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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마석 에너지가 세상을 바꾼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사람 위에 사람 있는 구조는 변한 게 없었다. 동방에너지 마석사업본부, 그중에서도 신사업팀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 하늘은 여느 때처럼 뿌옜다. 마석 채굴 부산물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그냥 미세먼지라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해본 적은 없었다. 확인해봐야 뭐가 달라지나 싶어서였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뉴스는 십 년 전에 다 봤다. 그 이후로 바뀌는 건 내 통장 잔고와 야근 시간뿐이었다. "강태윤 씨." 박 부장이 내 자리로 다가왔을 때 나는 마석 순도 검사 보고서를 세 번째로 다시 읽고 있었다. 숫자는 세 번을 봐도 그대로였다. 순도 저하율 이십삼 퍼센트. 이걸 어떻게 포장해서 위에 올리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애초에 포장이 안 되는 숫자였다. 사장이 병원에 실려 간 지 사흘째였다. 신사업 초기부터 밀어붙이던 사람이 쓰러지자 사업 전체가 붕 떠버린 느낌이었다. 배는 가는데 선장이 없는 상황, 딱 그거였다. "부사장님이 오늘 오후 회의 소집하셨어요." "차경훈 부사장님이요?" "그럼 부사장이 둘이겠어요." 박 부장은 그 말을 남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걸음걸이가 평소보다 빨랐다. 저 사람도 뭔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회사에서 정보는 늘 부장급 이상에서 먼저 새고, 대리급 이하에서 마지막에 터졌다. 나는 그 중간 어디쯤인가에 있었는데, 요즘은 점점 뒤쪽으로 밀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보고서를 덮었다. 사장 대신 아들이 등판했다는 건 이 회사에서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차경훈은 창업주의 외아들이었고, 신사업이 잘 굴러갈 때는 조용히 지분만 챙기다가 위기가 오자 갑자기 전면에 나서는 타입이었다. 삼 년 전 사업 킥오프 때도 그랬다. 계획서에 이름 하나 올려놓고 그 뒤로 회의실 한 번 들어온 적 없던 사람이, 이제 와서 갑자기 초기 멤버 행세를 하려는 조짐이 벌써 보였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취소해야 했다. 사장이 쓰러진 게 다행일 리는 없었고, 차경훈이 나선다는 게 안심될 리도 없었다. 그냥 관성적으로 튀어나온 생각이었다. 사람은 위기 앞에서 별의별 실없는 계산을 다 한다. 나 역시 방금 사장님의 건강보다 내 자리의 안위를 먼저 계산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게 인간적이라는 건지 인간말종이라는 건지는 판단이 안 됐다. 회의실에 들어서니 이미 신사업팀 전원이 모여 있었다. 열두 명 중 여덟은 나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들이었고, 그 후배들 사이에서 백서연이 눈에 들어왔다. 입사 3년 차. 마석 등급 판정 업무로 나와 함께 밤을 새운 적이 여러 번이었다. 새벽 세 시에 순도 그래프를 놓고 서로 다른 등급을 우기다가, 결국 둘 다 지쳐서 자판기 커피를 나눠 마시며 웃던 기억도 있었다. 그때는 그냥 유능한 후배였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유능한 후배 이상이었던 적도 있었다. 정확히 뭐라 부를 관계였는지는 지금도 헷갈렸다. 사귄 것도 아니고 안 사귄 것도 아닌, 어쩌다 서로의 자취방을 오가던 반년 남짓. 그녀의 방에 내 우산이 아직 있는지, 아니면 벌써 버려졌는지 그런 사소한 것까지 궁금해질 때가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 그런 걸 궁금해하는 내가 한심했다. 결론 없이 흩어진 관계였다. 회사가 바빠졌다는 핑계로, 혹은 그런 핑계가 필요했을 만큼 서로 확신이 없어서. 서연이 먼저 거리를 뒀는지 내가 먼저 뒀는지도 지금은 헷갈렸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서연은 나를 보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옆자리 후배와 뭔가 낮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깐 눈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게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화라도 냈으면 편했을 텐데, 서연은 늘 나보다 정리가 빠른 사람이었다. "다들 앉으세요." 차경훈이 들어왔다. 슈트 핏이 유난히 좋았고, 걸음걸이엔 여유가 흘렀다. 손목에 찬 시계도 사장실 회의 테이블보다 비싸 보였다. 이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도 자기 옷차림을 신경 쓸 수 있는 부류였다. 그게 능력인지 무신경인지는 판단이 안 됐다. 아니, 사실은 판단이 됐다. 무신경이었다. 능력 있는 사람이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저렇게 여유롭게 서 있을 리가 없었다. "사장님께서 갑작스레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제가 임시로 신사업 전반을 챙기게 됐습니다. 다들 아시죠, 저 신사업 초기 멤버라는 거." 초기 멤버는 나였다. 차경훈은 사업계획서에 이름만 올려놓고 실제로는 발조차 담근 적이 없었다. 던전 관리청 협의도, 채굴 라이선스 재계약도, 순도 검사 매뉴얼 작성도 전부 이쪽 신사업팀이 밑바닥부터 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지적할 사람은 없었다. 나도 아니었다. 지적해봐야 돌아오는 건 개편안에 이름 하나 더 얹히는 결과일 게 뻔했다. "현재 마석 순도 하락 문제, 채굴 효율 저하 문제 다 알고 있습니다. 원인이 뭔지도 다 파악됐고요." 원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원인은 무리한 일정과 부족한 인력, 그리고 던전 관리청과의 협의 없이 밀어붙인 채굴 방식이었다. 그걸 밀어붙인 사람이 바로 지금 마이크를 잡고 있는 이 남자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벌인 사고를 아들이 와서 수습하는 척, 정작 수습은 아래에서 삼 년을 갈아 넣은 사람들이 다 해놓은 걸 자기 성과로 챙기는 그림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래서 말인데." 차경훈이 좌중을 둘러봤다. 시선이 나한테서 반 박자 오래 머물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시선의 온도를 감지했다.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등줄기가 살짝 서늘해졌는데, 회의실 에어컨 때문인지 그 시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조직을 좀 개편할 겁니다. 지금 이 방식으로는 사업 못 살립니다." 다들 조용해졌다. 개편이란 단어는 어느 회사에서든 같은 뜻이었다. 누군가는 나가야 한다는 뜻. 회의실 공기가 미묘하게 무거워졌다. 옆자리 신입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가 손을 멈췄고, 맞은편에 앉은 김 대리는 볼펜을 딸깍거리는 소리를 갑자기 멈췄다. "자세한 내용은 이번 주 안에 공고로 나갈 거예요. 오늘은 인사만 드린 거고." 회의는 그렇게 십 분 만에 끝났다. 십 분짜리 회의가 삼 년짜리 사업의 방향을 다 뒤집는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 회사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은 늘 십 분짜리였다. 다들 흩어지는데 나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사업 초기부터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지켜온 팀인데, 지금 이 순간 갑자기 남의 회사에 굴러온 느낌이었다. 내 명패가 붙은 자리인데도 낯설었다. 서연이 옆을 지나갔다. 눈이 마주쳤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회의실을 나갔다. 향수 냄새가 아주 잠깐 스쳤다가 사라졌다. 예전에 자주 쓰던 그 향이었는데, 지금은 그게 왜 신경 쓰이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됐다. 마음이 복잡해서 물이라도 마시려고 탕비실로 갔더니 박 부장이 먼저 커피를 타고 있었다. 인스턴트 커피 냄새가 좁은 탕비실에 진하게 퍼졌다. "태윤 씨, 요즘 소문 들었어요?" "무슨 소문이요." "이번 개편, 신사업 초기 인력 절반 정리한다는 얘기." 커피 잔이 손에서 살짝 미끄러졌다. 잡았다. 하필 뜨거운 물이 담긴 잔이라서 손끝이 뜨끔했다. "정리라뇨, 사업 진행 중인데." "그러니까요. 근데 위에서는 사업 방향 자체를 바꿀 생각인가 봐요. 그 방향 바꾸는 데 초기 멤버가 방해된다면..." 박 부장은 말을 다 끝내지 않고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저 습관도 여전했다. 항상 가장 중요한 말은 끝까지 안 하고 여운만 남기고 사라지는 습관. 그게 자기 보신인지 그냥 성격인지는 몰라도, 나로서는 그 여운이 제일 무서웠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창밖의 뿌연 하늘을 오래 쳐다봤다. 손끝은 아직도 뜨끔거렸다. 삼 년을 갈아 넣은 사업이었다. 마석 채굴 초기 단계부터 던전 관리청 승인 절차, 순도 검사 매뉴얼 작성까지 내 손을 안 거친 게 없었다. 계약서 문구 하나 고치느라 밤을 샌 적도 있었고, 관리청 담당 공무원한테 커피 사다 바치며 서류를 통과시킨 적도 있었다. 그런데 사장이 쓰러지고 사흘 만에 방향이 통째로 바뀔 판이었다. 말이 많아진다. 회사 사람들이 이렇게 소문에 민감해지는 건 뭔가 큰 게 터지기 직전이라는 신호였다. 나는 그 신호를 이번에도 무시하고 싶었지만, 손끝의 뜨끔거림이 자꾸 그 생각을 방해했다. 그날 밤 늦게까지 남아서 사업 자료를 정리하다가 메신저 알림이 떴다. 발신자는 서연이었다. [선배, 잠깐 얘기 좀 해요.] 삼 년 동안 회사에서는 서로 존댓말을 썼지만 메신저에서는 아직도 선배였다.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존댓말과 선배 사이의 그 애매한 거리감이, 우리 관계 전체를 요약하는 말 같기도 했다. [지금요?] [네. 옥상에서.] 짐을 챙겨 옥상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번 개편안에 뭔가 아는 게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얘기인지. 밤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도시의 불빛이 뿌연 공기 사이로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서연은 이미 난간에 기대 서 있었다. 예전보다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았다. 볼선이 날카로워졌고, 코트도 예전보다 헐렁하게 걸쳐져 있었다. "무슨 얘기." "선배, 이번 개편 명단 봤어요?" "아직. 이번 주 안에 나온다면서." 서연이 잠깐 나를 쳐다봤다. 표정에서 뭔가를 읽으려 했지만, 어둠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가 원래 그런 얼굴을 짓고 있었는지 판단이 안 됐다. 예전엔 저 표정 하나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짐작이 갔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 얼굴 같았다. "조심하세요, 그거만 말하려고 불렀어요." "뭘 조심해." "차 부사장님, 아버지랑 다른 방식으로 일 처리해요. 사업 방향 바꾸는 것도 진짜 사업 살리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서연이 거기서 말을 멈췄다. 뭔가 더 말하려다가 스스로 삼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뒷말이 궁금해서 조바심이 났지만, 다그쳐 물으면 오히려 입을 닫아버릴 걸 알고 있었다. 삼 년 넘게 지켜본 서연은 그런 사람이었다. "아니라 뭐." 서연은 대답 없이 옥상 문을 열고 먼저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는 그 자리에 남아서, 그녀가 왜 저런 말을 하는 건지, 그리고 왜 저렇게 아는 눈치인지 곱씹었다. 서연이 뭔가를 알고 있다면, 그건 회의실 안 사람들보다 더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정보일 텐데, 대체 어디서 그런 걸 들었는지 짐작조차 안 됐다. 밤바람에 코트 자락이 흔들렸다. 옥상 난간에 손을 짚었더니 금속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 냉기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동안, 나는 이번 개편이 단순한 인력 조정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점점 굳어지는 걸 느꼈다. 다음 날 아침, 사내 게시판에 공고가 하나 올라왔다. 신사업팀 전면 개편안. 클릭하는 손끝이 유난히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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