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재앙님, 밥은 드셨어요?

4화

게이트가 닫히는 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알았다. 버려졌다는 걸. 철컹, 하는 금속음이 통로 끝에서 울렸다. 그 소리가 마지막이었다. 이후로는 정적뿐이었다. 60층 던전의 공기는 원래도 무거웠지만, 그 순간부터는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짓눌렸다. "저기요, 이도윤 씨 있습니까!" 무전이 다시 잡혔다. 박정호였다. "강태오 팀장이 방금 전원 철수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도윤 씨는 지금……." "혼자 남았다는 거죠." 내가 대신 말을 끝냈다. 무전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호의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는 뭔가를 말하려다 삼키는 눈치였다. "……죄송합니다. 위에서 귀환 결정서 처리가…… 아직 안 됐습니다." 결정서가 없다는 건 구조 인력을 못 보낸다는 뜻이다. 서류 한 장이 사람 목숨보다 우선인 조직. 익숙한 방식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나는 실소가 나왔다. "그럼 저는 그냥 여기 있으라는 거네요." "그런 게 아니라……." "아니면 뭔데요."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정호도 더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전 스피커 너머로 다른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선배! 안 돼요, 이러면 안 돼요!" 윤서아였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태오 선배, 결정서 지금 바로 올려요! 이러면 도윤 선배 죽어요!" "조용히 해, 서아야.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강태오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 특유의, 감정을 눌러 죽인 어조. 팀 내에서 몇 번이나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늘 그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누군가는 손해를 봤다. "후원사 쪽에서 저 개체 영상만 확보하면 돼. 이도윤은……." 말이 끊겼다. 무전이 강제로 종료된 소리였다. 그 짧은 정지음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았다. 이도윤은, 다음에 뭐라고 하려던 거지. 버려도 된다, 였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다, 였을까.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서아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남았다. "선배, 미안해요……." 울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무전이 완전히 꺼졌다. 한동안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통신기의 붉은 불빛이 꺼지는 걸 보고서야, 이게 진짜라는 걸 실감했다. 몇 번이나 다시 켜봤지만 응답은 없었다. 배터리는 멀쩡했다. 그냥 상대가 없는 거였다. 나는 랜턴을 들고 다시 소녀를 봤다. 소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공격할 기색은 없었다. 다만 경계하듯 몸을 웅크렸다. 랜턴 불빛이 소녀의 발치를 훑었다. 맨발이었다. 이 냉기 속에서 맨발로 서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그게 오히려 소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뚜렷하게 알려줬다. 배낭을 열었다. 비상식량 두 팩, 보온팩 세 개. 이게 내가 가진 전부였다. 손전등 배터리는 반쯤, 로프는 절반쯤 남았고, 물은 한 병뿐이었다. 60층에서 다시 45층까지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이 상태로는 더더욱 무리였다. 계단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이 층은 통로 자체가 무너져 있었다. 올라가는 길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괜찮아." 혼잣말이었다. 소녀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애매했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팀에 들어온 지 이 년. 늘 이런 식이었다. 위험한 구역은 항상 내 담당이었고, 성과는 늘 다른 사람 몫이었다. 이번엔 그게 목숨값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소녀가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서 어떤 감정을 읽으려 애썼다. 분노는 아니었다. 살의도 아니었다. 그저, 극도의 경계와 그 아래 깔린 허기. 눈동자는 짙은 남색이었다. 인간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투명했다. 그 투명함 속에서 뭔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두려움 같기도 했고, 오래 억눌린 무언가 같기도 했다. 나는 비상식량 팩 하나를 꺼냈다. 포장을 뜯는 손이 떨렸다.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였다. 이게 맞는 선택인가, 하는 의문이 잠깐 스쳤다. 상대는 이족보행을 하는 미확인 개체였다. 마력 반응도 있었다. 도감에도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이 존재에게 밥을 나눠주려 하고 있었다. "이거…… 먹을래?"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녀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마력이 다시 파동처럼 흘러나왔다. 바닥이 서걱, 얼어붙었다. 경계였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더 다가가지 않았다.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이 정도 마력이 인간을 향해 터진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음 조각이 될 거였다. 그런 생각이 스치는데도 이상하게 몸을 물리지 않았다. 대신 식량 팩을 바닥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천천히 와서 먹어. 안 뺏어." 소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나도 그 자리에 앉았다. 다리가 저려왔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차가운 바닥이 옷을 뚫고 그대로 살에 닿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각이 무뎌질 무렵, 소녀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바닥의 냉기가 옅어졌다. 두 걸음. 소녀의 눈이 식량 팩과 나를 번갈아 봤다. 세 걸음. 소녀는 마침내 식량 팩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 어려 보였다. 열몇 살쯤 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밀도는 이 던전에서 마주쳤던 어떤 개체보다도 짙었다. 그리고 그것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포장을 뜯을 줄 모르는 듯 손끝으로만 만졌다. 손톱 끝이 살짝 날카롭게 세워져 있었다. 그걸로 포장을 찢으려다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다 실패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포장을 대신 뜯어줬다. 소녀의 몸이 다시 굳었지만, 이번엔 공격하지 않았다. 숨을 죽인 채로 내 손끝만 쳐다봤다. "먹어봐. 맛있어." 확신 없는 말이었다. 비상식량이 맛있을 리 없다. 딱딱하고, 밍밍하고, 뭘 씹는지도 모르게 넘어가는 그런 맛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녀가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순간 그 눈빛이 흔들렸다. 낯선 감정이 스쳤다. 경계가 아니라, 놀람 같은 것. 입안에서 뭔가를 오래도록 씹었다. 삼키는 것조차 신중했다. 그러다 한 번 더 베어 물었다. 이번엔 조금 더 빨랐다. 그 순간이었다. 소녀의 등 뒤로 다시 반투명한 날개의 잔상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잔상이 이번엔 사라지지 않았다.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깃털 하나하나의 결까지 보일 정도로. 나는 숨을 멈췄다. 저게 뭔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 던전에, 도감에 없는 무언가가 눈을 뜨고 있다는 것.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