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비가 오지 않아도 반지하는 늘 젖은 냄새를 풍겼다.
곰팡이 냄새.
낡은 벽지 냄새.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오래된 나무 냄새.
박정호는 그 냄새 속에서 눈을 떴다.
천장의 곰팡이 자국이 오늘도 그대로였다.
자국은 매년 조금씩 넓어졌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손바닥 하나만큼 더 커져 있었다.
어깨가 뻐근했다.
허리도 마찬가지였다.
40년 동안 던전을 드나든 몸이었다.
마디마디가 그 세월을 증언하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는 15년 전 고블린 창에 찔린 자리였다.
왼쪽 무릎은 8년 전 낙석에 맞은 자리였다.
등허리는 그냥, 세월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통증이 가장 오래 남는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무릎에서 낮은 소리가 났다.
뚝, 하는 소리였다.
젊었을 때는 나지 않던 소리였다.
스무 살 무렵에는 무릎이 조용했다.
서른 살 무렵부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매일 아침 이 소리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잠시 침대 끝에 앉아 손을 쥐었다 펴 보았다.
손가락 관절이 뻣뻣했다.
움직이면 풀렸다.
그것도 요즘 들어 시간이 더 걸렸다.
부엌으로 걸어갔다.
좁은 부엌이었다.
싱크대 하나, 가스레인지 하나, 그리고 작은 식탁 하나가 전부였다.
식탁 위에는 우편물이 하나 놓여 있었다.
서울 모험가 길드 명의였다.
어제 우편함에서 꺼내 놓고 뜯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그 앞에 서서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손끝이 먼저 알고 있었다.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것을.
길드에서 오는 편지가 좋은 소식이었던 적은, 최근 몇 년 사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봉투를 열었다.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인쇄된 글자는 매끈했고 차가웠다.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글씨체였다.
[신인 보호 및 던전 자원 관리 규정 제 17조에 의거하여, 만 50세 이상 등록 모험가의 1급 및 2급 던전 출입을 전면 제한합니다. 본 규정은 신규 모험가의 성장 기회 보장과 자원 재분배를 위한 조치입니다.]
그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세 번을 읽었다.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1급과 2급.
그가 갈 수 있는 던전은 원래도 저층뿐이었다.
그 저층조차 이제 막힌다는 뜻이었다.
남는 것은 견습생용 0급 던전뿐이었다.
그곳의 마석 시세는 1급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손이 차가워졌다.
종이를 쥔 손끝이 먼저 반응했다.
머리가 이해하기 전에 몸이 먼저 알았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반지하 창으로 보이는 것은 사람들의 발뿐이었다.
구두, 운동화, 요즘 유행하는 부츠.
모두 걸음이 빨랐다.
젊은 걸음이었다.
그중 하나가 잠시 창 앞에 멈춰 섰다가 다시 걸어갔다.
신발끈을 고쳐 매려던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박정호는 그 잠깐의 정지를 오래 눈으로 좇았다.
50년 전, 이 도시 한복판에 균열이 생겼다.
사람들은 그것을 게이트라 불렀다.
게이트 너머에는 다른 세상이 있었고, 그 세상에는 마석과 몬스터가 있었다.
처음엔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다음엔 군인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을 좇는 사람들이었다.
국가는 사람을 밀어 넣었다.
처음엔 자원자를 받았다.
급여가 높았고, 명예가 따랐다.
곧 자원자가 부족해졌다.
게이트 안에서 죽는 사람의 수가 늘어난 탓이었다.
그다음엔 다른 방법을 썼다.
가난한 집의 아이들을 데려갔다.
계약서에는 어려운 말이 많았지만, 요약하면 하나였다.
아이를 넘기고 돈을 받는다.
박정호는 그 다른 방법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종이를 접어 서랍에 넣었다.
서랍을 여는 순간 오래된 종이 냄새가 훅 끼쳤다.
서랍에는 비슷한 종이가 여러 장 있었다.
기여도 하락 경고.
수당 삭감 안내.
장비 노후화 통지.
그리고 이제, 출입 제한 통보.
그는 서랍 속 종이들을 손끝으로 한 번 넘겨보았다.
날짜가 오래된 것부터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가장 오래된 것은 8년 전이었다.
기여도 하락 경고.
그때는 그 종이 한 장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서랍을 닫는 손이 떨렸다.
그는 옷장 문을 열었다.
낡은 장검이 걸려 있었다.
손잡이 가죽이 다 닳아 속의 나무가 드러난 검이었다.
칼날에는 세월만큼의 흠집이 있었다.
가죽 갑옷도 함께였다.
어깨 부분이 몇 번이나 덧대어 기운 흔적이 보였다.
왼쪽 옆구리 쪽에는 검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그날의 것이었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었다.
그는 갑옷을 손으로 쓸었다.
딱딱하고 차가웠다.
가죽이 오래되어 손끝에 닿는 느낌이 종이 같았다.
이 갑옷을 처음 입던 날이 떠올랐다.
열다섯 살이었다.
그날, 아버지 박용식은 그를 관청 앞에 세워두고 손을 놓았다.
관청 건물은 회색이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직원은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하품을 했다.
그 하품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하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그날 처음 알았다.
백만 원.
그것이 아버지가 받은 돈이었다.
그 돈으로 아버지는 형의 대학 등록금을 냈다.
박정호는 그 숫자를 40년 동안 잊은 적이 없었다.
숫자는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해가 갈수록 더 선명해졌다.
관청 앞에서 아버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박정호는 그 등을 오래 보았다.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의 등도 떨리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갑옷을 다시 걸어놓았다.
장검도 그대로 두었다.
칼을 뽑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뽑아본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제는 알 수 없었다.
대신 서랍에서 통보서를 다시 꺼냈다.
[본 규정은 즉시 시행됩니다.]
즉시.
오늘부터.
그는 종이를 손에 쥔 채 침대 끝에 앉았다.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지나갔다.
요즘은 오토바이도 배송 로봇으로 바뀌고 있다고 들었다.
길드 사무소에서도 접수 창구가 하나둘 기계로 바뀌었다.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에 이제는 화면이 있었다.
화면은 웃지 않았고, 짜증도 내지 않았고, 그저 규정대로 처리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를 빼고.
그는 손을 펼쳐 보았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오래된 굳은살 위에 새로운 굳은살이 덧대어진 손이었다.
검을 쥐던 자리, 밧줄을 잡던 자리, 마석을 캐던 자리.
자리마다 굳은살의 색과 두께가 달랐다.
이 손으로 40년을 벌었다.
이 손이 이제는 아무것도 벌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보았다.
엄지, 검지, 중지.
넷째 손가락이 접힐 때 유난히 소리가 크게 났다.
16년 전, 던전에서 문틈에 손가락이 끼었던 자리였다.
그때는 손가락을 잃을 뻔했다는 사실보다, 그날 벌었던 마석 값이 얼마였는지가 먼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순서였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반지하 창으로 붉은 빛이 아주 조금 스며들었다.
빛은 방바닥의 절반쯤 채 닿지 못하고 벽에 걸려 끊겼다.
그는 그 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대략 십오 분.
그 십오 분 동안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핸드폰이 한 번 울렸다.
길드 앱 알림이었다.
그는 화면을 켜지 않았다.
어떤 내용일지 알 것 같았다.
확인 문자든, 안내 문구든, 결국 같은 이야기의 다른 표현일 것이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그 단어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밀려나지 않았다.
마지막.
그 단어는 방 안 어딘가에 눌러앉아 나가지 않았다.
그는 지난 40년을 짧게 되짚어보았다.
열다섯에 시작했다.
스물다섯에 처음으로 2급 던전에 들어갔다.
그날 밤 그는 처음으로 스스로 번 돈으로 밥을 사 먹었다.
서른다섯에는 후배들을 몇 명 가르쳤다.
그중 둘은 지금 길드 상위권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마흔다섯에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그리고 지금, 쉰다섯.
숫자를 세어보니 40년이라는 시간이 손에 잡히는 무게처럼 느껴졌다.
종이를 쥔 손끝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손끝의 피가 통하지 않는 감각이 오히려 지금은 익숙하게 느껴졌다.
아니, 익숙해서 오히려 편했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발소리는 무거웠다.
젊은 사람의 걸음은 아니었다.
박정호는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옆집 노인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택배일지도 몰랐다.
발소리는 그의 문 앞에서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계단을 더 내려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그는 다시 종이를 보았다.
출입 제한.
즉시 시행.
글자는 여전히 매끈하고 차가웠다.
그 매끈함이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다.
사람의 40년을 이렇게 짧고 단정한 문장 몇 줄로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종이를 쥐고 앉아 있었다.
방 안의 어둠이 조금씩 깊어지고 있었다.
곰팡이 냄새가 어둠 속에서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냄새는 그대로였다.
그가 그것을 더 선명하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창밖으로 마지막 남은 붉은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방은 이제 검은색과 짙은 회색만 남았다.
박정호는 그 어둠 속에서 여전히 종이를 놓지 않고 있었다.
손끝은 여전히 하얗게 변한 채였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