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9살, 왼팔부터 다시 던진다

4화

일주일 후, 저녁 식탁. 어머니는 오늘도 김치찌개를 끓였다. 냄비 안에서 돼지고기 비계가 뽀글뽀글 끓어오르는 소리가 났다. 식탁 위에는 콩나물무침과 깍두기, 그리고 계란말이가 올라와 있었다. 아버지는 신문의 야구면을 펼쳐놓고 있었다. 프로야구 순위표 옆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가 몇 개 쳐져 있었다. 나는 밥을 한 숟갈 뜨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심장이 먼저 뛰기 시작했다. '말해야 해. 지금 말 안 하면 다음 주에도 못 할 거야.' "엄마, 저 야구단 정식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니가 젓가락을 멈췄다. 찌개를 뜨려던 손이 허공에서 잠시 멈춰 있었다. "야구단이라니, 무슨 야구단?" 어머니가 물었다. "초록동 유소년 야구단이에요. 감독님이 저 계속 나오래요." 나는 대답했다. 아버지가 신문을 접어 옆으로 치웠다. 접힌 신문지 사이에서 야구 카드 한 장이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돈 드는 거 아니야? 글러브도 사야 하고, 스파이크도 사야 할 거고."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그 순간 이 집의 형편을 계산했다. '아버지 월급이 25만 원쯤이었지. 방세 내고, 저 형 학원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어. 게다가 형은 지금 중학교 3학년이니까 곧 고등학교 등록금도 필요할 거고.' 계산은 순식간에 끝났고, 결론도 하나였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안 사도 돼요." 나는 대답했다. 어머니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눈빛에는 화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게 담겨 있었다. "도윤아, 그런 게 아니야." 어머니가 말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건 네 혼자 몫이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의 몫이야." "엄마..." 나는 목이 메었다.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돈은 벌면 되는 거야." 어머니가 덧붙였다. "대신 너는 딴생각 말고 몸 조심해서 열심히 하면 돼." 아버지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말이 맞다. 뭐든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나는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도 눈물이 자꾸 고였다. 51세까지 살면서, 나는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원래의 인생에서 나는 고3 시절 어깨를 완전히 망가뜨린 뒤,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기억이 났다. 어머니는 그때 이미 병원에 계셨다. 폐암 3기, 항암치료를 받으며 누워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병원 화장실에서 울었었다. 세면대 앞에서 찬물을 얼굴에 끼얹으며 소리 없이 흐느꼈던 그날의 감각이 지금도 손끝에 남아 있었다. 야구를 그만둔다고 말할 사람도 없었고, 축하해줄 사람도 없었다. "엄마." 나는 밥그릇을 내려놓고 어머니를 불렀다. "응?" 어머니가 대답했다. "저 사실은... 다치기 싫어요."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팔이 아프면... 안 돼요." 어머니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친 손바닥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느낌이 오래도록 남았다. "당연하지. 다치면 안 돼."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려면 감독님 말씀 잘 듣고, 무리하면 안 되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았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는데 콧물까지 같이 닦여 나왔다. 아버지가 신문을 다시 펼치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스파이크 하나는 사줘야지. 애 발 다칠라." 어머니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아버지를 쳐다봤다. "당신이 언제부터 그렇게 아들 생각을 했다고." "내가 원래 생각이 많은 사람이야."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식탁 위 분위기가 다시 평소처럼 돌아왔다. 찌개는 이미 반쯤 줄어들어 있었다. 그 주 토요일,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시장 근처 스포츠용품점에 갔다. 가게 문을 열자 낡은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가게 안에는 낡은 글러브와 배트가 진열되어 있었다. 먼지가 앉은 유리 진열장 안에는 야구공과 헬멧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주인 아저씨가 계산대 뒤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일어났다. "뭐 사러 왔어요?" 주인 아저씨가 물었다. "애 글러브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나는 왼손에 맞는 글러브를 하나씩 껴보았다. 가죽이 딱딱한 것도 있었고, 손가락이 남는 것도 있었다. 8,500원짜리 국산 글러브가 손에 딱 맞았다. "이거면 돼요."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더 비싼 거 있는데." 아버지가 물었다. 옆 진열대에는 22,000원짜리 수입 글러브가 놓여 있었다. 가죽 색깔이 더 밝고 손목 끈도 더 튼튼해 보였다. "이거면 충분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는 잠시 그 22,000원짜리 글러브를 만져보더니 다시 내려놓았다. "그래, 애가 알아서 고르니까 됐다." 아버지가 주인 아저씨에게 계산을 부탁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새 글러브를 낀 손을 자꾸 오므렸다 펴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가 문득 물었다. "도윤아, 너는 왜 야구가 하고 싶어졌어?" 나는 잠시 대답을 고르다가 말했다. "제가 예전에... 한 번 망친 게 있어서요." "이번엔 제대로 하고 싶어요."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걸음을 멈추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것 같았다. "망치다니, 뭘 망쳐. 넌 아직 아무것도 안 했잖아."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맞아요, 아버지. 이 몸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요.' '하지만 저는... 한 번 다 잃어봤어요.' '어깨도, 야구도, 그리고 엄마도.' 나는 그렇게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새 글러브를 가슴에 꼭 안았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칠 때 아버지가 붕어빵 파는 리어카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붕어빵 먹을래?" 아버지가 물었다.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천 원을 내고 붕어빵 세 개를 받았다. 우리는 정류장 벤치에 앉아 붕어빵을 나눠 먹었다. 팥이 든 붕어빵의 온기가 손바닥까지 전해졌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신문의 야구면을 다시 펼쳐 들었다. 나는 그 옆에서 글러브를 무릎에 올려놓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 글러브 냄새를 맡았다. 가죽 냄새와 새 제품 특유의 화학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 냄새를 다시 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방 안 불을 끄고 이불 속에서도 글러브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옆방에서 형이 라디오 듣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부모님 방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낮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 낡은 다세대 주택, 방 두 개짜리 열두 평 집이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이번엔 절대로, 왼팔을 함부로 쓰지 않을 거야.' '이번엔 절대로, 어머니를 먼저 보내지 않을 거야.'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나는 그 다짐이 얼마나 오래갈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며칠 뒤 감독님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그 다짐을 시험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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