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서울 제5 던전 특구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구 인천 지역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는 짐작했는데, 실제로 도착해서 보니 그냥 거대한 도시가 하나 더 생긴 느낌이었다. 특구 중심부에는 거대한 게이트 타워가 솟아 있었고, 그 주변으로 탐색자 지원 시설, 마도구 상점, 훈련장 같은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오는 동안 몇 번이나 고개를 들어 타워를 올려다봤다. 목이 아플 정도로 높았다. 저런 걸 짓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저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몇 등급쯤일까,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자꾸 튀어나왔다. 사람 구경도 특이했다. 다들 어깨에 뭔가를 하나씩 메고 다녔다. 검, 지팡이, 활, 심지어 방패까지. 나는 그냥 맨몸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게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여기서는 내가 이상한 쪽이었다.
김민서가 안내한 곳은 중층 시험장 관람석이었다.
"여기서 지켜보시면 됩니다. 오늘 시험이 바로 진행될 예정이에요."
관람석에 앉으니 의자가 생각보다 푹신했다. 이런 데는 편의시설까지 신경 쓰는구나 싶었다. 관람석은 반투명한 마도 장벽으로 시험장과 분리되어 있었다. 안전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시험장 안쪽에서 벌어질 일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새삼 실감이 났다.
"이 장벽이.. 안 뚫릴까요?"
"여태 뚫린 적 없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김민서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 말투가 오히려 더 불안했다. '여태' 없었다는 건, 언젠가는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닌가.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장벽 너머를 쳐다봤다.
"저 세 사람이 오늘 시험 대상자입니다."
김민서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시험장 입구 쪽에서 세 사람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사진에서 봤던 그 얼굴들이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키가 큰 여자였다. 어깨까지 오는 짧은 머리, 날카로운 눈매. 무기라기보다는 거의 예술품처럼 다듬어진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 대검이 자기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웠다.
"저분이 강서윤 씨입니다. 근접 딜러, 팀 리더 역할이에요."
다음은 안경을 쓴 조용한 인상의 여자였다. 다른 두 사람보다 체구가 작고, 손에는 얇은 지팡이 형태의 마도구를 들고 있었다. 뭔가를 손끝으로 계속 매만지는 게, 습관적인 동작 같았다.
"저분이 유하은 씨. 마도구 전문, 후방 지원과 결계 담당입니다."
마지막으로, 밝은 색 머리를 높이 묶은 여자가 활을 만지며 뭔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시위를 당기고 놓고, 당기고 놓고. 저게 무슨 의식 같은 건가 싶었다.
"저분이 박다인 씨. 원거리 딜러입니다."
세 사람 다 대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나이차가 별로 안 느껴졌다. 그냥 뭔가 다른 세계 사람들 같았다. 나랑 비슷한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저 사람들이 겪었을 3년, 5년, 그 시간이 얼마나 다른 무게였을지 감히 짐작도 안 됐다.
"오늘 저 세 분이 도전하는 게, 중층 문지기입니다."
김민서의 설명에 따르면, 문지기는 각 층을 지키는 강력한 던전 몬스터로, 이를 격파해야만 다음 층으로 넘어갈 자격을 얻는다고 했다. 중층 문지기는 이미 여러 차례 도전에서 패배한 강적으로, 저 셋도 이번이 세 번째 시도라고 했다.
"세 번째면.. 이번엔 이길 확률이 좀 높아지는 건가요?"
"글쎄요. 오히려 지칠 수도 있어요. 세 번째 도전은 심리적으로 제일 힘들다고들 해요."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두 번 실패한 뒤에 또 도전한다는 건, 이기고 싶다는 마음보다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커지는 시점 아닐까. 나는 그런 걸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짐작만 했다.
시험장 안쪽 문이 열리고,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키가 5미터쯤 되어 보이는 갑주 형태의 몬스터였다. 팔 대신 거대한 곤봉 두 개가 달려 있었고, 온몸에서 흐릿한 마력의 안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바닥이 낮게 울렸다.
쿵. 쿵.
"저게.. 문지기예요?"
"네. 이름은 '강철 감시자'입니다."
압도적이었다. 나는 저런 걸 상대로 손끝에 30초짜리 빛의 구슬을 만들어봤다는 게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지구 방위대 놀이를 하던 어린애 같은 기분이었다.
시험이 시작됐다.
강서윤이 먼저 뛰어들었다. 대검을 휘두르는 궤적이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발끝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조차 안 들릴 정도였다.
퍼어억-!
대검이 갑주를 때렸지만, 튕겨 나가듯 미끄러졌다. 저 정도 방어력이면 웬만한 근접 공격은 다 무용지물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저 정도 힘으로 후려치는데도 안 뚫리는 갑주가 대체 뭘로 만들어진 건지 상상도 안 됐다.
박다인이 그 사이 화살을 연속으로 쏘았다.
휘익-! 휘익-!
화살들이 문지기의 관절 부위를 노렸지만, 그마저도 마력 안개에 부딪혀 사그라들었다. 화살이 안개에 닿는 순간, 촛불이 꺼지듯 그냥 사라져버렸다. 저게 원래 저렇게 되는 건가, 아니면 저 안개 자체가 방어 수단인가.
유하은은 뒤쪽에서 계속 결계를 유지하며 두 사람을 보호하고 있었다. 지팡이 끝에서 흐르는 은은한 빛이, 이따금 문지기의 곤봉 공격을 막아냈다. 그 빛이 사라지고 다시 생기는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마력을 그만큼 빨리 소모하고 있다는 뜻일 텐데, 나는 그게 얼마나 위험한 신호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불안했다.
"밀려요! 서윤아, 뒤로!"
유하은이 외치는 소리가 관람석까지 들렸다.
강서윤이 뒤로 몸을 던지듯 물러났다. 곤봉이 그녀가 서 있던 자리를 그대로 내리찍었다.
쿠웅-!
바닥이 흔들렸다. 관람석의 마도 장벽도 미세하게 진동했다. 나는 순간 몸이 굳었다. 저게 나였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15분 정도가 흘렀을 무렵, 셋 다 지친 기색이 확연했다. 강서윤의 팔뚝에 상처가 늘어났고, 박다인의 화살통도 눈에 띄게 비어갔다. 유하은의 지팡이 끝에서 흐르던 빛도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어렵겠는데요."
김민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그저 지켜만 봤다. 참관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냥 앉아서 남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 손에 든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이럴 때는 편한 게 아니라 오히려 답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광경이 나를 자꾸 자극했다.
저 세 사람은 나보다 훨씬 강한데도, 저렇게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다.
나는 3년 동안 혼자, 조용히, 아무도 안 보는 데서만 힘을 썼다. 저 사람들처럼 정면으로 부딪혀본 적이 없다. 옥상에서 혼자 빛의 구슬 하나 만들어놓고 뿌듯해하던 게, 지금 이 자리에서 보니까 얼마나 작은 일이었는지 새삼 느껴졌다.
손끝이 근질거렸다.
이상한 반응이었다. 마치 뭔가가 나를 저 안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은. 저기 들어가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저 장벽을 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이게 무슨 심리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결국 그날 시험은 실패로 끝났다.
문지기의 몸통에 큰 균열을 냈지만,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세 사람은 지친 몸을 이끌고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강서윤은 걸음걸이가 눈에 띄게 무거웠고, 박다인은 화살통을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고, 유하은은 그저 조용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관람석 출구 쪽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들과 가까이서 마주쳤다.
"어, 저 사람 누구야?"
박다인이 나를 먼저 발견하고 물었다. 목소리에 아직 남은 긴장이 묻어 있었다.
"오늘 참관 온 학생이에요."
김민서가 대답했다.
강서윤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 시선이 좀 불편했다. 마치 내 몸을 스캔당하는 기분이었다.
"참관이라. 신기하네. F등급 참관자는 처음 봐요."
F등급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아마 다 미리 보고받았겠지. 관측소 사람들이 내 등급 하나까지 다 공유하고 다니는구나 싶어서 조금 서글퍼졌다.
"..안녕하세요."
내 목소리가 예상보다 더 얇게 나와서 순간 부끄러웠다. 강서윤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뭔가 특이한 걸 발견했다는 표정.
"목소리가.. 특이하네요."
특이하다는 말이 좋은 뜻일 리 없었다. 이 사람은 방금까지 5미터짜리 몬스터랑 싸우다 나온 사람인데, 지금 나한테서 뭘 그렇게 신기해하는 걸까.
".. 감사합니다."
일단 감사하다고 했다. 다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거 칭찬 아닌 거 같은데요.' 속으로만 그렇게 대꾸했다.
박다인이 옆에서 팔짱을 끼고 나를 훑어보다가 픽 웃었다.
"쟤 되게 얼어있다."
내가 얼어있는 게 아니라 그냥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방금 몬스터랑 싸우고 나온 세 사람 앞에서 안 얼어있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때 유하은이 다가왔다. 안경 너머로 나를 유심히 살피더니, 갑자기 내 얼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순간 나는 몸을 뒤로 뺐다.
"어? 아, 미안해요. 놀랐죠."
유하은이 손을 거두며 사과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내 안경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안경, 좀 특이한 마도구네요."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
"..그냥 평범한 안경인데요."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애를 썼는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평범한 안경은 마력 반응이 안 나요."
유하은이 조용히 말했다. 다른 두 사람은 아직 못 들은 눈치였다. 강서윤은 물통을 들이켜고 있었고, 박다인은 화살통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 나중에 다시 여쭤봐도 될까요?"
그 말에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은의 시선이 여전히 안경에 머물러 있었다.
뭔가를 이미 알아챈 눈빛이었다.
..저 사람 위험한데.
속으로만 그렇게 되뇌었다. 그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벌써부터 뭔가를 들킨 것 같은 이 기분이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지, 나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