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골목 끝의 틈은 사람 하나가 겨우 몸을 비틀어 들어갈 정도였다.
어깨가 벽에 끼일 정도로 좁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숨을 참고 몸을 비틀어 밀어 넣었다.
돌 표면이 옷을 긁으며 지나갔다.
가슴팍이 벽에 눌려 숨이 턱 막혔다.
그 순간에도 뇌 한구석에서는 생각이 돌아갔다.
여기서 끼이면 죽는다.
정말로, 물리적으로 끼여서 죽는다.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장면인데, 지금 내가 그 안에 있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웃을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반대편으로 튀어나오자 좁은 뒷골목이 이어졌다.
습기 찬 냄새, 곰팡이와 하수구가 뒤섞인 그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밑에 물웅덩이가 있었는지, 발을 디딜 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닥은 미끄러웠고, 몇 번이나 발목이 꺾일 뻔했다.
뒤에서 박태식의 목소리가 여전히 들렸다.
"어디 갔어! 이 새끼 어디 갔냐고!"
목소리가 벽을 타고 울려서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먼 것 같기도 했다.
그 애매함이 오히려 더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거리는 조금 벌어진 것 같았다.
숨을 헐떡이며 벽에 등을 붙였다.
차가운 콘크리트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 냉기가 오히려 반가웠다.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손에 든 권총을 내려다봤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총구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눈에 보였다.
이 물건이 방금 사람의 몸에 구멍을 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쇳덩어리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정민혁의 얼굴이 계속 눈앞에 떠올랐다.
복부를 감싸던 손, 손가락 사이로 스며 나오던 그 검붉은 것.
그 색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현실감이 없어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는 색.
"내가, 사람을."
말이 끝맺어지지 않았다.
목구멍이 잠겨서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말하려 해도 같았다.
'사람을 쐈다'는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마치 그 문장을 완성하는 순간 진짜 일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몸이 스스로 그걸 막고 있는 것 같았다.
토할 것 같았다.
실제로 몸을 접고 헛구역질을 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위장이 뒤틀리는 느낌은 진짜였다.
눈물이 찔끔 났다.
슬퍼서 나는 눈물이 아니었다.
몸이 그냥 반사적으로 짜낸 액체 같은 것.
그런데도 감각은 계속 작동했다.
뒷골목의 구조, 다음 갈림길까지 육 미터, 그 너머 큰길로 이어지는 통로.
마치 뇌의 일부가 나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계산을 계속하는 것 같았다.
왼쪽 벽에 붙은 낡은 배전함, 그 아래 쌓인 폐지 더미,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계단.
그 정보들이 필요도 없는데 자꾸 눈에 들어와 박혔다.
그게 오히려 더 무서웠다.
나는 지금 사람을 쐈는데, 내 몸은 다음 도주로를 계산하고 있다.
이게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일까.
정상이 아니라면, 그럼 나는 뭐가 된 걸까.
그 질문에 답을 낼 수 없어서, 나는 그냥 그 질문을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 그걸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다각.
이번엔 방향이 달랐다.
박태식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걸음.
가벼운 발소리, 규칙적인 리듬.
조급함이 없었다.
오히려 여유가 느껴지는 걸음이었다.
박자가 너무 일정해서, 사람이 걷는 소리라기보다 메트로놈 소리 같았다.
순간 몸이 다시 굳었다.
권총을 꽉 쥐었다.
손끝이 하얗게 변했다.
숨을 죽이고 벽에 몸을 더 밀착시켰다.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상대가 그 소리를 듣고 위치를 알아챌까 봐 겁이 났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골목 어귀에서 실루엣이 나타났다.
키가 크지 않은, 가느다란 체형.
검은 코트가 골목의 어둠과 뒤섞여 실루엣의 경계가 흐릿했다.
남자인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어깨의 각도가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실루엣이 가까워지면서 코트 아래 드러난 몸의 선이 여자의 것임을 알려줬다.
허리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곡선, 걸을 때마다 살짝 흔들리는 코트 자락의 무게감.
그 모든 게 조금씩 정보를 더해가며 하나의 형상으로 맞춰지고 있었다.
서 있는 자세부터 이상하게 침착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급한 것도, 놀란 것도 없는 걸음.
이 골목에 방금 총성이 울렸다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같았다.
걸음이 멈췄다.
삼 미터 거리.
어둠 속에서 얼굴이 드러났다.
젊은 여자였다.
이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눈빛이 유난히 또렷했다.
표정에 동요가 전혀 없었다.
마치 지금 이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
가로등도 없는 골목이었는데, 그 눈빛만은 이상하게 잘 보였다.
어둠에 익숙한 눈, 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어둠 속에서도 상관없다는 걸 아는 눈.
"강도윤."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이 골목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박태식 패거리도 아니고, 정민혁 쪽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대체 누가.
"누구세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골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발소리가 젖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낮게 울렸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규칙적이어서, 나는 저도 모르게 숫자를 세고 있었다.
하나, 둘.
"뒤에 두 명, 곧 여기로 옵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마치 날씨 예보를 읊는 것 같은 어조.
비가 온다는 말을 하듯, 사람이 죽으러 온다는 말을 그렇게 했다.
"그, 그걸 어떻게."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골목 어귀에서 발소리가 다시 울렸다.
다각. 다각.
박태식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쪽이야! 이쪽으로 갔어!"
등골이 서늘해졌다.
권총을 쥔 손이 다시 떨렸다.
여자의 말이 맞았다.
그 사실이 더 무서웠다.
어떻게 알았는지보다, 알고 있었다는 그 자체가 등줄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여자는 그 소리를 듣고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웃는 건지, 뭔가를 기대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이 사람은 나를 도우러 온 게 아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 사람 말고는 지금 이 골목에서 기댈 곳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따라와요."
그녀가 몸을 돌렸다.
"뭐, 뭐라고요? 누구신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질문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입에서 나오는 건 그중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구세요, 어떻게 알아요, 나를 왜, 어디로.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이 한꺼번에 목구멍에 걸려서 아무것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 세 마디가 어떤 협박보다 무겁게 들렸다.
살고 싶으면, 이라는 전제.
그 말은 곧 지금 살고 싶지 않으면 그냥 여기 있어도 된다는 뜻이었고, 그 여유로움이 오히려 이 여자가 얼마나 이 상황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골목 어귀의 발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선택할 시간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저울질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낯선 여자를 따라간다.
아니면 박태식과 마주친다.
둘 다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선택인데, 최소한 하나는 걸어볼 여지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발을 뗐다.
검은 코트 자락이 좁은 골목 벽 사이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 낯선 여자의 뒷모습 하나만 보고,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박태식의 목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저기 있다!"
타앙!
총성이 다시 울렸다.
귓가에 뜨거운 바람이 스쳤다.
머리카락 몇 올이 흩날리는 게 느껴졌다.
그게 총알이 지나간 자리라는 걸, 뒤늦게야 실감했다.
다리가 풀릴 것 같았지만, 멈추면 그대로 끝이라는 생각만이 몸을 밀어붙였다.
나는 그녀를 따라 어둠 속으로 뛰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발밑의 물웅덩이가 튀어 오르는 소리, 벽을 긁는 옷자락 소리, 그리고 뒤에서 점점 멀어지는 박태식의 욕설.
그 모든 소리가 뒤섞여 하나의 아우성이 되어 골목을 채웠다.
앞서가는 여자의 발걸음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치 이 도주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 이상한 여유가, 방금 목숨을 걸고 뛰고 있는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여자는 대체 누구고,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그리고 왜, 내 이름을 알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