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몰래 만듭니다, 전설의 손으로

1화

쿠와아앙. 마룡의 꼬리가 대지를 갈랐다. 먹구름 같은 비늘이 하늘을 가렸다. 나는 검을 놓지 않았다. 팔십 평생 쥐어온 검이었다. 손목이 부러졌는데도 놓지 않았다. 놓으면 끝이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있던 병사들은 이미 흩어졌다. 비명 소리조차 멀어졌다. "장인이라는 게, 결국 이런 거였나." 나는 웅얼거렸다. 대답할 사람은 없었다. 제자들은 이미 등을 돌렸고, 사람들이 원한 건 영웅이었지, 장인이 아니었다. 나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나를 전장으로 끌어냈다. 마지막으로 대장간 앞에 앉아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검이 울었다. 칼날에서 낮게,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이치를 벗어난 검. 내가 마지막으로 벼려낸,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건. 이 검을 만들 때도 나는 웃지 못했다. 재료가 부족했고, 시간이 부족했고, 마룡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소식이 부족한 시간을 더 쪼갰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이 검이었다. 완성됐다고 부를 수도 없는, 그냥 억지로 이어붙인 쇳덩이. 마룡의 발톱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숨이 멎었다. 피가 아니라 뭔가 더 뜨거운 것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죽는다. 그 사실이 명료했다. 두렵지 않았다. 다만 아쉬웠다. 한 번도, 온전히 내가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의뢰받은 물건들, 명성을 위해 만든 물건들, 살아남기 위해 만든 물건들. 전부 남을 위한 것이었다. 정작 나를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검이 빛났다. 눈이 멀 것 같은 빛이었다. 그 빛 속에서 나는 무언가에게 붙잡혔다. 손이 아니었다. 형체도 없었다. 그냥 무언가가 나를 잡아당겼다. 다시 만들 기회를 주지. 목소리가 없는 목소리였다. 대가가 뭐냐고 물을 틈도 없었다. 숨이 돌아왔다. 눈을 떴다. 천장이 낯설었다. 곰팡이가 핀 벽지, 낮은 형광등, 좁은 방. 나는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가벼웠다. 너무 가벼웠다. 팔십 년 동안 익숙했던 무게가 사라졌다. 관절이 뻐근하지 않았다. 숨을 쉬어도 가슴이 답답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주름이 없었다. 손가락이 얇았다. 손톱 밑에 굳은살이 없었다. 이건 내 손이 아니었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숨이 가빴다. 벌떡 일어나 벽에 걸린 거울로 달려갔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익숙하지 않은 균형이었다. 거울 속에 낯선 청년이 있었다. 검은 머리, 마른 뺨, 놀란 눈. 열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목이 얇았고, 어깨가 좁았고, 손목이 가늘었다. 팔십 년 대장간에서 단련된 근육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그 눈이 나를 알아보는 눈이었다. "나야."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고, 갈라진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앳된 목소리였다. 거울 속 얼굴이 내 말에 따라 입을 움직였다. 당연한 일인데도 이상했다. 저 얼굴이 나라는 게, 자꾸 낯설게 느껴졌다. 머릿속이 뒤엉켰다. 두 개의 기억이 한 몸 안에서 서로 부딪쳤다. 하나는 늙은 손으로 망치를 잡던 기억. 쇠를 두드리는 소리, 불의 온도, 손끝에 남은 화상 자국들. 마룡의 발톱에 가슴이 뚫리던 기억. 제자들이 등을 돌리던 기억. 다른 하나는 훨씬 작고 초라했다. 각성 시험장. 측정기 앞에 서 있는 나. [등급: 판정 불가 - 최하위] 주변 아이들의 웃음소리. "저거 완전 잉여 아니냐." "판정 불가면 그냥 재능 없다는 소리잖아." 그 말들이 겹쳐서 들렸다. 그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기억. 할머니가 저녁밥을 차려놓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기억. 이하늘. 이 몸의 이름이 저절로 떠올랐다. 국립 탐사관 양성원 편입생. 열여덟 살. 부모는 어릴 때 헤어졌고, 조부모 손에 자랐다. 각성 등급은 최하위, 게이트 접근권 없음. 나는, 강태산은, 이 아이의 몸에 들어와 있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웃음이 나오려다 말았다. 죽었는데, 다시 살았다. 그런데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 칠십 년을 살고, 열여덟의 몸으로 다시 눈을 뜬 것. 그것만으로도 이상한 일인데, 몸의 주인은 하필 이 세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아이였다. 책상 위에 서류가 놓여 있었다. [학비 미납 안내] [3개월 이내 미납 시 편입 자격 박탈] 숫자가 눈에 박혔다. 미납액 214만 원. 납부 기한 D-11.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 목이 탔다. 이하늘의 기억이 밀려들었다. 조부모는 이미 형편이 좋지 않았다. 학비도, 실습 재료비도, 게이트 입장 보증금도, 전부 감당할 수 없는 돈이었다. 할아버지가 병원비 걱정을 하던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통장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나는 알고 있었다. 물건을 만든다는 것. 팔십 년 넘게 검을, 갑주를, 마도구를 만들었다. 대중은 나를 영웅으로 불렀지만, 나는 그저 물건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의뢰가, 명성이, 기대가 나를 가두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걸 만들어본 게 언제였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이 몸, 이 삶이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똑, 똑. 노크 소리에 몸이 굳었다. "이하늘 학생, 안에 있나요?" 여자 목소리였다. 낮고 단정한, 사무적인 톤.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멈췄다. 이 몸의 말투, 이 몸의 습관. 아직 아무것도 익히지 못했다. 문이 열렸다. 서른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짙은 남색 재킷, 묶은 머리, 손에 태블릿. "저는 정하은입니다. 담임강사예요." "...네." 겨우 대답이 나왔다. 정하은은 태블릿을 확인하며 방 안을 훑었다. 방을 훑는 시선이 빠르고 정확했다. 학생 하나하나의 상태를 습관적으로 점검하는 눈이었다. "어제 각성 재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심장이 뛰었다. "E등급. 최하위지만, 판정 불가에서는 벗어났네요." 정하은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 칭찬도 아니었고, 위로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이었다. "게이트 접근은 여전히 금지예요. E등급은 실습장 훈련만 가능해요." "실습장이요." "모의 게이트. 안전 등급 시설." 정하은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화면에는 이하늘이라는 이름과 함께 붉은 글자로 경고 표시가 떠 있었다. 학비 미납, 위험 등급. "학비는 어떻게 할 거예요."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알아보고 있습니다." "D-11이에요." 정하은이 정정했다. "기한이 지나면 자동 퇴교예요." 목이 말랐다. 퇴교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렸다. 이 몸에게는 절박한 문제였을 텐데, 방금 이 몸에 들어온 나에게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214만 원. D-11. 숫자 두 개가 머릿속에서 나란히 떠올랐다. "방법을 찾을 겁니다." 정하은은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이상했다. 뭔가를 재는 눈빛이었다. "어제와 말투가 다르네요." 순간 숨이 멎었다. "뭐가요."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다. 들켰나. 아니, 뭘 들켰다는 건가. 이 몸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는 걸 알아챌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아니에요. 그냥, 그렇게 느껴져서." 정하은은 더 캐묻지 않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나는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숨을 쉬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앉아 손을 내려다보았다. 작고, 마르고, 낯선 손. 하지만 이 손으로, 다시 만들 수 있다면. 팔십 년의 기술이 이 손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몸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 순간, 눈앞에 없던 것이 떠올랐다. [상태창]이 열렸다. 허공에 투명한 창이 떠 있었다. 글자가 선명했다. [이하늘] [등급: E] [특이사항: 감지되지 않는 스킬 1개] 감지되지 않는 스킬. 그 글자를 읽는 순간, 손끝이 저릿했다. 뭔가가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감지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문장 안에 숨겨진 무언가가, 이 초라한 몸 안에 웅크리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창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E등급. 감지되지 않는 스킬 1개. 이 두 줄 사이에, 내가 알아야 할 무언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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