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다음날, 박정호는 길드 사무소로 향했다.
출입이 막혔다면 이유를 확인해야 했다.
확인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침부터 하늘은 흐렸다.
비가 올 듯도 했지만 내리지는 않았다.
그는 낡은 재킷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재킷은 헐거워졌다.
어깨가 예전만큼 넓지 않아서였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걸었다.
걷는 편이 나았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정리해봐야 답이 나오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다.
길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손목에 홀로그램 단말을 차고 있었다.
단말에서 파란 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을 보며 걷는 사람들은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으려 애썼다.
서울 모험가 길드 3지점은 유리로 된 건물이었다.
건물 외벽 전체가 반사되는 유리였다.
그 유리에 그의 모습이 비쳤다.
구부정한 어깨.
느린 걸음.
낡은 재킷.
40년 전에는 시멘트 건물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비가 오면 우산도 없이 서 있어야 했다.
젊은 모험가들은 그 줄에서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웃었다.
지금은 그런 웃음소리가 없었다.
로비는 조용했다.
안내 로봇이 바퀴 소리 하나 없이 오갔다.
번호표 하나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그는 번호표를 뽑았다.
숫자가 낮게 찍혔다.
대기자가 많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예전에는 오전 시간에도 로비가 가득 찼었다.
그는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딱딱했다.
등받이가 없는 종류였다.
오래 앉아 있으라고 만든 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았다.
등이 아팠다.
그래도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옆자리에 앳된 청년이 앉아 있었다.
청년은 다리를 떨었다.
초조한 기색이었다.
아마 첫 등록을 하러 온 모양이었다.
박정호는 그 청년을 잠시 바라보았다.
40년 전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렸다.
지금 그런 감상에 젖을 여유는 없었다.
"박정호 님, 3번 창구로 오세요."
안내음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청년이 그 소리를 들은 듯 잠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단말로 시선을 옮겼다.
3번 창구에는 김도현이 앉아 있었다.
삼십대 중반의 남자였다.
안경을 쓰고 있었고, 넥타이는 흠 하나 없이 정갈했다.
셔츠 소매도 깔끔하게 접혀 있었다.
책상 위에는 서류 한 장 없이 화면만 켜져 있었다.
박정호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박정호 님."
"그렇소."
"기여도 확인하셨습니까."
김도현이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
그래프 하나가 떠 있었다.
선이 지난 5년간 완만하게 내려가고 있었다.
그래프 위에는 숫자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박정호는 그 숫자들을 읽으려 했지만 눈이 잘 따라가지 않았다.
"5년 전 대비 기여도 62% 감소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소."
"이해합니다. 하지만 규정상 기여도가 일정 이하로 떨어진 등록자는 관리 대상입니다."
"그래서 출입을 막았소?"
김도현은 안경을 살짝 밀어 올렸다.
그 동작은 습관인 듯 자연스러웠다.
말을 고를 때마다 나오는 동작 같았다.
"신인 보호 규정은 별개입니다. 연령 기준입니다."
"연령이오. 기여도가 아니라."
"두 규정이 겹치는 경우입니다, 박정호 님."
박정호는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손등에 힘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손톱 밑에는 오래된 흙 얼룩이 남아 있었다.
어제 게이트 앞 흙바닥에서 묻은 것이었다.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았다.
"난 40년을 여기 몸 바쳤소."
"압니다. 기록에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문 앞에서 쫓겨나는구려."
김도현은 잠시 시선을 피했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다 다시 정면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거의 없었다.
표정을 지우는 훈련을 받은 사람 같았다.
"저희도 규정을 만드는 입장은 아닙니다."
"그럼 누가 만드오."
"본사입니다."
"본사가 누구요."
김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다시 넘겼다.
또 다른 표가 떠올랐다.
막대 그래프였다.
막대들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수당도 함께 안내드리겠습니다. 지난달 수당이 3분기 대비 41% 감소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이대로면 다음 달부터 최저 등록비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정호는 숨을 짧게 내쉬었다.
숨이 차가운 공기처럼 느껴졌다.
실내는 따뜻했는데도 그랬다.
등에서 식은땀이 조금 났다.
그는 그것을 티내지 않으려 손끝을 테이블 아래로 감췄다.
"그럼 나는 뭘 하면 되오."
질문이었지만,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목소리로 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나온 말이었다.
말을 뱉고 나서야 그는 그 말이 얼마나 초라하게 들리는지 깨달았다.
김도현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동정이 아니라 곤란함이 담겨 있었다.
곤란한 상대를 상대해야 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는 이런 대화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직 지원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뭐요, 그게."
"모험가 은퇴자를 위한 배송 보조직, 시설 관리직 등입니다."
박정호는 그 말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웃음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었다.
목구멍 안쪽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다 멈췄다.
"배송 보조직."
"네."
"그 배송, 이미 기계가 다 하고 있지 않소."
김도현은 이번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화면의 파란 불빛만 그의 안경에 반사되고 있었다.
"규정상 안내는 해야 합니다."
"안내는 필요 없소."
"그럼 다른 방법은..."
"됐소."
박정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로비 전체가 그를 보는 것 같았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김도현이 그를 붙잡듯 말했다.
"박정호 님. 한 가지만 더 안내드리겠습니다."
"뭐요."
"무단으로 던전에 진입하시면, 등록 자격이 즉시 박탈됩니다. 이 점 명확히 알려드립니다."
박정호는 걸음을 멈췄다.
그는 김도현을 돌아보았다.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즉시 박탈."
"네. 최종 경고입니다."
최종 경고.
그 단어가 유리벽에 부딪혀 울리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말을 속으로 한 번 더 되뇌었다.
박탈.
자격.
그 두 단어가 자꾸 겹쳐서 머릿속을 채웠다.
"어제 게이트 앞에서 있었던 일도 다 기록되어 있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정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있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그는 몸을 돌려 사무소를 나섰다.
걸음이 무거웠다.
발밑에서 대리석 바닥의 냉기가 신발 밑창을 통해 올라왔다.
로비를 지나며 그는 다시 안내 로봇을 보았다.
로봇은 그를 스쳐 지나가며 인사말을 뱉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은 없었다.
그는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문이 자동으로 닫히며 낮은 소리를 냈다.
거리는 여전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이제 그들을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최종 경고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등록 자격 즉시 박탈.
그 말은 그가 가진 마지막 끈이 얼마나 얇은지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40년.
그 시간이 통째로 지금 이 문턱 하나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무작정 걸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 않은 걸음이었다.
상점들이 스쳐 지나갔다.
간판들이 번쩍였다.
그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자신이 이 도시에서 사라져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박정호 씨."
그는 돌아보았다.
그 목소리를 오랫동안 잊지 않고 있었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