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형광등 불빛 아래서 창날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는 이게 진품인지 가품인지 손끝으로 먼저 알았다.
확대경을 대기 전에 손가락으로 날의 표면을 쓸어보는 것, 그게 내 버릇이었다. 진짜와 가짜는 눈보다 손끝이 먼저 구분해낸다. 매끈하게 미는 손맛과 미세하게 걸리는 손맛의 차이, 그 하나로 반은 판별이 끝난다.
날 끝에서 세 치쯤 내려온 자리에 미세하게 파인 홈, 그건 기계 압연이 아니라 손으로 두드려 만든 흔적이었고, 이런 걸 낼 수 있는 대장장이는 지금 서울 안에 열 명도 남지 않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게이트 사태 이전, 등산과 캠핑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프리미엄 라인이라 불리던 브랜드들은 저마다 특수강을 수입해 와 자기들만의 열처리 공법을 자랑했고, 나는 아버지 사업체에서 그 수입 원가표를 몇 번이나 손으로 만져봤다. 그러니 이 창의 자루와 날이 접합되는 부분, 리벳 세 개로 고정한 방식만 봐도 어느 라인인지 짚어낼 수 있었다. 지금은 그 회사가 문을 닫아 재고가 씨가 마른 물건이었다.
"이거 얼마 쳐줄 수 있어요?"
창을 들고 온 남자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낡은 등산화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고, 손등에는 아직 아물지 않은 긁힌 상처가 세 줄 그어져 있었다. 해물을 상대하다 생긴 상처라는 걸, 그 자세와 걸음걸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오른쪽 다리를 살짝 끄는 걸음, 왼손으로만 물건을 드는 습관, 둘 다 다친 몸을 감추려는 사람들 특유의 몸짓이었다.
"팔천 원 드릴게요."
한상철 점장이 대답했다. 창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였다. 시선은 이미 계산대 위 태블릿에 가 있었고, 손가락은 다음 손님 접수란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저 창은 적어도 이십만 원짜리였다. 날 재질부터 자루 접합 방식까지, 게이트 사태 이전에 등산용품점에서 프리미엄 라인으로 팔던 물건이었고, 지금은 해물 방어용으로 개조까지 되어 있었다. 자루 끝에 미끄럼 방지용 고무를 덧댄 흔적, 그건 공장에서 나온 게 아니라 누군가 직접 감은 것이었다.
"점장님, 이거―"
"됐다, 도윤아. 우리 가게는 딱 정해진 표대로 간다."
점장은 내 말을 자르며 웃었다. 그 웃음에는 미안함이 한 톨도 없었다. 표대로 간다는 말은, 자기 눈은 못 믿고 정부에서 뿌린 시가표만 믿는다는 뜻이었고, 그 시가표는 창 하나에 팔천 원이라고 적어놓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이 자루 손잡이 감은 것만 봐도 그냥 산 게 아니라 직접 손댄 거잖아요. 이 정도면 시세로만 쳐도―"
"시세는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니까."
점장이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화면에는 정부 산하 리사이클 관리센터에서 배포한 품목별 매입가 지침표가 떠 있었다. 창, 도, 검류. 일괄 팔천 원. 재질이나 상태는 고려 항목에 없었다. 그 표를 만든 사람이 실제로 창 한 자루를 손에 쥐어본 적이 있을까, 나는 가끔 그게 궁금했다.
손님은 결국 팔천 원을 받고 돌아섰다. 그의 등산화가 문턱을 넘어가며 흙을 한 톨 떨어뜨렸다. 창이 카운터 서랍에 처박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저게 다음 주 안에 어느 암시장 좌판에서 십오만 원짜리로 다시 나타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서랍이 열리고 물건이 분류되어 도매업자 손에 넘어가는 그 흐름을, 나는 이 가게에서 반년을 일하며 눈으로 다 봐뒀다. 이 가게에서 그걸 아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알아도 소용없었다. 나는 그저 시급 만 원짜리 직원이었으니까.
서울 마포구, 리사이클숍 '다시봄'. 게이트 사태 이후로 이런 가게가 골목마다 하나씩 생겼다. 간판에 붙은 '다시봄'이라는 이름부터가 아이러니였다. 사람들이 다시 봐야 할 만큼 소중한 물건을 들고 와서, 다시는 만져보지도 못할 헐값에 넘기고 가는 곳이었으니까. 사람들이 가진 걸 팔아 끼니를 잇는 시대였고, 그 물건을 감정해서 값을 매기는 게 내 일이었다.
삼 년 전까지 나는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대학교 삼 학년, 무역학과, 아버지가 하던 수입 유통업체에서 재고 관리 아르바이트를 뛰며 등록금을 반쯤 벌던 스물둘의 나였다. 그때 나는 창이나 검 같은 걸 감식할 일이 없었다. 대신 원가와 관세, 마진율을 계산하는 데에 재능이 있었고, 그게 제법 쏠쏠한 벌이였다. 컨테이너 하나가 들어올 때마다 나는 엑셀 시트에 숫자를 채워 넣으며, 이 상자 안에 든 물건이 얼마의 마진을 남길지 계산했다. 그 계산은 늘 틀리지 않았다.
그러다 게이트가 열렸다.
서울 하늘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긴 그날을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잠실 쪽 하늘에 유리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공기가 갈라진 자리로 뭔가가 걸어 나왔다. 사람들은 그걸 '해물'이라 불렀다. 처음엔 다들 그게 영화 속 특수효과인 줄 알고 휴대전화를 들어 촬영했다. 나도 그랬다. 화면 속에서 흔들리는 손끝이, 지금도 가끔 그날 저녁 뉴스 다시보기에 남아 있다.
정부는 그걸 재난이 아니라 '자연 발생하는 개체'라 규정했고, 곧이어 '해물 대응 기본법'을 발표했다. 골자는 하나였다. 각자 알아서 방어하라. 법이 발표되던 날, 뉴스에서 국무총리가 담화문을 읽는 걸 들으며 아버지는 담배를 세 개비나 연달아 피웠다. 그때는 몰랐다. 그 연기가 우리 집이 무너지는 냄새였다는 걸.
그 법이 나오고 반년 만에 아버지 사업은 무너졌다. 수입 물류가 게이트 근처를 지나면 통관이 막혔고, 보험사는 해물로 인한 손해를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컨테이너 한 대가 인천항에서 통째로 사라진 날, 아버지는 보험사 직원과 세 시간을 통화하다 결국 수화기를 내려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다. 아버지는 창고 하나를 통째로 날린 뒤 몸이 상했고, 지금은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다.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이 리사이클숍에 취직했다. 계산은 잘했지만, 정작 내 인생은 계산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도윤아, 다음 손님 받아라."
점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손님은 낡은 방독면을 팔러 온 노인이었다. 필터 부착 부위에 붙은 제조 스티커는 이미 반쯤 떨어져 나가 글자가 흐릿했지만, 나는 남은 알파벳 두 자와 필터 모양만으로도 제조 연도를 짚어낼 수 있었다. 이 정도 연식이면 필터 성능이 절반도 남지 않았을 거라는 것도, 손끝으로 필터 무게를 가늠하며 알았다. 삼천 원. 노인은 순순히 받아들고 나갔다. 등이 굽은 채 문을 나서는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저 노인이 이 방독면을 구하려고 며칠 밤을 뒤졌을지 잠깐 생각했다. 그 방독면이 지금 시장에서 얼마짜리인지, 그 노인은 죽을 때까지 모를 것이다.
가게 안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앵커는 무표정한 얼굴로 오늘 서울 시내 게이트 발생 현황을 읊었다. 강남 두 곳, 종로 한 곳, 모두 3등급 이하로 분류되어 시 자체 방어인력이 대응했다는 내용이었다. 등급이라는 것도 웃긴 말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가 아니라, 몇 명이 살아남을 확률이 있는지를 계산해서 매긴 등급이었다. 1등급은 국가 방위군이 투입되는 규모, 5등급은 그냥 '주의 안내문' 하나 붙이고 끝나는 규모. 이 나라는 사람 목숨도 등급을 나눠 셈하는 곳이 되어 있었다.
"오늘 서울 아쿠아리움에서 개최되는 '해양생물 특별전'에는 시민 여러분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앵커의 목소리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하마터면 창 감정용 확대경을 놓칠 뻔했다.
오늘, 서울 아쿠아리움.
내 여동생 수현이가 학교 견학으로 거기에 가 있는 날이었다.
손끝이 저릿해졌다.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꾸만 뉴스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화면 아래로 흐르는 자막에는 아직 아무 사고 소식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오후 뉴스였다. 앵커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미건조했고, 화면 속 아쿠아리움 정문에는 견학 온 아이들이 줄지어 들어가는 모습이 잠깐 비쳤다가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등 뒤가 서늘했다.
확대경을 내려놓고,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수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있냐고, 별일 없냐고.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세 번쯤 지웠다가 다시 썼다. 너무 걱정스럽게 보이면 수현이가 오히려 짜증을 낼 게 뻔했으니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보내려 애썼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일 분, 이 분.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확대경을 다시 집어 들었다가 놓았다가, 손끝으로 카운터 모서리를 두드렸다. 점장이 옆에서 나를 한 번 쳐다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뉴스 자막을 봤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가게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며 다음 손님이 들어왔다. 나는 화면에서 눈을 돌려 손님을 맞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까 그 뉴스 자막이 계속 걸려 있었다. 새로 들어온 손님이 낡은 등산용 손도끼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는 순간에도, 나는 도끼날을 살피는 척하며 휴대전화 화면을 힐끔거렸다. 여전히 답장은 없었다.
우연이 셋을 넘으면 우연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아직 몰랐다. 그저 오후 세 시, 아쿠아리움, 여동생. 그 세 가지가 겹친다는 사실만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손도끼의 날을 만지는 손가락이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움직였고, 그 느려진 속도만큼 마음속에서는 어떤 불길한 그림자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