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삼킨 영혼의 무게

2화

"몇 마리로 늘어났다는 거예요?" 내가 먼저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강민석이 태블릿을 돌려 화면을 보여준다. [열탐지 결과: 개체 8~12체 추정] 숫자가 두 배 이상이다. 속이 뒤틀린다. "보고서엔 다섯이라 했잖아요." "등록 당시 기준이에요. 던전은 살아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개체가 늘죠." 담담한 말투다. 담담해서 더 무섭다. "그럼 위험하다는 거 아니에요?" 대기실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물었다. 체격이 크고 목소리도 굵다. "오태준입니다." 뒤늦게 자기소개를 한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싶었지만, 다들 그거라도 붙잡고 싶었을 거다. 이름이라도 알면 조금은 사람 같아지니까. "위험은 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붙는 거고요." 강민석이 태블릿을 내려놓는다. "E급 던전에서 C급 인솔자 한 명이 신입 다섯을 데리고 들어가는 건, 흔한 편성이에요. 걱정 마세요." 걱정 말라는 말이 제일 걱정된다는 걸, 이때는 몰랐다. 대기실 문이 다시 열렸다. 마지막 인원이 도착한 모양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김하늘입니다." 체구가 작은 여자였다. 나이는 나랑 비슷해 보였다. 손에 활 케이스를 메고 있다. 케이스 끈이 낡아서 몇 번이나 손을 봤는지 짐작이 갔다. "원거리 딜러시네요." 강민석이 반긴다. "이번 조는 밸런스가 좋습니다. 근접 셋, 원거리 하나, 지원 하나." 지원은 누구지, 하고 둘러보니 아직 자기소개를 안 한 남자 하나가 남아 있다. 아까부터 벽에 붙어 조용히 서 있던 사람이었다. "최윤성입니다. 회복 계열이에요." 조용한 목소리다. 눈빛이 다른 사람들보다 침착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어딘가 익숙한 눈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을 겪어봤는지는 몰라도, 이런 자리가 처음이 아닌 눈빛이었다. 다섯이 모였다. 나, 박서연, 오태준, 김하늘, 최윤성. 다들 오늘 처음 만난 사이다. 생사를 함께할 사이라는 게, 아직 실감이 안 났다. "장비 다시 체크하시고, 십 분 후 출발합니다." 강민석이 말하고 나갔다. 남은 우리는 서로를 어색하게 쳐다봤다. 누가 먼저 입을 열까, 눈치를 보는 침묵이 몇 초쯤 이어졌다. "고3 때 각성했어요?" 박서연이 나한테 물었다. "여름에요. 체력측정 중에 터졌어요." "저는 봄에요. 학교 앞에서 균열 알람 뜨는 거 보다가." 각성 이야기를 하면 다들 조금씩 말이 트인다. 사람이란 게 결국 자기 얘기 하나쯤 풀어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오태준은 헌터가 되고 싶어서 재수까지 했다고 했다. 삼수는 안 했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김하늘은 부모님이 반대하는데 몰래 등록했다고 했다. 활을 잡을 때 손끝이 살짝 떨리는 걸 보니, 몰래 등록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했다. 최윤성은 아무 말도 안 했다. 표정만 보면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묻지 않았다. 다들 굳이 묻지 않는 눈치였다. 이런 자리에서는 캐묻지 않는 게 예의라는 걸, 어느샌가 서로 알고 있었다. "긴장되죠." 최윤성이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네, 많이요." "저도요. 회복 스킬 처음 실전에서 써보는 거라." 그가 웃었다. 억지웃음인 게 보였다. 나도 비슷하게 웃어줬다. 서로 억지웃음이라는 걸 알면서 웃는 것도, 나쁘지 않은 위로였다. 십 분이 지났다. 강민석이 다시 문을 열었다. "출발합니다." 관악 4구역 균열은 등산로 초입에 있었다. 입구는 검은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타원형 공간이었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불길했다. 가까이 갈수록 공기가 미묘하게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저기로 들어가는 거예요?" 김하늘이 활을 고쳐 메며 물었다. "네. 입구는 안전합니다. 안이 문제죠." 강민석의 대답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도현 씨." 그가 나를 부른다. "네?" "각성 스킬 미판별이라고 했죠." "네, 아직 정확히 뭔지 몰라요." "던전 안에서 발현되는 경우가 많아요. 위급할 때 갑자기 튀어나오죠." 위급할 때 갑자기.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위급하지 않으면 안 나온다는 뜻인가. 그럼 그 위급한 순간까지는 뭘 어떻게 버티라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준비되셨으면 들어갑니다." 강민석이 앞장선다. 박서연, 오태준, 김하늘, 최윤성이 차례로 따라 들어갔다. 나는 마지막이었다. 입구 앞에 서서 잠깐 뒤를 돌아봤다. 등산로 너머로 익숙한 서울 하늘이 보인다. 어제까지 다니던 학교도, 저 어디쯤 있을 거다. 평범했던 시간들이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그 하늘을 눈에 담고, 나는 검은 아지랑이 속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세상이 바뀌었다. 하늘은 없고, 대신 붉은 안개가 낀 동굴 천장이 있었다. 습기 찬 공기가 코를 찌른다. 흙과 피 냄새가 섞여 있다. 발밑은 축축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밑창이 진흙에 빨려드는 소리가 났다. 철벅, 철벅.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다들 붙어서 이동합니다." 강민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방금까지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대기실에서 웃던 그 얼굴은 사라지고, 눈빛만 남은 사람 같았다. 그 순간, 내 몸속에서 뭔가가 반응했다. 가슴 한가운데, 심장 바로 아래쯤 뜨거운 게 꿈틀거린다. "뭐야."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왜요?" 박서연이 나를 돌아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몸속 어딘가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향해 뻗어나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손끝이 저릿했다. 이게 각성 스킬이라는 건가, 아니면 그냥 긴장한 몸이 이상한 신호를 보내는 건가. 그리고 저 안쪽, 동굴 깊은 곳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겹으로 겹쳐 들리는 소리. 낮게 시작해서 점점 높아지다가, 다시 뚝 끊기는 식으로 되풀이됐다. "들었어요?" 최윤성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강민석의 얼굴이 처음으로 어두워졌다. 태블릿을 다시 꺼내 열탐지 화면을 확인하더니, 표정이 더 굳었다. "열둘보다 많을 수도 있겠네요." 그가 중얼거렸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동굴 안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 아니 그보다 더 크고 무거운 것이 몸을 끄는 소리였다. 가슴속 뜨거운 감각이 갑자기 더 세게 뛰기 시작했다. 마치 그 소리에 반응하듯이.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