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일주일 뒤, 나는 다시 매입감정센터를 찾았다.
이도현이다. 던전에서 오크 세 마리를 잡아 해체한 소재를 들고 온 참이었는데, 상자를 들고 걷는 발걸음이 지난번보다 훨씬 가벼웠다. 이번엔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체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단면 하나하나를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으니까.
매입감정센터 건물이 보이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지난번 그 소동을 생각하면 아직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데,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접수 창구엔 사람이 많았다. 순서를 기다리며 벽에 붙은 시세표를 훑어보는데, 옆줄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이 정도 품질이면 당연히 A랭크는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한 남자가 접수원을 다그치고 있었다. 헌터복을 입은 걸로 보아 정식 헌터인 듯했는데, 계급장에 붙은 마크로 짐작해보면 나름 이름 있는 팀의 팀장급인 것 같았다.
"확인 결과 B랭크 판정입니다." 접수원의 목소리가 다소 지쳐 있었다.
"뭐? 야, 너 지금 나 무시하냐?" 남자가 언성을 높였다. "내가 이 던전에서 몇 년을 뛴 사람인데!"
"저기요, 죄송한데 결과는 결과라서요." 접수원이 애써 침착하게 대응했지만, 남자는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됐고, 팀장 나오라고 해!" 남자가 접수대를 손바닥으로 세게 내려쳤다. 쾅, 소리가 대기 줄까지 울려 몇몇이 흠칫 몸을 움츠렸다.
나는 순서를 기다리며 무심코 그 광경을 지켜봤다. 저 사람이 뭔가 크게 화가 난 모양인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조용히 내 차례를 기다리자 다짐하며 창구로 눈을 돌렸다. 괜히 눈 마주치면 피곤해질 게 분명했으니까.
"이도현 씨, 이쪽으로 오세요." 접수원이 나를 불렀다.
마침 그 순간이었다. 언성을 높이던 남자가 나를 보더니 뭔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너 그때 그 신입 아니냐." 그가 대들 듯 앞으로 다가왔다. "레벨 1짜리, 맞지?"
나는 그를 알아봤다. 강남 던전에서 몇 번 마주친 헌터였는데, 던전 입구에서 신입들을 대놓고 무시하며 텃세를 부리던 인물이었다.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저 오만한 표정만은 확실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언젠가 신입 헌터 하나를 붙잡고 "너 같은 애들 때문에 던전 클리어율 떨어진다"며 삼십 분을 잡아둔 걸 본 적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그저 예의상 인사를 건넸다.
"야, 너 레벨 1짜리가 여긴 왜 오냐?" 그가 비웃음을 흘렸다. "소재 팔러 왔냐? 뭐 얼마나 팔겠다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몰렸다. 대기하던 사람들 몇이 슬쩍 웃음을 참는 얼굴로 나를 훑었다. 나는 딱히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그냥 상자를 접수대에 올려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말을 섞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거 감정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접수원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접수를 받은 사람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지난번 두 번 다 신경 써서 처리해주던 재훈이라는 사람과 민석이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새로 온 접수원인 듯, 명찰에 적힌 이름도 낯설었고, 상자를 대충 확인하고는 나를 무심히 바라봤다.
"레벨 1이시네요." 접수원이 서류를 확인하며 말했다. "오늘은 접수량이 많아서, 아마 등급도 낮게 나올 것 같은데요."
"저것 봐라, 딱 봐도 답 나오네." 언성을 높이던 남자가 옆에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레벨 1짜리가 뭘 만들어봤자 얼마나 하겠냐."
주변에서도 몇 명이 따라 웃었다. 나는 그저 무표정하게 서서 결과를 기다렸다. 저런 웃음소리, 이제는 딱히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어차피 결과가 말해줄 테니까.
접수원이 상자를 열고 오크 부위를 확인하는 순간, 갑자기 그의 손이 멈췄다.
"어..." 접수원이 확대경을 가져와 다시 살펴봤다.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다. 손끝이 확대경 렌즈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뭐야, 왜 그래?"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다가와 함께 확인했다.
"이거... 절단면이 왜 이렇게..." 접수원이 말을 잇지 못했다.
"뭔데, 뭐가 문제야?"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끼어들었다. 여전히 상황을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해석하는 듯한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마침 그때 감정실 문이 열리며 재훈이라는 사람이 나왔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러 나온 모양이었는데, 상자 안을 슬쩍 보고는 표정이 바로 변했다.
"제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재훈이 상자를 넘겨받으며 말했다. 나는 그의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지난번에도 이런 반응을 본 적이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을 때 나오는 반응이라는 걸, 나는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었다.
재훈이 확대경으로 절단면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스캐너에 부위를 하나씩 올려 측정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숫자가 하나씩 뜨는데, 그걸 보는 재훈의 눈썹이 점점 위로 올라갔다.
정밀 측정이 진행되는 동안, 언성을 높이던 남자는 여전히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뭘 저렇게 오래 봐. 그냥 낮은 등급 주고 끝내면 되는 거 아니야?"
"팀장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재훈이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내 것도 아직 안 끝났는데 왜 저놈 것부터 저렇게 오래 걸리냐고." 남자가 짜증스럽게 발을 툭툭 굴렀다.
측정이 끝나고, 재훈이 서류를 작성해 나에게 건넸다.
"S랭크 최상급 판정입니다." 재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순간 창구 앞이 완전히 정적에 빠졌다.
정말 짧은 침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밀도는 어마어마했다. 대기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상자로, 서류로, 그리고 나로 옮겨갔다.
"뭐, 뭐라고?" 언성을 높이던 남자가 눈을 부릅뜨며 재훈에게 다가갔다. "장난치는 거야? 레벨 1짜리가 어떻게 S랭크 최상급이 나와?"
"측정 결과가 그렇게 나왔습니다." 재훈이 스캐너 화면을 그에게 보여줬다. 오차 0.02밀리미터, 순도 99.99퍼센트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남자의 안면 근육이 눈에 띄게 굳어갔다. "이, 이거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재측정해봐!"
"이미 재측정까지 완료된 데이터입니다." 재훈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확신이 배어 있었다.
"그럼 삼측정을 하든가!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고!" 남자가 다시 스캐너 화면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결과는 세 번 다 동일합니다." 재훈이 화면을 확대해 세 번의 측정값을 나란히 띄웠다. 숫자는 오차 범위 안에서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나를 비웃던 시선들이 순식간에 놀라움과 의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슬쩍 꺼내 화면을 찍는 것도 같았다.
"야, 너..." 언성을 높이던 남자가 나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의 오만함은 사라지고, 대신 뭔가 당혹스러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너 진짜 레벨 1 맞아? 뭐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
"네, 맞아요." 나는 딱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대답했다. 사실 이 상황이 왜 이렇게 큰 소란이 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던전에서 잡은 걸 해체해서 가져온 것뿐인데. 절단면 좀 깨끗하게 자른 게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일인가 싶었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고!" 남자가 다시 소리를 높였지만, 이번엔 아무도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은 그를 이상한 사람 보듯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팀장님, 이쪽 순번 진행하겠습니다. B랭크로 확정하고 정산해드릴까요?" 다른 접수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자는 뭐라 대답도 못 하고 이를 악문 채 자기 상자를 낚아채듯 챙겨 들었다. 아까의 기세는 완전히 사라지고, 대신 뭔가 억울함과 당혹감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나를 한 번 더 노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창구를 벗어났다.
매입금이 정산되어 나오는 걸 확인하며, 나는 통장에 찍힐 숫자를 떠올렸다. S랭크 최상급이면 지난번보다 몇 배는 더 받을 수 있을 터였다. 드디어 월세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을 뿐, 그 이상의 감정은 딱히 없었다. 사람들의 놀란 시선도, 방금 그 소란도, 나에겐 그냥 스쳐 지나가는 풍경 같았다.
하지만 창구 뒤편에서 재훈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단순한 업무적 관심을 넘어선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었는데, 마치 뭔가 확인해야 할 게 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도현 씨." 재훈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잠시 시간 되시면 저희랑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나는 그 말투에서 뭔가 예사롭지 않은 기류를 느꼈다. 단순히 감정 결과를 알려주는 자리가 아닌, 훨씬 더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는 것 같은 예감이 등줄기를 스쳤다. 지난번엔 그냥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넘어갔는데, 오늘은 재훈의 눈빛이 확실히 달랐다.
"무슨 일이신데요?" 내가 물었다.
"저희 쪽에서 좀...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 재훈이 말을 고르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이도현 씨한테는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저희 입장에서는 좀 다른 문제라서."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재훈은 이미 감정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매입감정센터 시스템에는 이미 세 번째 이상 데이터가 상급기관 서버로 자동 전송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