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밑바닥, 완벽하게 해체하다

4화

이도현이 두 번째로 매입감정센터를 찾은 건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 강민석, 나는 재훈 선배와 함께 접수 창구 옆 관찰실에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접수원 뒤편에 마련된 작은 감정실이었는데, 유리창을 통해 접수 창구를 훤히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사흘 동안 나는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눈만 감으면 오차 0.02밀리미터, 순도 99.99퍼센트라는 숫자가 눈앞에 아른거렸으니까. 재훈 선배도 마찬가지였는지, 눈 밑이 시커멓게 죽어 있는 게 딱 밤새 술 마신 사람 얼굴이었다. "저 사람이에요?" 나는 재훈 선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져 나왔다. "그래, 저 사람이야." 재훈 선배가 고갤 끄덕였다. 시선은 유리창에 못 박힌 채였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남자는 평범했다. 아니, 오히려 지나치게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는 인상이었다. 마른 체형, 약간 그늘진 눈매, 배낭을 멘 어깨가 살짝 처져 있었다. 옷차림도 그저 흔한 방한복에 낡은 등산화. 어디 지나가는 초급 헌터 열 명 세워놓으면 그 사이에 섞여 구분도 못 할 그런 인상이었다. 저 사람이 정말 그런 초월적 품질의 소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이번엔 접수를 우리가 직접 받자." 재훈 선배가 말했다. "보류시키지 말고 즉시 감정 들어가야 해. 지난번처럼 어물쩡 넘겼다가 또 문제 생기면 그땐 진짜 답 없어." "근데 저희 둘이 계속 창구 나가면 다른 직원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상하게 생각하라고 해.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재훈 선배의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날이 서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접수 창구로 나섰다. 심장이 벌써부터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도현이 배낭을 열고 상자를 꺼내는 걸 보며,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손바닥에 땀이 배는 게 느껴졌다. "해체 소재 접수하러 왔는데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표정에 아무런 기대도, 긴장도 없었다. 그냥 일상적인 심부름을 온 사람 같은 얼굴. "네, 확인해보겠습니다." 나는 상자를 받아 들며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그는 특별할 게 없다는 표정으로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상자를 감정실로 가져온 나는 재훈 선배와 함께 조심스레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번엔 고블린 부위였다. 뼈, 근육 조직, 가죽. 세 부위로 정확히 분리되어 있었는데, 절단면 상태가 지난번 슬라임 핵과 똑같이 완벽했다. 마치 레이저로 자른 것처럼, 아니 레이저보다 더 정교하게 잘려나간 단면이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반들거렸다. "이거 봐라." 재훈 선배가 뼈 조각을 들어 눈앞에 가까이 대며 중얼거렸다. "골절선 하나 없어. 힘 조절을 이 정도로 한다고?" "측정해봐." 재훈 선배가 말했다. 나는 스캐너를 가져와 정밀 측정을 시작했다. 화면에 숫자가 하나씩 떠오르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오차 0.03밀리미터. 순도 99.98퍼센트. 조직 손상률 0.4퍼센트 이하. 지난번과 거의 동일한 수치였다. 우연이 아니었다. 이건 명백한 재현성이었다. "선배, 이거..."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스캐너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봤다. 숫자가 바뀌지 않았다. "봤지?" 재훈 선배의 목소리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저 사람은 매번 이런 품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야. 한 번은 우연이라고 쳐도, 두 번은 절대 우연이 아니야." "세 번째도 이러면요?" "세 번째까지 가면 그건 그냥... 재능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지." 재훈 선배가 말끝을 흐렸다. 우리는 감정 결과를 다시 한번 재확인했다. 뼈 부위의 절단면, 근육 조직의 분리 상태, 가죽의 순도까지 모든 항목이 최상급 기준을 압도적으로 상회하고 있었다. 나는 기준치와 실제 측정값을 나란히 놓고 몇 번이나 대조했다. 기준치가 100이라면 이도현의 결과물은 매번 130, 140을 찍고 있었다. "이거 며칠 뒤에 한 번 더 확인해보자." 재훈 선배가 말했다. "이번 주 안에 저 사람이 또 던전을 갈 것 같으면, 그때도 우리가 직접 받아서 검증하는 거야. 세 번 연속 나오면 그건 진짜 보고해야 할 사안이야." "근데 선배, 저 사람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뭐라고 해야 해요?" 재훈 선배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몇 초간 생각에 잠겼다. "일단 정상 접수 처리해서 정당한 등급으로 매입해줘. 지난번처럼 보류시키지 말고." "등급을 그대로 매기면 저 사람이 놀랄 텐데요." "놀라든 말든 정직하게 처리해야지. 우리가 계속 등급을 낮춰서 처리했다는 게 밝혀지면 그게 더 큰 문제야. 지금도 이미 한 번 등급 후려친 전례가 있잖아." 그 말에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지난번 슬라임 핵을 D랭크로 후려쳤던 기억이 떠올랐으니까.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우리 손으로 시한폭탄 심지에 불을 붙인 꼴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정 결과지를 작성했다. S랭크 최상급 판정. 서류에 그 등급을 적어 넣는 순간, 손끝이 다시 한번 미세하게 떨렸다. 펜 끝이 종이 위에서 살짝 미끄러졌다가 겨우 제자리를 찾았다. 창구로 돌아가 결과지를 이도현에게 건네자, 그의 표정에 처음으로 작은 변화가 스쳤다.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게... 맞나요?" 그가 결과지를 다시 확인하며 물었다. 종이를 눈앞으로 가져와 두 번, 세 번 다시 훑어보는 게 보였다. "네, 정확한 감정 결과입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게 배에 힘을 줬다. "지난번엔 보류라고 하셨는데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그 질문을 들으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건... 접수 처리 과정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애매하게 둘러댔다. 사실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당신이 만든 소재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어서, 우리가 감히 그 등급을 인정하지 못하고 일단 보류시켰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도현은 결과지를 손에 든 채 잠시 서 있다가, 이내 별다른 의문 없이 매입금 정산을 받고 돌아갔다. 그의 반응이 지나치게 담담해서, 나는 오히려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산 창구 직원이 금액을 부를 때조차 그는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지갑에 카드를 집어넣었을 뿐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만든 소재가 최상급 판정을 받았다는 걸 알면 크게 기뻐하거나 놀랐을 텐데, 그는 그저 당연하다는 듯 넘어갔다. 마치 원래부터 그 정도 등급이 나올 걸 알고 있었다는 태도였다. "선배, 저 사람 반응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나는 재훈 선배에게 물었다. "이상해. 자기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말 모르는 것 같아." 재훈 선배가 창밖으로 멀어지는 이도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아니면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가." "설마 진짜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걸 만드는지 모르는 거예요? 그게 가능해요?" "몰라. 그게 더 무서운 거야.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데 결과물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거잖아." 재훈 선배가 팔짱을 끼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일단 이번 검증까지 두 번 연속으로 재현성이 확인됐으니, 확신은 생겼어." 재훈 선배가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하지만 아직 상급 기관에 보고하긴 일러. 좀 더 지켜보면서 데이터를 쌓아야 해. 한 번 보고 들어가면 되돌릴 수 없어. 저 사람 인생이 통째로 뒤집힐 수도 있다고." "그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데요?" "세 번, 아니 네 번까지는 확인해야지. 확실한 패턴이라는 걸 증명할 만큼." 나는 그날 감정실 서랍에 새로운 폴더를 하나 만들었다. 이도현이라는 이름으로. 그 안에 이번 감정 결과지와 지난번 데이터를 함께 정리해 넣으며, 나는 이 비밀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 폴더 표지에 이름 세 글자를 적어 넣는 그 짧은 순간이, 마치 무언가 되돌릴 수 없는 문을 여는 것 같아서 손이 다시 한번 떨렸다. 퇴근길에 재훈 선배와 나란히 걸으면서도 나는 계속 그 숫자들을 곱씹었다. 오차 0.03밀리미터, 순도 99.98퍼센트. 지난번엔 0.02밀리미터, 99.99퍼센트였다. 소수점 단위로 다르긴 했지만 사실상 같은 사람이 같은 손끝으로, 아니 같은 정신으로 그 정밀함을 재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선배, 근데 이거 진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몰라. 나도 12년 감정 일 했지만 이런 건 처음 봐." 재훈 선배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근데 확실한 건, 저 사람이 뭘 하는지 우리보다 저 사람 본인이 더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거야. 그게 제일 찜찜해." 그리고 그날 밤, 매입감정센터 시스템에는 자동으로 이상 감지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있었다. 연속으로 최상급 판정을 받은 저랭크 헌터의 데이터가 상급기관 전산망으로 자동 전송되는 프로토콜이었다는 걸, 나와 재훈 선배는 아직 알지 못했다. 시스템 로그에는 이미 붉은 경고 표시가 하나 켜져 있었다. 우리 둘 다, 그 사실을 확인한 건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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