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성수 게이트 입구는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다.
푸른 빛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원형 문.
그 앞에 협회 직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여기부터는 미확인 구역입니다. 조심하세요!" 직원이 소리쳤다.
"조심은 항상 하죠!" 이강준이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저 사람은 조심을 몰라.'
솔직히 말해서 저 남자가 조심이라는 단어를 아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홍염 길드 소속, 방송명 '홍염 강준'. 게이트 하나 들어갈 때마다 시청자 수가 오만 명씩 뛰는 유명 헌터였다. 실력은 확실했다. 문제는 그 실력만큼 자제심이 없다는 거였다.
"박도현 씨는 오늘도 표정이 안 좋네요." 서하린이 옆에서 지팡이를 정비하며 말했다.
"표정 관리할 상황이 아니라서요." 나는 배낭끈을 고쳐 매며 웃었다.
성녀 서하린. 협회 공식 별명이 그거였다. 치유 계열 최상위 랭커고, 실제로 성격도 냉정하다 못해 얼음장 같았다. 물론 나한테만 그런 건지, 다들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확 바뀌었다.
습하고 차가운 냄새.
마치 오래된 지하실 같았다.
예전에 보던 좀비 영화 배경이랑 딱 비슷했다.
그때는 화면 너머였는데 지금은 그 안이었다.
'CG였을 땐 몰랐는데, 실제로 이 냄새 맡으니까 진짜 후회되네.'
돈 받고 짐 나르는 것도 이 정도면 위험수당 두 배는 받아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어둠 속으로 발을 옮겼다.
"박도현 씨, 짐 정리해요." 서하린이 말했다.
"네네." 나는 재빠르게 배낭을 벗었다.
[스킬: 수납]
- 등급: F
- 최대 용량: 배낭 1.5개 분량
- 페널티: 초과 사용 시 신체 부담(코피, 현기증)
다 쓸 만큼 익숙했다.
F등급. 협회 등급 체계 최하단. 전투에는 아무 쓸모도 없고, 오직 짐 나르는 데만 쓰는 스킬이었다. 각성자 등록할 때 협회 직원이 내 스킬창을 보고 웃음을 참는 표정을 지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이야, 특이하네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짐이 좀 많았다.
협회에서 요청한 비상 물자까지 추가로 실었기 때문이었다.
식량, 응급 키트, 마나 회복제, 거기다 예비 로프까지. 배낭 두 개 분량을 억지로 눌러 넣었다.
"이거 좀 무거운데."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용량 초과 안 뜨는 게 다행이지.'
수납 스킬은 무게가 아니라 '부피'와 '개수' 개념으로 작동했다. 그래서 물자가 많아도 어떻게든 구겨 넣으면 들어갔다. 문제는 항상 그 '어떻게든' 다음에 따라오는 청구서였다.
일행이 20층 구역을 통과할 때쯤, 사고가 하나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였다.
작은 슬라임 무리, 별거 아닌 놈들이었다.
초록색 젤리 덩어리들이 뽀글뽀글 소리를 내며 굴러왔다. 마치 편의점 슬러시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방송 시청자들도 별 감흥 없어 보였다. 채팅창에 'ㅋㅋㅋ 슬라임 귀엽네' 같은 글이 몇 개 올라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뒤로 갑옷을 입은 해골병사가 튀어나왔다.
원래 20층에는 안 나오는 놈이었다.
낡은 판금 갑옷, 녹슨 대검. 눈구멍에서 초록빛이 스멀스멀 새어나왔다. 딱 봐도 이 층 표기 몬스터 목록에 없는 얼굴이었다.
"뭐야, 저건?" 이강준이 검을 뽑으며 말했다.
"기록에 없는 개체입니다!" 서하린이 지팡이를 세우며 소리쳤다.
'또 시작이네.'
게이트라는 게 원래 그랬다. 협회가 몇 년간 데이터를 쌓아도, 가끔 이런 식으로 예상 밖의 개체가 튀어나왔다. 다들 그걸 '오차'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그냥 재수 없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했다.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다.
이강준의 검이 해골병사를 두 조각으로 갈랐다.
서걱-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해골병사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남은 슬라임들은 대검의 여파에 밀려 흩어졌다.
"별거 아니네." 그가 웃으며 검을 털었다.
채팅창에서 함성이 터졌다.
'ㄷㄷ 개사기' '역시 홍염' '저거 원래 30층대 개체 아니냐?' 같은 댓글들이 우르르 올라왔다. 이강준은 그런 댓글을 실시간으로 읽는 재주가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도 채팅을 흘겨보며 웃는 그 여유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박도현 씨, 이거 챙겨요." 이강준이 해골병사가 떨어뜨린 이상한 뼈 파편을 던졌다.
"넵." 나는 그걸 수납에 넣으려 했다.
손바닥만 한 뼛조각이었다. 색이 좀 이상했다. 하얗다기보다는 누렇게 변색된, 마치 오래 묵은 상아 같은 색이었다. 표면에 실핏줄처럼 얇은 균열이 나 있었다.
'별거 아니겠지.'
늘 그런 식으로 잡템을 챙겼다. 협회는 이런 파편도 다 수거해서 연구소에 넘겼다. 뭐가 나올지 모르니 일단 다 모으라는 게 방침이었다.
[경고: 수납 용량 초과 위험]
'어? 이게 왜?'
분명 여유가 있었는데.
배낭 두 개 분량 중에 아직 반도 안 채웠는데 경고가 뜬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뼈 파편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마치 안에 뭔가 다른 게 들어있는 것처럼.
손끝에 닿는 느낌이 이상했다. 겉은 딱딱한데 안쪽에서 뭔가 꿀렁거리는 감각이 전해졌다. 액체가 든 것도 아니고, 그냥 무게가 안쪽으로 뭉쳐 있는 느낌. 설명하기 어려운 위화감이었다.
나는 억지로 밀어 넣었다.
찌잉-!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시야가 잠깐 하얗게 번쩍였다. 마치 오래 앉았다 벌떡 일어났을 때처럼, 세상이 한 바퀴 돌았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코에서 뜨끈한 게 흘렀다.
"어우..." 나는 코를 틀어막았다.
손등에 붉은 게 묻었다. 이번엔 좀 많이 나온다 싶었다.
"뭐해요, 빨리 가요." 서하린이 힐끗 보고는 그냥 지나갔다.
치료 한 번 해줄 법도 한데, 그녀는 그냥 걸어갔다.
'역시 성녀는 아무한테나 자비를 베풀진 않는구나.'
성녀라는 별명이 아깠다. 실제로는 딱 필요한 사람한테만, 딱 필요한 만큼만 치유를 쓰는 스타일이었다. 짐꾼 코피 정도는 우선순위 리스트 맨 아래에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코를 닦으며 뒤따랐다.
페널티는 늘 그런 식이었다.
용량을 넘기면 코피가 났고, 어지러웠다.
한 번은 정신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3개월 전, 다른 클랜과 합류했던 던전에서였다. 짐이 너무 많아서 억지로 다 눌러 넣었다가 그대로 벽에 이마를 박고 쓰러졌었다. 그때 아무도 나를 부축하러 오지 않았다.
그때는 아무도 나를 챙기지 않았다.
그냥 짐꾼이 쓰러졌구나, 그 정도 반응이었다.
'뭐, 나도 딱히 서운하진 않아.'
서운하지 않다고 스스로 세뇌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아주 조금은 서운했다. 그런데 그런 걸 티내봤자 뭐가 달라지겠나 싶어서 그냥 넘겼다.
이 스킬, 편리하긴 한데 몸에는 안 좋다니까.'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각성이라느니 하는 거대한 단어와는 전혀 관계없는, 그냥 잡일용 스킬.
그게 내가 아는 수납의 전부였다.
각성자 커뮤니티에는 늘 '숨겨진 진화형 스킬' 같은 떡밥 글이 올라왔다. F등급 스킬이 알고 보니 SS급 히든 클래스였다는 그런 이야기들. 나도 처음엔 좀 기대했었다. 지금은 그냥 코피 나는 잡일 스킬이라는 걸 받아들인 지 오래였다.
30층을 넘어서자 협회 지도에 없는 구역이 나타났다.
돌벽에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낡은 문양, 오래된 언어처럼 보였다.
동그란 문양들이 나선형으로 벽을 타고 올라갔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하게 낯선 모양이었다.
"이거 뭐지." 이강준이 검 끝으로 벽을 긁었다.
카악- 소리가 났다. 문양은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서하린이 지도를 펼쳤다.
"이 구역은... 지도에 없어요." 그녀가 미간을 좁혔다.
그 표정이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늘 무심하던 그녀의 눈썹이 살짝 구겨져 있었다. 방송을 오래 봐온 시청자라면 그 미세한 변화가 얼마나 드문 건지 알 것이다.
그때 냉기가 확 밀려왔다.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퍼졌다.
방금까지 습하고 눅눅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냉동창고처럼 바뀌었다. 벽에 서리가 슬며시 끼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뭐야, 이 온도." 이강준이 팔을 문질렀다.
나는 배낭을 다시 고쳐 멨다.
'왠지 익숙한 느낌인데.'
예전에 봤던 어느 게임에서, 이런 냉기가 나오면 항상 보스가 있었다.
정확히는 던전 크롤러 게임이었다. 특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면 화면 하단에 붉은 경고창이 뜨고, 그다음엔 백발백중 거대한 얼음 보스가 튀어나왔다. 그런 클리셰가 현실에서도 통할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이미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애써 웃었다.
'설마 여기서 그런 게 나오겠어.'
협회 통신기가 갈라진 소리를 냈다.
"본부, 여기 홍염입니다. 지도에 없는 구역 발견...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이강준이 무전을 넣었다.
무전기 너머에서 협회 직원의 목소리가 잡음과 함께 끊겼다 이어졌다. "홍염, 상황 보고... 계속 부탁... " 뭔가 더 말하려는 것 같았는데 잡음에 먹혀버렸다.
"방송 재밌어지겠는데." 그가 씩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 남자는 진짜 위기감이라는 걸 뇌에서 못 만드는 건가.'
채팅창은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이거 뭔가 나온다' '진짜 미확인 구역이네' 같은 글들이 초당 수십 개씩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 화면을 볼 새도 없이 배낭끈만 자꾸 만지고 있었다.
그 순간, 벽 안쪽에서 뭔가 긁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이-
마치 쇠와 쇠가 갈리는 소리였다.
일행 전부가 걸음을 멈췄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우리 셋의 발소리, 숨소리, 그리고 채팅창 알림음까지 전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오직 그 긁는 소리만이 벽 너머에서 규칙적으로, 아주 천천히 반복되고 있었다.
"...들었어요?" 서하린이 낮게 물었다.
"들었지." 이강준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목소리가 사라진 순간, 나는 알았다. 이강준이 진짜로 웃음을 지울 때는, 진짜 위험한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방송용 여유가 아니라, 본능적인 경계였다.
나는 배낭끈을 꽉 쥐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뼈 파편이 든 수납 스킬창이 자꾸 눈앞에서 깜빡이는 것 같았다.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두통 사이로, 그 이상한 무게감이 계속 신경 쓰였다.
뭔가, 아주 잘못된 곳에 들어왔다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