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회색 장발의 여자가 나를 향해 거리를 좁혀오는 동시에 그녀의 입가가 살짝 벌어지며 상어의 것처럼 뾰족한 송곳니가 드러났는데, 나는 그 순간 이게 그냥 인사 삼아 다가오는 게 아니라는 걸 반사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걸음걸이부터 이상했다. 발끝을 세우지 않고 뒤꿈치로 바닥을 짓누르며 걷는데, 그 걸음 하나하나가 마치 사냥감의 거리를 재는 짐승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싶었지만 등 뒤에는 이미 저택의 벽이 있었고, 도망칠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손끝이 저절로 차가워졌다.
"당주님, 이거 진짜 강인우 맞습니까."
여자는 하린을 향해 물으면서도 시선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목소리가 낮고 걸걸해서 보통의 메이드라는 직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메이드복 위로 드러난 팔뚝의 근육이 예사롭지 않았고, 허리춤에 매여 있는 짧은 단검의 손잡이는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묻어 있었다. 이건 그냥 시중이나 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척 봐도 실전을 겪어본 사람의 몸이었다.
"진서라, 확인 절차는 예정대로 진행해."
하린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여전히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톤이었는데, 마치 오늘 저녁 메뉴를 정하듯 아무런 감정의 기복도 없었다.
확인 절차라는 게 뭔지 나는 미처 되묻지도 못했는데, 진서라라 불린 여자가 이미 나를 향해 손을 뻗어 오고 있었다.
후웅-
손끝에서 미세한 진동이 일었다. 그녀의 손바닥 중심부에서 옅은 빛이 맺혔고, 그건 분명 술식의 전조였다. 빛의 색은 옅은 청록빛이었는데, 그 색깔만으로도 이게 결코 가벼운 종류의 술식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움직이지 마라."
진서라가 그렇게 경고하는 동시에, 손끝의 빛이 순식간에 커지며 나를 향해 짓눌러 오는 압력이 느껴졌다. 공기 자체가 무거워지는 감각이었다. 마치 목덜미 위로 누군가 손바닥을 얹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금원가는 설산가와 마찬가지로 신입 인원이나 외부인의 신원을 검증할 때 반드시 '탐지 술식'을 사용하는 관례가 있다. 이는 상대의 혈통 반응과 술식 흔적을 직접 확인해 위장이나 사칭을 걸러내는 방식으로, 명문가 사이의 매매 계약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필수 절차다. 검증 과정에서 반응이 없거나 이상 징후가 발견될 경우, 즉결 처분이 허용된다는 규정이 존재한다.
즉결 처분이라는 말을 아는 순간부터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이 여자, 지금 나한테 진짜로 뭔가를 쏘려는 거잖아. 하-. 노비로 팔려 온 첫날부터 이런 식으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 저택에 들어온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두 번째로 죽음의 냄새를 맡고 있는 셈이었다.
"저기요."
내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지만 진서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는 이 여자한테 존댓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진짜 설산가의 그 결함체 맞나."
결함체.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 화가 나기보다는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여기까지 와서도 그 단어를 또 들을 줄은 몰랐지. 설산가에서도, 이곳 금원가에서도, 나를 부르는 호칭은 결국 똑같았다.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그냥 '결함체'라는 세 글자로 나라는 인간 전체를 요약해버리는 이 세계가 참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뭐, 어쩔 수 없지. 그게 사실이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손에 있는 거 좀 치워주시면..."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이게 판단해준다."
진서라가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의 빛을 그대로 나에게 쏘아 보냈다.
캬아아악-
술식이 발동하는 소리가 귓가를 찢을 듯 울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온몸의 감각이 한순간에 곤두서는 경험은 몇 번 해본 적이 없었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소리가 마치 귓속에서 직접 울리는 것처럼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술식의 빛이 내 몸에 닿는 순간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고, 진서라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을 몇 번이나 내려다보더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다시 나를 쳐다봤다.
"뭐지. 반응이 아예 없는데."
그녀가 중얼거리며 다시 손을 들어 올리려는데, 하린이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만해, 서라."
"당주님, 반응이 없다는 건 이상 징후일 수도 있습니다. 규정상으로는—"
"반응이 없는 건 저 애가 원래 구멍이 하나도 열리지 않은 결함체이기 때문이야."
하린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심했지만, 그 안에 내 신원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는 확신이 실려 있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나를 슬쩍 쳐다봤는데, 그 시선에는 놀랄 만큼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매입 서신에 이미 다 적혀 있었어. 확인 절차는 그냥 절차일 뿐이었고. 반응이 없는 게 정상이야."
그렇다면 저 여자는 처음부터 나를 진짜로 검증하려던 게 아니라, 그냥 확실히 하기 위한 형식이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방금 내가 느꼈던 그 압박감, 죽을지도 모른다는 서늘함이 조금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사람들한테는 그냥 절차 하나에 불과했겠지만, 나한테는 목숨이 걸린 순간이었으니까.
진서라는 그제서야 손끝의 빛을 거두며 나를 향해 못마땅한 시선을 던졌다.
"쳇. 구멍 없는 결함체를 왜 굳이 데려온 건지, 나는 이해가 안 가는군요."
존댓말과 반말이 뒤섞인 그녀의 말투가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사근사근한 것도 아니고 완전히 거친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걸쳐 있는 애매한 어조였다. 아마 당주나 하린 앞에서는 최소한의 격식을 차리려고 하는데, 원래 성정이 그걸 못 이겨내고 반말이 자꾸 삐져나오는 모양이었다.
"당주님 명령이니 따를 뿐이지, 이딴 애를 왜..."
"진서라."
하린이 한 번 더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진서라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 반응 속도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저 거친 여자가 이렇게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상대라니 하린이라는 인물의 위치가 대체 어느 정도인지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 나를 향해 즉결 처분 운운하던 여자가 이름 한 번 불리는 것만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얼어붙는 걸 보니, 이 저택 안에서 하린의 말이 갖는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강인우, 안으로 들어와. 오늘 저녁에 당주님께서 직접 너를 부르실 거다."
하린이 몸을 돌리며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제서야 이 저택의 진짜 당주는 하린이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 즉 서신으로만 언급되던 인물이라는 걸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은 하린과 진서라, 이 둘뿐인데 벌써부터 등장인물의 위계가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뒤엉키는 느낌이었다.
왜 당주가 나를 직접 부르는 걸까.
단순한 노비 매입이라면 이런 절차까지 거칠 필요는 없을 텐데. 매입 서신 하나로 신원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상했고, 확인 절차라는 걸 굳이 형식적으로라도 거치는 것도 이상했다. 이 사람들, 나를 단순히 부려먹을 노비 취급하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뭔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따라 걷는 사이, 발밑에서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의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저택 내부는 생각보다 어두웠고, 벽을 따라 걸린 초상화들의 눈빛이 전부 나를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져서 괜히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때 진서라가 뒤에서 나를 향해 낮게 말을 건넸다.
"어이, 결함체."
돌아보자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마치 상품의 가치를 매기는 상인의 눈빛과 닮아 있어서, 나는 새삼 내가 이곳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다시 실감했다.
"당주님이랑 아가씨가 너한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걸 보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괜히 아가씨한테 이상한 기대는 품지 마라."
"기대라니, 무슨 기대를 말씀하시는 건지..."
"됐고."
진서라는 내 말을 딱 잘라 자르며 시선을 다시 하린이 사라진 복도 저편으로 돌렸다. 그 짧은 침묵 사이로 그녀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표정이 마치 걱정 같기도, 경고 같기도 해서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상한 기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녀의 시선이 방금 하린이 사라진 복도 저편을 향하고 있는 걸 보면서, 나는 이 저택 안에서 곧 벌어질 어떤 통보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닐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오늘 저녁, 당주라는 사람이 나를 직접 부른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지만, 어쩐지 이번에도 순탄하게 넘어가지는 못할 거라는 불길한 확신만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