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무직 전함사령관

5화

「다음 주, 저 새로운 던전 도전합니다!」라는 영상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였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제목 밑에 붙은 섬네일에서, 서은채가 평소보다 살짝 각도가 어색하게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 그것뿐이었는데도 손가락이 먼저 클릭을 하고 있었다. 영상 속 그녀는 확실히 평소보다 조금 긴장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번엔 조금 도전적인 곳으로 가보려고 해요. 5등급 게이트인데, 최근에 와이번 출현 보고가 있었던 곳이라 제작진들도 안전 대책을 두 배로 준비했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는데, 그 목소리에서 미묘한 불안이 배어 있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흔들리는 시청자 반응을 관리하려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걱정을 하고 있는 건지, 그 경계가 애매했다. '와이번이라니, 5등급이면 나한테는 아직 먼 얘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상한 찜찜함이 가슴에 남았다. 나는 그 찜찜함의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영상을 끝까지 다 보고 나서 조용히 창을 닫았다. 댓글창에는 "은채님 다치지 마세요"부터 "와이번이면 라이브로 도망치는 것도 콘텐츠지 ㅋㅋ" 같은 반응들이 뒤섞여 있었는데, 나는 굳이 그것까지 읽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나는 던전 관리국의 소란을 전혀 모른 채 매일 던전을 들락거리는 일상을 반복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냉장고를 확인하고, 남은 돈으로 최소한의 식비를 계산한 뒤, 오후에는 지하철을 타고 3등급 게이트로 향했다. 이용료 3만 원이 하루하루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는 건 여전히 속이 쓰렸지만, 아리아의 말대로라면 계속 실전을 쌓아야 시공전함의 다음 단계가 열린다고 했으니, 나는 그 조언을 믿고 매일같이 슬라임 사냥을 반복했다. "마스터, 오늘로 누적 전투 데이터가 30건을 돌파했습니다" 하고 아리아가 어느 날 알려줬다. "함포 재장전 쿨다운이 초기 대비 40% 단축되었으며, 동시 조준 가능 목표가 1개체에서 2개체로 확장되었습니다."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강해지고 있구나' 하는 실감을 느꼈다. 30건이라니, 별거 아닌 숫자 같지만 하루에 두세 마리씩 잡는 걸 감안하면 열흘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던전을 들락거렸다는 뜻이었다. 그 실감이 나에게는 지난 반년의 무기력함을 갉아먹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지만 실감은 실감이고, 현실은 여전히 현실이었다. 나는 이용료를 감당하기 위해 결국 낮에는 편의점 야간 알바 자리를 하나 구했는데, 시급 만 원짜리 알바로 던전 이용료를 벌고 다시 그 돈을 던전에 쏟아붓는 이 순환이 웃기다면 웃기고 처량하다면 처량했다. 세 시간을 일해야 이용료 한 번 낼 돈이 나오고, 그 세 시간 동안 진열대를 정리하고 폐기 상품을 체크하고 취객들 상대하다 보면, 정작 던전에 들어갈 체력은 반쯤 깎여 있었다. '이게 성장 서사인지, 그냥 자해인지 모르겠네'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슬라임을 소탕하고 시야에 SSS 등급 알림이 뜰 때마다 그 냉소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던전 안에서 나 아닌 다른 탐사자와 마주쳤다. 완전무장한 3인조 파티였는데, 방패를 든 남자와 활을 멘 여자, 그리고 뒤에서 지팡이를 짚은 후드 쓴 사람까지, 딱 봐도 손발 맞춰본 지 오래된 파티라는 티가 났다. 그들은 내가 목검 하나만 들고 있는 걸 보고 대놓고 무시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저기요, 여기 초심자 전용 던전인데 저런 장비로 오시면 위험합니다" 하고 파티 리더로 보이는 방패 남자가 훈수를 뒀는데, 나는 그냥 웃으며 넘겼다. 굳이 내 정체를 밝힐 필요는 없었으니까. 목검 한 자루로 SSS 등급을 갈아치우는 놈이라고 설명해봤자 믿어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설명하는 게 귀찮았다. 그들이 슬라임 무리와 조우해서 진땀을 빼는 걸 옆에서 지켜보다가, 나는 그 틈을 이용해 다른 통로로 이동해 혼자 사냥을 이어갔다. 활을 든 여자가 화살을 세 발이나 허비하고서야 슬라임 하나를 겨우 처치하는 걸 보면서, '나도 저랬던 적이 있었나' 싶었지만 딱히 그런 기억도 없었다. 애초에 나는 처음부터 아리아라는 사기적인 보조 시스템을 달고 시작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슬라임의 움직임 패턴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고, 어느 지점에서 어떤 각도로 목검을 내지르면 아리아의 함포가 정확히 그 타이밍에 개방된다는 감각을 조금씩 몸으로 체득해갔다. 슬라임이 몸을 부풀리기 시작하는 그 반박자 전에 검을 내지르면, 함포가 개방되며 나오는 포격이 슬라임의 핵을 정확히 관통했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슬라임이 흐물흐물 무너지는 걸 볼 때마다, 나는 마치 리듬 게임에서 퍽트 노트를 연달아 맞추는 것 같은 쾌감을 느꼈다. "마스터, 방금 전투는 자원 소모 대비 성과가 지난 대비 15% 상승했습니다" 하는 아리아의 보고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치 게임 랭킹이 오르는 것처럼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그렇게 열흘 정도가 지났을 무렵, 통장 잔액은 다시 위태로운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알바비가 들어와도 던전 이용료와 월세를 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었으니까, 나는 그날도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이게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까' 하는 현실적인 걱정을 떨쳐내지 못했다. 삼각김밥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인 걸 확인하고 90퍼센트 할인가로 집어 든 게 그날의 유일한 승리였다. 시스템 속에서는 최초 기록을 갈아치우는 남자였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뒤지는 백수였다는 게, 그 괴리가 매일같이 나를 웃프게 만들었다. 'SSS 등급 헌터가 삼각김밥 할인 시간표를 외우고 있다니, 이거 누가 들으면 코미디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웃기지도 않았다. 그냥 사는 게 그랬다. 그날 오후, 나는 알바 출근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습관처럼 서은채의 채널을 확인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뭔가 확인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새 영상이 아니라 '실시간 방송 예정' 배너가 떠 있었다. 제목은 「5등급 게이트 라이브! 오늘 도전합니다」였고, 시작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후였다. '오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이상하게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지난번 영상에서 그녀가 언급했던, 와이번 출현 보고가 있었던 그 게이트였다. 나는 다급하게 스크롤을 올려 지난 영상을 다시 확인했다. 그때 그녀가 말했던 "제작진들도 안전 대책을 두 배로 준비했어요"라는 말이, 지금은 왜인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알바 스케줄을 확인했다. 하필이면 오늘 저녁 근무가 잡혀 있었고, 방송 시작 시간과 겹치는 애매한 타이밍이었다. 근무를 빼면 이번 달 알바비에서 하루치가 통째로 날아갈 텐데, 그 계산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나는 스스로가 좀 한심하게 느껴졌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데, 왜 자꾸 돈 계산이 먼저 나오는 거야.' "마스터, 오늘 예약된 던전 입장 계획이 있으셨습니까" 하고 아리아가 물었는데, 나는 대답 대신 휴대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이상한 예감이 뒷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난 열흘 동안 매일같이 SSS 등급을 갈아치우며 쌓아온 실전 감각이, 지금 이 순간 뭔가를 경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슬라임을 상대할 때 몸이 먼저 반응하던 그 감각과 비슷한, 아주 미세한 위화감이었다. "아리아, 어제 우리가 확인했던 5등급 게이트 출몰 경보 지역 있잖아." "네, 마스터. 관할청 발표 기준으로 와이번 등급 몬스터의 출현 가능성이 상향 조정된 지역입니다." "그 위치, 정확히 어디였지?" 아리아가 좌표를 읊었지만, 나는 그걸 지도로 확인해볼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냥 막연히 '설마 겹치겠어' 하는 근거 없는 낙관을 붙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결국 알바 사장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 죄송한데 오늘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못 나갈 것 같습니다..." 뻔한 거짓말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다른 선택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장님한테서 "괜찮아요, 몸조리 잘해요" 하는 답장이 곧바로 왔는데, 나는 그 배려심 있는 답장을 보면서 죄책감이 살짝 들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방송 시작 알림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그것을 누르며 침을 삼켰다. 화면 속에서 서은채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밝게 인사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5등급 게이트 도전, 시작해볼게요!" 그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활기찼지만, 나는 화면 하단에 표시된 게이트 위치 정보를 보며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그 위치가, 하필이면 내가 어제 아리아와 함께 확인했던 5등급 게이트 출몰 경보 지역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게 진짜로 겹친다고?' 나는 화면을 다시 캡처해서 아리아가 알려줬던 좌표와 눈으로 대조해봤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히 같은 지점이었다. 채팅창에서는 이미 수백 개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고, 서은채는 그것도 모른 채 카메라 앞에서 여전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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