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삼킨 영혼의 무게

5화

칼끝이 놈의 팔 안쪽, 그 다른 색 무늬를 정확히 찔렀다. "끄아아악!" 챔피언이 처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다른 고블린들과는 다른, 더 낮고 더 인간에 가까운 소리였다.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몬스터라기보다는 사람의 신음에 더 가까운 소리였으니까. 놈의 팔에서 검은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일반적인 몬스터 피의 색이 아니었다. 붉지도 초록빛도 아닌, 마치 먹물을 풀어놓은 것 같은 그 색깔에 순간 속이 뒤틀렸다. "거기가 약점이었나." 확신이 들었다. 찌른 자리에서 놈이 힘을 잃고 있었다. 붉게 빛나던 뿔의 광채도 약해졌다. [유니크 스킬 '혼식' — 조건 충족, 발동] [대상의 능력치 10%를 흡수합니다.] [대상의 스킬 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지휘의 뿔 - 중급] 스킬 정보가 시야에 떠올랐다. 지휘의 뿔. 주변 개체의 전투력을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스킬이었다. 이게 사라지면, 다른 놈들도 다시 일반 고블린으로 돌아간다는 뜻일 거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졌다. 이 팔을 계속 찌르는 것. "강민석 씨! 챔피언 약점 찾았어요! 팔 안쪽!" 내가 소리쳤다. 목이 갈라질 정도로 크게 외쳐야 했다. 안 그러면 이 아우성 속에서 들리지 않을 테니까. 강민석이 상대하던 고블린 하나를 베어 넘기고 잠깐 이쪽을 봤다. "확실해요?" "확실해요! 지금 놈 힘 빠지는 거 보이잖아요!" 실제로 챔피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지휘를 받던 다른 고블린들의 움직임도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완벽하게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방향을 잘못 잡고 헛손질하는 놈도 보였다. 이게 진짜 효과가 있구나. 확인하는 순간 등에 났던 소름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래도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박서연 씨! 지금이에요!" 나는 다시 소리쳤다. 그녀가 다친 팔을 붙잡고도 앞으로 나섰다. 단검을 쥔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저 눈빛,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간다!" 그녀가 남은 고블린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서걱. 일반으로 돌아간 놈은 아까보다 훨씬 쉽게 쓰러졌다. 방금까지 팔 하나로 방패를 튕겨내던 놈이 맞나 싶을 정도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전황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숫자는 여전히 우리보다 많았지만, 놈들의 조직력이 무너지고 있었다. 각자 흩어져서 덤비는 원래의 고블린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느낌이었다. "윤성 씨, 태준 씨 상태는요!" 내가 물었다. 최윤성이 다급하게 답했다. "지혈은 됐어요! 근데 못 움직여요!" 오태준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이 고통을 그대로 보여준다. 입술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를 악문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다. 그거면 됐다. 지금은. 나중에 미안하다고 백 번쯤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그 여유는 없다. 챔피언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놈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치명적이지 않았다. 검은 액체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끝날 상대가 아니었다. 놈이 다시 손을 들었다. 아까보다 광채가 약했지만,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한 번 더 들어가야 해요." 내가 중얼거렸다. 몸이 무거웠다. 상처가 여러 곳이었고, 혼식을 두 번이나 발동한 여파도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느껴졌다. 팔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했다. 혼식이 발동될 때마다, 뭔가 내 안에서 조금씩 갈증 같은 게 쌓이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이 힘이 더 많은 걸 원하는 것처럼. 처음 이 스킬을 얻었을 때는 그냥 능력치를 빼앗는 스킬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건, 뭔가 다른 감각이었다. 배가 고픈 것과 비슷한, 근데 배 속이 아니라 뼛속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갈증. 지금은 그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챔피언이 채찍을 다시 준비하고 있었다. "도현 씨, 제가 앞을 막을게요!" 강민석이 달려왔다. 그의 검이 챔피언의 채찍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콰앙! 두 힘이 부딪치며 강민석의 몸이 뒤로 밀렸다. 하지만 버텨냈다. 발바닥이 바닥을 긁으며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지만, 무릎이 꺾이지는 않았다. "지금이에요!" 그가 외쳤다. 나는 다시 달렸다. 놈의 팔 안쪽, 그 약점을 향해.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는데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머릿속으로 생각할 틈도 없이 발이 바닥을 박찼다. 서걱— 두 번째 타격이 정확히 들어갔다. 챔피언이 무릎을 꿇었다. 놈의 뿔이 완전히 빛을 잃었다. 붉은 광채가 꺼지는 순간, 놈의 몸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남은 고블린들이 순식간에 힘을 잃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김하늘이 남은 화살로 하나씩 정리했다. 화살통이 거의 비어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은 여전히 정확했다. 박서연이 다친 팔로도 계속 싸웠다. 이를 악물고, 단검을 놓지 않았다. 강민석이 남은 힘을 짜내 앞을 막았다. 그의 검끝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쓰러지는 고블린 숫자가 늘어난다. 넷. 이제 정말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챔피언은 아직 완전히 쓰러지지 않았다. 무릎을 꿇은 채, 놈이 다시 손을 들었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조심해요!" 김하늘이 소리쳤다. 놈의 손에서 이번엔 붉은 기운이 아니라, 검은 안개 같은 게 뿜어져 나왔다. 처음 보는 형태의 공격이었다. 지휘의 뿔이 사라졌는데도 새로운 힘을 쓴다고? 그 말은 이 안개가 놈의 진짜 힘이라는 뜻이었다. "저건 또 뭐예요?" 최윤성이 오태준을 부축하며 뒤로 물러났다. 안개가 빠르게 퍼졌다. 시야가 가려지고, 방향감각이 흐트러진다.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숨을 들이쉬는데 목구멍이 껄끄러웠다. 그 속에서 챔피언이 마지막 힘을 짜내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놈이 아직 안 끝났어요!" 내가 소리쳤다. 혼식으로 흡수한 힘도 이제 거의 다 소진된 느낌이었다. 몸이 무겁고, 시야가 흐릿해진다. 손끝이 저릿하고 무릎이 자꾸 꺾이려고 했다. 남은 고블린은 이제 둘. 챔피언과 하나. 하지만 우리 쪽도 온전한 사람이 없었다. 오태준은 못 움직이고, 박서연과 강민석은 지쳐가고 있다. 김하늘의 화살통도 거의 바닥을 보였고, 최윤성은 오태준을 부축하느라 전투에 나설 수 없었다. 이대로 끝날까. 아니, 끝나야 한다. 여기서 물러날 곳은 없었다. 검은 안개 속에서, 챔피언의 붉은 눈이 나를 정확히 향했다. 마지막 표적으로 나를 골랐다는 걸, 그 눈빛만으로 알 수 있었다. 왜 나지. 아니, 답은 뻔했다. 놈의 힘을 빼앗은 게 바로 나였으니까. 놈이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 안개 속에서 뭔가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더 크고 더 위협적인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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