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9살, 왼팔부터 다시 던진다

3화

"거기 서 있는 애, 너." 박기수 감독이 나를 가리켰다. 흙바닥에 그늘 하나 없는 운동장, 오후 네 시의 햇볕이 정수리를 찔렀다. "네?" 나는 놀라 되물었다. 감독은 마흔 중반쯤으로 보였고, 목에 걸린 호루라기가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공 던져본 적 있어?" 감독이 물었다. "아... 조금요." 나는 대답했다. 사실은 51년의 기억 속에서 수천 번, 수만 번 공을 던져본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대학 4년, 그리고 사회인 야구 동호회에서 20년 넘게 던진 공만 해도 셀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아홉 살짜리 몸으로는 처음이었다. 감독은 낡은 야구공 하나를 나에게 던져주었다. 공은 실밥이 반쯤 벗겨져 있었고, 가죽 표면에 검은 얼룩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저기 저 애한테 던져봐." 감독이 현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현우가 글러브를 들고 15미터쯤 떨어진 자리에 섰다. 나는 공을 손에 쥐었다. 손끝의 감각이 낯설었다. 손가락 길이가 짧아서 그립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이 손으로는 제대로 못 던져.' 나는 손가락을 몇 번이나 다시 걸어보며 그립을 맞췄다. '전처럼 던지면 안 돼.' 나는 그렇게 되뇌었다. 전생에서 나는 항상 있는 힘껏 던졌다. 어깨가 빠질 것처럼 팔을 휘둘러야 그게 진짜 던지는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게 팔을 망가뜨렸다. 열아홉 살, 회전근개가 완전히 파열되던 그 순간의 통증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힘을 절반쯤만 넣어 부드럽게 던졌다.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현우의 글러브 정확히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짝! "오, 컨트롤 좋은데." 감독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코치에게 뭔가를 작게 말했다. 나는 속으로 안심했다. '속도보다 정확도. 지금은 그거면 돼.' '괜히 세게 던져서 어깨 상하면 그게 더 손해야.' 훈련은 오후 6시까지 계속되었다. 러닝, 캐치볼, 배팅 순서로 진행됐다. 배팅 연습에서는 나무 배트를 잡는 것부터 어색했다. 배트가 무겁게 느껴졌고, 스윙 한 번에 손목이 시큰거렸다. '이 몸은 아직 근육이 하나도 없어.' '조급해하지 말자.' 현우는 유난히 열심히 뛰었다. 감독이 시키는 것보다 항상 한 바퀴씩 더 돌았다. 캐치볼을 할 때도 다른 아이들보다 팔을 더 세게 휘둘렀다. 땀이 얼굴을 타고 뚝뚝 떨어졌지만 현우는 손등으로 대충 닦고 다시 뛰었다. "너 왜 그렇게 무리해?" 나는 쉬는 시간에 현우에게 물었다. 물통에 든 물을 나눠 마시는 잠깐의 틈이었다. "나 이번에 주전 자리 놓치면 안 돼서." 현우가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우리 팀에 나보다 잘하는 애 하나 더 들어왔거든." 현우의 눈빛이 순간 조급해 보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저 나이에 벌써 저런 압박을 느끼는구나.' '아홉 살이 뭘 놓칠 게 있다고.'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마지막 러닝 훈련, 운동장 열 바퀴. 4월이었지만 날씨는 이미 덥고 습했다. 습도가 높아서 땀이 식지 않고 그대로 몸에 눌어붙는 느낌이었다. 운동장 트랙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 몇몇은 벌써 세 바퀴쯤 돌고 헉헉대며 걸음을 늦췄다. 나는 51년의 기억 속 체력 관리법을 떠올리며 호흡을 조절했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일정한 리듬으로.' 7바퀴쯤 돌았을 때, 현우의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나는 뛰면서 현우의 얼굴을 살펴봤다. 입술이 창백했고, 눈빛이 흐려져 있었다. 땀은 오히려 아까보다 줄어든 것 같았다. '저건 그냥 힘든 게 아니야.' 51년의 기억이 나에게 경고음을 보냈다. 젊었을 때 여름 훈련 도중 후배 하나가 딱 저런 얼굴로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때 코치가 물을 억지로 먹이려다가 사레가 들려서 더 큰일이 났었다. 열사병 초기 증상이었다. 체온이 오르는데 땀이 멎는 것, 그게 가장 위험한 신호였다. "감독님!" 나는 소리쳤다. 감독이 돌아보는 순간, 현우가 그대로 무너졌다. 쿵! "현우야!" 나는 뛰어가 현우를 부축했다. 다른 아이들이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몰려들었다. 현우의 몸이 뜨거웠다. 땀은 거의 나지 않고 있었다. 눈은 반쯤 감긴 채 흰자가 보였다. "물, 물 가져와!" 누군가 소리쳤다. "감독님, 열사병이에요! 물을 마시게 하면 안 돼요, 목에 걸릴 수 있어요! 그늘로 옮기고 옷을 벗기고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야 해요!" 나는 소리쳤다. 목소리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크고 또렷하게 나왔다. 감독은 순간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너... 그런 걸 어떻게 알아?" 감독이 물었다. 주변에 있던 코치들도 나를 쳐다봤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TV에서 봤어요." 나는 급하게 둘러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너무 티 났나.' 감독은 더 묻지 않고 즉시 현우를 그늘로 옮겼다. 나무 그늘 아래 눕히고 겉옷을 벗기자 코치 하나가 근처 수돗가에서 수건을 적셔왔다. 젖은 수건으로 목덜미와 겨드랑이를 닦자, 몇 분 뒤 현우가 눈을 떴다. "어... 여기가..." 현우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그 손을 꽉 잡았다. 손끝이 아직도 뜨거웠다. 감독이 119를 불렀고, 현우는 그날 병원에 실려 갔다. 구급차가 오는 십여 분 동안 나는 계속 현우의 이마를 젖은 수건으로 닦았다. '제발, 큰 일 없어야 해.' 다행히 큰 문제는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수액을 맞고 하루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다음 날, 현우가 붕대도 없이 멀쩡한 얼굴로 운동장에 나타났다. 가방을 메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걸음걸이가 어제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야, 너 어제 진짜 대단했어. 감독님이 너 아니었으면 큰일났을 거라고 하시더라." 현우가 말했다. 말투에는 어제 일에 대한 부끄러움과 고마움이 섞여 있었다. "그냥... 어쩌다 알았어."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현우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평소보다 오래 머물렀다. "도윤아, 너 뭔가 좀 다른 것 같아. 예전보다." 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들킬 수도 있어.' '아니, 아직은 아니야.' "다르긴 뭐가 달라." 나는 웃으며 넘겼다. 일부러 어깨를 툭 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현우도 픽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현우는 그 후로도 종종 나를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수업 시간에 창밖을 보다가도, 급식을 먹다가도, 문득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면 현우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이 반갑기도 하고, 동시에 불안하기도 했다. 이 아이는 언젠가 내 비밀에 가장 가까이 다가올 사람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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