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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낯선 알림음이 계속 울렸다. 삐빅. 삐빅. 처음에는 그냥 계측기 오류인가 싶었다. 이 팔찌, 원래도 가끔 헛것을 잡는다. 바람 세게 불면 마력파라고 오인하고, 지나가는 고양이 체온 변화도 이상 신호라고 뜨는 저질 계측기니까.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팔찌를 들어 확인해보니, 계측기가 아니라 다른 신호였다. 던전청 등록 탐색자에게 오는 공용 통신망이었는데, 나 같은 F등급한테는 평소에 광고성 문자밖에 안 오는 그 통신망에서, 지금은 실시간 호출 신호가 뜨고 있었다. [비인증 발신자: 감지 이상 신호 확인 요청] 그 밑에 조그맣게 적힌 문구를 읽었다. [본 신호는 관측소 정기 스캔 중 이상 마력 파동을 포착하여 발송되었습니다. 해당 파동의 발생 지점이 귀하의 등록 게이트와 일치합니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포착됐다고? 등록도 안 된 이 소형 게이트, 아무도 관심 없다고 생각했던 이 구석진 균열이 관측소 스캔에 걸렸다는 소리였다. 여기 진짜 아무도 안 오는데. 근처 슈퍼 아저씨도 이 균열 있는 거 모른다. 30초짜리 빛의 구슬.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별거였나.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 판단이 안 됐다. 뭔가 걸렸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어서였다. 3년 동안 나는 걸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평가장에서도 없는 사람처럼 지나갔고, 등급표에서도 늘 맨 아래, 관심 밖. 그런데 이번엔 관측소가, 저 위에 있는 어떤 시스템이 나를 봤다는 거다. 그날 밤은 그렇게 끝났다. 별다른 후속 조치는 없었다. 나는 그냥 신호를 무시하고 집으로 내려왔다. 어차피 F등급한테 던전청이 진짜로 관심 가질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알림 하나 뜨고 끝이겠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런데 다음날, 학교 정문 앞에 낯선 차가 서 있었다. 검은색 세단이었다. 던전청 소속 차량은 보통 마크가 크게 붙어 있는데, 이건 아무 마크도 없었다. 그냥 반짝반짝한 검은 차. 저런 거 우리 동네에는 안 다닌다. 트럭이랑 경차, 스쿨버스가 도로 삼대장인 동네에. 애들 몇 명이 그 차를 보고 수군거렸다. 누구네 부모가 왔나, 아니면 뭐 촬영하나. 나도 그냥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더니, 안에서 한 여자가 손을 흔들었다. "이하준 학생?" 삼십 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목에 걸린 명찰 같은 게 반짝였다. 자세히 보니 명찰이 아니라 마도구였다. 자체 발광하는 신분증. 저런 거 처음 봤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그냥 코팅된 종이 명찰인데. "..맞는데요." "저는 '찬화' 관리부 소속 김민서라고 합니다.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찬화. 그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서울 제5 던전 특구, 구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대형 탐색자 관리 조직 이름이었다. 대학생 탐색자들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뉴스에서 몇 번 봤다. 유명 탐색자들 소속이 다 저기다. 나 같은 지방 F등급 고등학생이랑 무슨 상관인데. "저요? 왜요?" "어제 저녁, 관측소가 특이 신호를 포착했습니다. 발신지가 학생 등록 게이트와 일치하더군요." 그 알림이 진짜였구나. 나는 순간 얼굴이 굳었다. 뭔가 잘못한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게이트 무단 사용 뭐 그런 걸로 걸린 건가. 사실 무단 사용은 맞는데. "저.. 뭐 잘못한 거예요?" 김민서라는 여자가 웃었다. 그 웃음이 왠지 불편했다. 영업용 웃음 같았다. 계약서 들이밀기 직전에 짓는 그런 웃음. "아니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희 쪽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수치가 나왔거든요." "수치요?" "측정 범위 초과, 게다가 지속 시간이 이례적으로 길었습니다. 원래 학생 기록에는 3초 이내 소멸이라고 되어 있던데, 어제는 거의 30초가 유지됐다고 나와 있네요." 30초 구슬. 어제 그 순간을 그새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심지어 내 옛날 기록까지 뒤졌다는 소리고. 3초 이내 소멸, 그거 내 등급표에 적힌 숫자다. 그걸 어떻게 이렇게 빨리 뽑아 왔지. 등급 평가장에서는 그렇게 무시받던 폭발이, 이제는 다른 데서 관심의 대상이 됐다는 게 좀 어이가 없었다. 그때는 다들 하품하면서 봤는데. "그래서요." "서울 제5 특구에서 진행되는 중층 시험에 참관 자격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참관. 말이 좋아 참관이지, 이게 그냥 구경하러 오라는 소린가 싶었다. 관람권 받는 셈인가. 그것도 내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뭘 이상하게 터뜨려서. "제가 왜요." "학생의 잠재력을 저희가 좀 더 정밀하게 측정해보고 싶어서요. 정식 계측기로는 잡히지 않는 파동이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정식 계측기로는 안 잡힌다는 말이 좀 걸렸다. 그럼 대체 뭘로 잡았다는 건데. 관측소 장비는 다른 건가. 김민서가 서류철을 하나 건넸다. 열어보니 계약서 비슷한 문서였다. 임시 참관 자격, 왕복 교통비 및 체류비 전액 지원, 그리고 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비밀 유지 서약' 조항이 붙어 있었다. 비밀 유지라니. 뭘 그렇게 대단한 걸 보게 되나. 아니면 나에 대해서 비밀 유지하라는 건가. "기간은요." "일주일 정도입니다. 학교 쪽에는 저희가 이미 교육 프로그램 명목으로 협조 요청을 드렸습니다." 학교랑 이미 얘기가 끝났다는 소리다. 내 의견 따위는 그다음 순서였다는 뜻이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저기요, 저 아직 대답 안 했는데요.' ..속으로만 되뇌었다. 어차피 결정은 이미 저쪽에서 다 해놓은 눈치였으니까. "제가 안 가겠다고 하면요." "그럼 저희는 다른 방식으로 계속 관찰할 겁니다. 아무래도 그쪽이 서로 좀 불편하겠죠."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 협박이었다. 어쩐지 던전청 계통 조직들이 다 이런가 싶었다. 겉으로는 정중한데, 속으로는 다 결정된 걸 통보하는 방식. 웃으면서 압박하는 거, 이거 원래 다들 배워서 오나.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서울 제5 특구. 서울 제5 특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던전 특구라고 들었다. 그곳에서는 F등급이니 D등급이니 하는 나 같은 하위권은 명함도 못 내밀 만큼 강한 탐색자들이 활동한다. 등급 자체가 다른 리그였다. 우리 지방 게이트랑은 규모부터 비교가 안 되는 곳. 그런 곳에서, 만약 내가 그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만약 그 30초를 더 늘릴 수 있다면. 3년 동안 못 넘던 벽을, 정말로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이상하게 뛰었다. 두려움 반, 기대 반. 아니, 어쩌면 기대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 학교는 어떻게 되는데요." "일주일 결석은 처리해드립니다. 그리고 이건 참고 사항인데." 김민서가 목소리를 낮췄다. "참관 중 실력을 증명하면, 저희 쪽에서 정식 등록 절차를 지원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정식 등록. F등급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는 소리였다. 나는 서류철을 다시 들여다봤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3년 동안 F였던 내가, 이제 뭔가 다른 걸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이게 진짜인가. 이렇게 갑자기.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저.. 얼굴 같은 거, 노출되는 거예요?" 뜬금없는 질문이었을 거다. 실제로 김민서가 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 보니까 나도 좀 민망해졌다. 참관 자격 얘기하다가 갑자기 얼굴 걱정을 하는 애가 어디 있겠나. "음, 참관은 관찰자 자격으로 진행되니까 크게 노출될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왜, 걱정되는 게 있으세요?" 걱정되는 게 있냐고. 걱정되는 게 아니라, 이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이다. 이거 하나 무너지면 나머지는 다 소용없다. 나는 인식차폐 마도구를 만지작거렸다. 손끝에 닿는 그 매끈한 표면이 왠지 안심이 됐다.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김민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냥 흔한 사춘기 애 걱정이라고 생각했겠지. 뭐, 그렇게 넘어가는 게 나로서는 편했다. 그렇게 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내 삶에 외부에서 온 변화가 끼어든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스마트폰을 열어 서울 제5 특구 정보를 검색했다. 사진 몇 장이 떴다. 거대한 게이트 구조물, 그 앞에 늘어선 탐색자들, 그리고 특구 소속 유명 탐색자 명단. 명단을 눌러 스크롤을 내렸다. 등급별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이름 옆에 붙은 별 개수가 늘어났다. 나는 별 하나도 못 받는 등급인데. 그 명단 맨 위에, 세 사람의 이름이 함께 붙어 있었다. 유하은. 강서윤. 박다인. '찬화 트리오'라고 불리는 그 세 사람이었다. 사진 속에서 그들은 서로 어깨를 두르고 웃고 있었다. 화면 밝기를 낮췄는데도 사진이 유독 밝게 느껴졌다. 저 셋만 세상이 다른 각도로 비추는 것 같았다. 뭔가 단단히 얽혀 있는 느낌이었다. 서로 오래 알았을 게 분명한 눈빛, 편한 자세, 굳이 카메라를 신경 안 쓰는 여유까지. 저 안에 내가 들어가는 건가. 어울릴 수 있을까. 기사 밑에 달린 댓글도 몇 개 훑었다. '찬화 트리오 이번 시즌도 독주 예상', '중층 시험 벌써부터 기대된다'는 말들. 그 사이 어디에도 F등급 지방 고등학생이 낄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답을 알 수 없는 채로,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가방에 뭘 넣어야 할지도 모르면서,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옷가지를 밀어 넣었다. 마음은 벌써 서울 제5 특구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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