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점장이 저녁 마감을 하는 동안, 나는 명함을 다시 꺼내 들여다봤다.
곽태원, 화신상사, 그리고 전화번호 하나.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해물 대응 물자 공식 인증 딜러'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
공식 인증이라는 단어가 눈에 걸렸다.
암시장에서 굴러다니는 물건에는 원산지도 없고 등급도 없다.
값을 매기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런 물건일수록 위험하다.
출처를 알 수 없으니 가격을 매길 근거가 없고, 근거가 없으니 언제든 값이 뒤집힐 수 있다.
그런데 곽태원의 명함에는 '공식 인증'이라는, 정부가 찍어준 도장 같은 단어가 박혀 있었다.
화신상사가 그저 암시장 조직이 아니라, 어느 순간 정부의 인증 체계 안으로 발을 들였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그 조직이 이제 감시받는 동시에 보호받는 위치에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보호받는 만큼 나 같은 사람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영역에 들어갔다는 뜻이었고.
"그거 그만 들여다보고 얼른 집에 가라."
점장이 셔터를 내리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지만, 나는 그 말 속에 숨은 뜻을 읽었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였다.
나는 명함을 도로 주머니에 넣고 가게를 나섰다.
밖은 이미 캄캄했고, 골목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며 빛의 간격을 두고 있었다.
그 깜빡임이 마치 무언가를 신호처럼 두드리는 것 같아서,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바라봤다가 다시 걸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수현이는 식탁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아쿠아리움 사고 이후로 동생은 며칠간 학교에서 상담을 받았고, 지금은 겉으로는 많이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문제집을 넘기는 손놀림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고, 연필을 쥐는 각도도 예전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는 그 평온함이 진짜인지 의심하고 있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것과 실제로 멀쩡한 것 사이에는, 값으로 따지면 절반도 안 되는 간극이 있을 수 있었다.
"오빠, 병원에서 전화 왔었어. 아빠 상태 안정적이래."
"그래, 다행이네."
나는 문제집 옆에 앉아 동생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끝에서 아이의 온기가 느껴졌다.
이 온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날 처음으로 명확한 문장이 되어 마음에 자리 잡았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나는 그 순간 다시 확인했다.
"오빠, 그날 아쿠아리움에서… 오빠도 봤어?"
수현이가 문제집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연필 끝이 종이 위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나는 잠깐 대답을 고르다가, 짧게 말했다.
"조금."
"뉴스에서는 다 좋게 끝났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이상해. 그때 그 소리… 뉴스에는 없던 소리였어."
동생의 말에 손끝이 저릿했다.
아이의 직감이 나의 확신과 정확히 같은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셔터가 내려오던 소리, 그 뒤에 이어진 침묵, 그리고 침묵보다 더 무거웠던 정적.
뉴스는 그 정적을 지웠다.
하지만 아이는 그 정적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수현아, 그런 얘기는 밖에서 하지 마. 알겠지?"
"왜? 오빠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 맞지?"
동생의 눈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어린애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한 의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근데 지금은 확인할 방법이 없어. 오빠가 알아볼게."
그 말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수현이는 그 말에 더는 묻지 않고 다시 문제집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연필을 쥔 손끝이 아까보다 조금 더 세게 종이를 누르고 있다는 걸, 나는 알아챘다.
그날 밤, 나는 휴대전화로 아쿠아리움 사고 관련 커뮤니티 게시판을 뒤졌다.
대부분은 공식 발표를 그대로 옮긴 글이었다.
'모범적인 초기 대응', '민관 협력의 성공 사례'라는 표현들이 복사기처럼 반복됐다.
그 정형화된 문장들 사이에서, 나는 진짜 정보를 찾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워진 자리를 찾고 있었다.
너무 매끄러운 서술 뒤에는 언제나 잘려나간 부분이 있는 법이다.
그 사이에 목격자라 주장하는 글 하나가 삭제되기 직전 캡처되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쿠아리움에서 셔터로 사람 죽인 사람 봤어요. 정부 요원이라던데 이름이 하진우라던가]
하진우.
그 이름이 화면에 뜬 순간, 나는 손끝이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그 무표정한 눈빛의 남자, 금 귀걸이를 한 남자에게 이름이 있었다.
이름이 있다는 건 그 사람이 어딘가에 등록되어 있다는 뜻이고, 등록되어 있다는 건 추적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댓글 중에는 그를 '정부 산하 특수대응반', '민간인 신분이지만 실질적 권한은 준군인'이라 설명하는 글도 있었다.
또 다른 댓글에는 그가 지난해 인천 쪽 해안 사고에도 등장했다는 이야기도 붙어 있었는데,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신뢰할 만한 정보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이름이 정부의 어느 계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게시글은 캡처된 지 두 시간 만에 원본이 삭제됐다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두 시간.
삭제까지 걸린 시간이 두 시간이라는 건, 누군가가 실시간으로 그 게시판을 감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삭제된 시점과, 사망자 명단에서 아이의 이름이 빠진 시점, 그리고 뉴스에서 '모범 사례'라는 표현이 등장한 시점을 나란히 놓아봤다.
셋 다 사고 발생 후 여섯 시간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세 가지가 우연히 겹칠 확률은 없었다.
우연이 셋을 넘으면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가 이 사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리에는 하진우라는 이름이 지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다.
나머지 모든 흔적을 그렇게 깔끔하게 지운 사람들이, 왜 하필 그 이름 하나는 그대로 뒀을까.
일부러 남긴 건지, 아니면 미처 지우지 못한 실수인지, 나는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출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신문을 샀다.
종이 신문을 사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었지만, 나는 온라인에서 지워지는 기사가 종이에는 그대로 남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인쇄된 활자는 서버 관리자의 손가락 하나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 오래된 매체의 느린 속성이, 이럴 때는 오히려 무기가 됐다.
1면 하단에 작게 실린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정부, 다음 달 '해물 대응 공개 시연회' 개최… 민관 합동 대응 체계 선보인다]
기사 본문에는 시연회가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리며, 정부 인증 딜러와 민간 방어업체가 함께 참가해 실전 대응 능력을 선보인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시연회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나는 그 자리가 단순한 홍보 행사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정부가 굳이 공개적으로 대응 체계를 선보이려는 이유는, 그만큼 여론을 안심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여론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여론이 불안해할 이유가 이미 존재한다는 뜻이었고.
아쿠아리움 사고가 그 불안의 근원 중 하나일 게 뻔했다.
참가 업체 명단 중에 '화신상사'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곽태원의 명함 속 그 이름이, 이번엔 신문 활자로 다시 나타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신문을 접었다.
판이 깔리기 전에 발을 들여야 한다고 결심했던 그 밤이, 이제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를 가진 목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막연했던 계획이, 종합운동장이라는 좌표와 다음 달이라는 시한을 얻는 순간이기도 했다.
가게에 도착하자, 점장이 카운터에서 뭔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낡은 서류철이었는데, 겉면에 '해물 대응 물자 유통업 등록 신청서'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종이는 누렇게 색이 바랬고, 모서리는 몇 번이나 접혔다 펴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오래 붙잡고 있었던 물건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이게 뭐예요?"
내가 묻자, 점장은 서류철을 슬쩍 덮으며 대답했다.
"니가 그 시연회에 관심 있는 거 다 안다. 곽태원 그 인간한테 넘어가는 거보다는, 정식으로 등록해서 들어가는 게 낫다."
점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그 안에는 처음 보는 종류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여태까지 들어본 그의 어떤 말투와도 달랐다.
"내가 예전에 이 등록 밟다가 관뒀다. 그때는 겁이 나서."
점장은 잠깐 말을 멈추고 서류철 표지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근데 니는… 니 눈이면 어쩌면 다를지도 모르겠다."
니 눈이면.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적어도 점장이 나에게서 뭔가를 본 것 같았다.
내가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어떤 가능성을, 그는 벌써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서류철을 받아들었다.
종이의 무게가 손끝을 통해 온몸으로 퍼지는 듯했다.
물리적인 무게로 치면 몇 백 그램도 안 되는 서류철이었다.
하지만 그 몇 백 그램 안에 담긴 의미의 무게는, 셈으로도 잘 나오지 않을 만큼 무거웠다.
이건 단순한 취업 서류가 아니라, 내가 아쿠아리움에서 본 것들과, 명함 속 곽태원의 웃음과, 삭제된 게시글 속 하진우라는 이름 모두와 연결된 첫걸음이었다.
"등록하면 시연회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나요?"
"참가는 될 텐데, 거서 니가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실전 경험도 없고, 안목만 있는 애가 그 자리서 버틸 수 있을지…"
점장이 말을 흐렸다.
그의 걱정이 무엇인지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안목은 있지만 실력은 없다는 것, 그 격차가 시연회라는 무대 위에서 얼마나 크게 드러날지, 아직 나 자신도 알지 못했다.
값을 매기는 눈과, 그 값을 지켜낼 수 있는 손은 전혀 다른 능력이었다.
나는 전자만 가지고 있었다.
후자는 셈으로 나오지 않는, 오직 몸으로 부딪혀야만 알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래도 해봐야죠."
내 말에 점장은 잠깐 나를 쳐다보다가, 서류철 위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청서는 니가 직접 작성해라. 도장은 내가 찍어줄 테니까."
서류철 맨 아래, 참가 신청 마감일이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앞으로 삼 주.
그 삼 주 안에 나는 창 하나 제대로 쥐어본 적 없는 손으로, 실전이라는 걸 배워야 했다.
삼 주라는 시간이 짧은지 긴지, 나는 아직 판단할 수 없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연회 참가자 명단 한 귀퉁이에, 이미 예정된 시범 대응자 이름이 작게 인쇄되어 있었다.
하진우.
나는 그 이름을 손끝으로 짚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 이름 옆에는 소속란이 비어 있었다.
소속이 비어 있다는 건, 그가 어느 조직에도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존재라는 뜻이었다.
아니면, 그 소속을 아무도 함부로 적을 수 없는 위치라는 뜻이거나.
둘 중 어느 쪽이든, 그 빈칸이 나에게 말하는 건 하나였다.
내가 삼 주 뒤 그 종합운동장에서 마주하게 될 상대가, 지금 내 손안의 서류철 무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무게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