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오전 5시 50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몸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는데 머리만 먼저 일어난 느낌이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지도를 다시 펼쳤다.
종이는 이미 접힌 자국을 따라 해져 있었다.
몇 번을 펼쳤다가 접었는지 세어보지 않았지만, 손끝이 그 자국을 외우고 있었다.
비공개 게이트는 실습장 뒤편, 낡은 창고 지하에 있었다.
관리자 부재 시간대는 매주 화요일, 새벽 3시부터 5시.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시계를 봤다.
오전 5시 50분.
다음 기회까지 채 하루도 남지 않았다.
학비 기한은 D-6.
내일 새벽 게이트에 들어간다 해도, 물건을 완성하고 매입처를 찾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은 닷새뿐이었다.
하루가 아까웠다.
아니, 한 시간이 아까웠다.
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 앉았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이 창틀 사이로 얇게 새어 들어왔다.
머리를 굴려봤다.
관리자 부재 시간대가 아닌 때에 미리 들어갈 방법은 없을까.
그러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그건 도둑질이 아니라 자살이었다.
발각되면 그날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학비 문제는 아예 논할 필요조차 없어질 것이다.
내일 새벽까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준비해야 했다.
오전 7시.
실습장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차유나와 마주쳤다.
복도는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시간이라 유난히 밝았다.
그 밝음 속에서 차유나의 얼굴이 유독 또렷하게 보였다.
"어제도 늦게까지 있었죠."
차유나가 말했다.
표정이 걱정스러웠다.
눈 밑에 옅은 그늘이 보였다.
저도 잠을 설쳤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묻지 않았다.
"...공부 좀 했어."
"이하늘 씨, 예전엔 이렇게 열심히 안 했잖아요."
그 말에 순간 말이 막혔다.
이하늘의 기억 속에서, 이 아이는 늘 나를 무능력자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해주던 몇 안 되는 친구였다.
그 기억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이 목 뒤를 스쳤다.
"사람이 변할 수도 있지."
말이 조금 딱딱하게 나왔다.
차유나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표정이 요즘 좀."
"좀?"
"...날카로워요. 예전엔 순둥이였는데."
순둥이.
이하늘이 그런 사람이었나.
강태산의 기억 속엔 그런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차유나는 뭔가 더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종이 울려 대화가 끊겼다.
"수업 늦겠다."
내가 먼저 발을 뗐다.
차유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다가 뒤따라왔다.
그 시선이 등 뒤에 계속 남아 있는 게 느껴졌다.
오전 9시 30분.
정하은의 수업이었다.
오늘은 게이트 등급 체계에 대한 이론이었다.
강의실 앞자리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필기를 하는 척했지만, 손은 지도 위 창고 표시를 다시 그리고 있었다.
"게이트는 E부터 S까지 등급이 나뉘어요."
정하은이 화면을 넘겼다.
화면에는 등급별 색으로 구분된 표가 떠 있었다.
E는 초록, S는 검붉은 색이었다.
"E등급 게이트는 위험도가 낮지만, 그만큼 나올 재료도 낮아요. S등급은 국내 4명의 탐사관만 단독 진입이 허가돼요."
학생 몇 명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정하은은 하나씩 답했다.
목소리에 억양이 거의 없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데이터를 나열하는 방식이었다.
화면에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서도화.
선구자 길드 대표, S랭크.
정하은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이 사람은 게이트 안에서 인식 차단 로브를 뚫고 사람을 찾아낸 적이 있어요. 감지 능력이 그 정도예요."
학생들 사이에서 낮은 감탄이 흘렀다.
누군가는 "말도 안 돼"라고 중얼거렸고, 누군가는 그 이름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
나는 그 이름을 조용히 되새겼다.
인식 차단 로브를 뚫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그게 보통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데 왜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정하은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비공개 게이트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할게요."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비공개 게이트는 등록되지 않은 게이트를 말해요. 발견 즉시 신고해야 하고, 무단 진입은 법적으로 처벌받아요."
정하은의 시선이 강의실을 한 번 쓸었다.
그 시선이 나를 지나갈 때, 잠깐 멈춘 것 같았다.
아니, 그건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손끝이 차가워졌을까.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 문장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무단 진입은 법적으로 처벌받아요.
오후 1시.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자리를 일부러 구석으로 골랐다.
숟가락을 든 손이 자꾸 지도 생각으로 흘러갔다.
차유나가 맞은편에 앉았다.
쟁반 위에 놓인 국이 아직 김을 내고 있었다.
"요즘 뭔가 숨기는 거 있죠."
숟가락을 든 손이 멈췄다.
"없어."
"거짓말."
차유나가 웃었다.
악의는 없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 안에 뭔가를 확신하는 표정이 섞여 있었다.
"눈이 계속 창고 쪽을 보던데요. 아까 복도에서도."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그렇게 눈에 보이는 티를 냈던가.
"그냥, 조심하라고요. 정 강사님 눈이 매워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강사님이 뭐."
"그분,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해요. 이상한 낌새 있으면 바로 알아채요. 예전에 무단으로 실습 장비 빼돌리던 선배 한 명 있었는데, 딱 걸렸거든요."
"...그래서?"
"퇴학당했어요."
숟가락에 담긴 밥을 씹는 동안 그 단어가 입안에서 함께 씹혔다.
퇴학.
지금 나에게 그건 학비 문제보다 더 치명적인 결말이었다.
"왜 그 얘기를 나한테 해."
"그냥요. 이하늘 씨가 무모한 짓 안 했으면 해서."
차유나의 목소리에 걱정이 섞여 있었다.
그 걱정이 진심이라는 걸 알아서, 오히려 더 답답했다.
숨기고 있는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목구멍을 조여왔다.
오후 4시.
실습장으로 돌아와 부품을 정리하는 척하며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작업대 아래로 몰래 지도를 펼치고, 위로는 나사와 렌치를 만지는 흉내를 냈다.
누가 지나갈 때마다 지도를 접었다가 다시 펼쳤다.
관리자 부재 시간까지 11시간.
학비 기한은 D-6.
게이트에 들어갈 기회는 바로 다음 날이었지만, 그 뒤에도 채취와 제작, 판매까지 전부 닷새 안에 끝내야 했다.
오늘 밤까지 진입 동선과 필요한 도구를 전부 확정해야 했다.
일단 창고 구조라도 다시 확인해야 했다.
낮에 봐두면 새벽에 움직일 때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창고로 향했다.
실습장 뒤편으로 돌아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잡초가 무성한 길을 지나야 했고, 창고는 페인트가 벗겨진 벽으로 서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은 좁고 어두웠다.
문은 잠겨 있었다.
하지만 자물쇠가 낡았다.
강태산의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금속의 결, 걸쇠의 구조, 힘을 주는 방향.
그 손기술이 어디서 온 건지 몰랐다.
이하늘의 기억에는 없었다.
강태산의 삶에서 넘어온 감각이었다.
전당포에서, 뒷골목에서, 급전이 필요할 때 배운 기술.
손끝을 넣고 살짝 비틀었다.
철컥.
자물쇠가 풀렸다.
숨이 멎었다.
지금 열면, 지금 들어갈 수도 있었다.
관리자 부재 시간대가 아니어도, 문 자체는 열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계산이 돌았다.
지금 시각, 오후 4시.
정하은의 순찰 시간표는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수업 시간이니 위험이 덜할 거라는 판단이 섰다.
문을 살짝 밀었다.
경첩이 낮게 삐걱거렸다.
그런데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물쇠를 원래대로 걸어놓고 몸을 숨겼다.
창고 옆 벽 그늘로 몸을 붙였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정하은이었다.
순찰을 도는 듯했다.
손전등을 들고 창고 주변을 비췄다.
빛이 내가 숨은 곳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숨을 참았다.
정하은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가, 창고 정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자물쇠를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
자물쇠가 제대로 걸려 있는지 흔들어보는 소리였다.
다행히 아까 원래대로 걸어놓은 게 맞아떨어졌다.
정하은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벽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었다.
등이 땀으로 축축했다.
지금은 아니었다.
내일 새벽도 위험했다.
정하은이 이 구역을 순찰한다면, 새벽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순찰 시간이 고정된 게 아니라 불규칙하다면, 관리자 부재 시간대라는 것도 완전히 안전하다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학비 기한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돈을 빌릴 곳도 없었다.
장학금 신청 기간은 지났고, 아르바이트로는 어림도 없는 금액이었다.
결국 남은 길은 하나였다.
물건을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선 재료가 필요했고, 재료는 게이트 안에만 있었다.
오후 9시.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상태창을 열었다.
[이하늘]
[등급: E]
[특이사항: 감지되지 않는 스킬 1개]
이 스킬이 뭔지 알아야 했다.
확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등급, E.
특이사항, 감지되지 않는 스킬 1개.
이름도, 효과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시스템조차 그 스킬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결심했다.
내일 새벽 3시.
위험을 감수한다.
적발되면 끝이라는 걸 알면서도, 다른 선택이 없었다.
돈을 구할 방법도, 등급을 올릴 방법도, 결국 물건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자물쇠 여는 법을 다시 손끝으로 연습했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방 안에 있는 오래된 서랍 자물쇠를 상대로 몇 번이고 손끝을 밀어 넣었다.
철컥, 철컥.
같은 소리가 반복될수록 손끝의 감각이 점점 예민해졌다.
시계는 밤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창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순간 손이 멈췄다.
발소리는 방문 앞에서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발소리의 속도가 평소와 달랐다.
느리고, 일정했다.
누군가 걸음의 리듬을 의도적으로 조절하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 나를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자물쇠를 내려놓고 문 쪽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문틈으로 밖을 살폈다.
복도는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 발소리의 잔상이 여전히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 리듬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들어본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