윤은 이미 그 손길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문서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늦겨울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는데, 그 눈발이 아직 맺히지도 못한 매화 봉오리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바람은 잦아들었다가 다시 불어와 마른 가지를 흔들었고, 그 흔들림이 마치 봉오리조차 피우지 못한 나무의 흐느낌처럼 보였다. 이도윤은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문서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지켜온 삶의 한 조각이, 이렇게 종이 한 장으로 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무력하게 만들었으니, 그의 손끝에서 문서의 귀퉁이가 조금씩 구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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