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몰래 살고 싶었는데요

4화

그날 밤, 서울의 한 오피스텔. 닉네임 '왕눈곰돌이'로 활동하는 남자가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그의 눈은 오히려 더 또렷했다. 던전 커뮤니티 '헌터스라운지'의 실시간 게시판이 열려 있었다. [제목: 이거 뭐임 강원도 산골에서 찍힌 영상] 조회수가 벌써 몇 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불과 세 시간 전에 올라온 글이었다. 그는 영상을 클릭했다. 검붉은 비늘의 괴물, 그리고 한 소년. 손끝에서 번쩍이는 빛. 괴물이 스스로 몸을 돌려 도망치는 장면. 영상은 재생 시간이 채 십 초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다섯 번, 열 번 넘게 돌려봤다. 영상은 인물의 얼굴이 모자이크로 흐릿하게 처리돼 있었다. 마을 위치도 지명이 지워진 채였다. 누군가 일부러 편집해서 올린 게 분명했다. "이거..." 왕눈곰돌이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 등급 몬스터, 저래 순순히 도망갈 사이즈가 아닌데." 그는 화면을 정지시키고 괴물의 비늘 색과 체구를 유심히 살폈다. 어림잡아도 초대형종에 가까운 크기였다. 저런 개체가 겁을 먹고 도망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댓글창을 열었다. 이미 수백 개의 댓글이 붙어 있었다. [혈안문주] 저거 스킬 이펙트 색 처음 봄. 등급 표시가 안 뜸. [묵언탐사자] 등급 미표시면 히든 계열 아니면 오류인데, 오류로 보긴 힘든 완성도임. [왕눈곰돌이] 인정. 저 정도 반응속도면 최소 상위권. 그런데 얼굴도 위치도 다 가려짐. 댓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다. 분석은 점점 구체적으로 파고들었다. [혈안문주] 배경 나무 종류 보면 강원도 확실함. 근데 정선인지 태백인지는 특정 안 됨. [묵언탐사자] 업로드 계정 추적함. 개인정보 최대 보호 설정 걸려 있어서 계정주도 특정 불가. [혈안문주] 이거 헌터협회에서 알면 난리 날 듯. 등급 안 뜨는 스킬이 민간에서 튀어나온 거잖아. [왕눈곰돌이] 이미 알고 있을걸. 저런 영상 안 캐치할 협회면 그게 더 문제지. 왕눈곰돌이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드렸다. "이거 던전협회 쪽에서도 벌써 봤을 텐데."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같은 시각, 던전협회 산하 감시팀 사무실. 형광등 불빛 아래, 요원 하나가 같은 영상을 재생하고 있었다. 모니터 여러 대가 나란히 늘어선 방 안, 다른 요원들은 이미 퇴근하고 없었다. "등급 미표시 스킬 반응입니다." 요원이 상급자에게 보고했다. 상급자는 커피잔을 든 채 화면 앞에 다가와 앉았다. 그는 화면을 몇 번이고 되돌려 봤다. 영상 속 소년의 손끝이 번쩍이는 순간마다 손끝으로 화면을 톡톡 짚었다. "위치 특정은." "불가입니다. 개인정보보호 최고 등급 설정이 걸려 있어서 계정 추적이 막혀 있습니다." 상급자는 미간을 좁혔다. "업로드한 놈이 일부러 저렇게 설정한 거란 소리군." "그렇게 보입니다. 실수로는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가려지지 않습니다." 상급자는 미간을 좁혔다. "등급 미표시라..."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런 건 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케이스야." 요원은 조용히 다음 보고를 이어갔다. "커뮤니티 쪽에서도 이미 추적 시도가 시작됐습니다." "막을 수 있나." "막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보다 먼저 찾아주면 좋은 거니까요." 상급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화면 속 정지된 소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얼굴은 모자이크로 가려져 있었지만, 체형만큼은 또렷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앳된 체형이었다. "학생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가 짧게 대답했다. "관찰 계속해. 위치가 특정되는 순간 바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요원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모니터 속 영상은 여전히 재생 중이었다. 조회수는 그 사이에도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한편, 정선의 외딴집. 이도현은 그날의 소동을 뒤로 하고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밥그릇에서 올라오는 김이 식탁 위를 데웠다. 온몸이 뻐근했지만, 팔에 남은 상처는 이상하게도 다 아물어 있었다. 숟가락을 든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펴보았다. 아무런 통증도 없었다. 분명 그 괴물의 발톱에 긁혔던 자리였는데, 지금은 흉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그 빛, 뭐였을까.' 밥을 먹으며 손끝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손이었다. 그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며 다시 그 순간을 떠올렸다. 손끝에서 빛이 터지고, 그 거대한 괴물이 몸을 돌려 도망쳤던 순간.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다. 그렇다고 현실이라고 믿기에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다.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서연의 메시지였다. [내일 학교 오면 얘기 좀 하자. 급한 거.] 이도현은 그 메시지를 잠깐 쳐다봤다. '급한 게 뭘까.' 평소 서연은 이렇게 짧고 다급한 메시지를 보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보통은 이모티콘을 몇 개씩 붙여가며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쪽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문장 자체가 딱딱했다. 특별히 신경 쓸 일은 아니라 생각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밥그릇을 비우고 설거지를 마친 뒤,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에 몸을 뉘였다. 창밖으로 산골 특유의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멀리서 짐승 울음소리 하나 없이, 오직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는 클로가 이미 세상 밖으로 자신의 모습을 흘려보냈다는 사실을, 여전히 전혀 알지 못했다. 수만 개의 눈이 자신의 뒷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였다. 그저 내일 서연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그것만이 어렴풋한 궁금증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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