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잔해 뒤에 몸을 숨긴 채, 강도현은 숨을 참았다.
허수의 거대한 몸통이 지진처럼 바닥을 울리며 다가왔다.
쿵.
쿵.
한 걸음씩 진동이 뼈까지 전해졌다.
발밑의 흙먼지가 파르르 떨리며 튀어 올랐다.
콘크리트 조각 하나가 데구르르 굴러 강도현의 발끝에 닿았다.
숨소리마저 죄스러웠다.
강도현은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쪽으로."
소녀는 반응하지 못했다.
다리가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눈동자가 초점 없이 허수의 그림자를 쫓고 있었다.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정신 차려. 여기 있으면 죽어."
짧고 단호한 말투.
소녀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딸꾹거리듯 움직이는 게 보였다.
둘은 무너진 기둥 사이로 몸을 밀어넣었다.
먼지 냄새, 축축한 콘크리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물이 발목을 적셨다.
차가운 감각이 종아리를 타고 올라왔다.
금호가 어깨 위에서 낮게 속삭였다.
"저놈 눈이 없어. 촉수로 진동을 읽어."
"그럼 조용히 움직이면 못 찾는다는 거야?"
"완벽하진 않아. 큰 움직임만 피하면 돼."
강도현은 몸을 웅크린 채 허수의 움직임을 살폈다.
거대한 몸통이 벽을 무너뜨리며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콰지직.
벽돌이 부서지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다행히 이쪽으로 오지 않았다.
숨을 조금 골랐다.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
손목의 감각을 다시 확인했다.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현재 축적된 에너지: 12,400 유닛】
【필살 스킬 개방 기준: 100,000 유닛】
숫자를 본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이걸로 저 덩어리를 어떻게 잡으라고.'
십이만분의 일도 안 되는 숫자.
강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소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죄송해요."
"뭐가."
"제가 못 나서서. 아저씨가 대신……."
"아저씨 아니야."
강도현이 즉각 정정했다.
낯선 목소리가 낯설게 튀어나왔다.
'지금 몸도 이런데, 호칭까지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턱 밑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옷깃이 축축하게 몸에 감겼다.
낯선 감촉이었다.
이 몸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탓이었다.
소녀는 여전히 겁먹은 눈으로 강도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저런 눈으로 보지 마.'
강도현은 애써 시선을 돌렸다.
그때 사람들의 함성이 멀리서 들려왔다.
건물 밖, 대피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이쪽을 촬영하고 있었다.
플래시 불빛 여러 개가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실시간 채팅창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저 사람 진짜 처음 보는 형태야."
"남자가 마법소녀 된 거 맞아? 대박."
"저기 봐 저 여우, 협회 마스코트잖아."
"저 몸매 실화냐 ㄷㄷ"
"근데 저러다 죽는 거 아니야?"
댓글들이 빠르게 스크롤되며 지나갔다.
에너지 수치가 조금씩 올랐다.
12,400에서 12,600으로.
12,600에서 12,850으로.
하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턱없이 부족했다.
강도현은 그 숫자를 다시 확인하며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씨발, 이 속도로 언제 다 채워.'
금호가 짧게 말했다.
"저 시청자들 반응이 커질수록 네 힘도 커져. 근데."
"근데 뭐."
"그게 좋은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아둬."
강도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무슨 소리야."
"저 사람들이 널 보는 눈이, 다 순수한 게 아니라는 소리야."
금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강도현은 순간 말을 잃었다.
채팅창의 일부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외모를 평가하는 말들, 노골적인 시선들.
"다리 좀 봐 개예쁘다"
"얼굴 보여줘라 얼굴"
"저 옷 좀 벗겨지면 재밌겠는데 ㅋㅋ"
갈비뼈 아래에서 불쾌한 감각이 치밀었다.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목구멍이 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힘을 받으려면 저런 시선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야.'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살갗이 움푹 눌리며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허수의 몸통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방향이 명확했다.
그들이 숨은 잔해 쪽이었다.
거대한 실루엣이 서서히 커졌다.
바닥의 진동이 점점 강해졌다.
"들켰나."
강도현이 낮게 내뱉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금호가 몸을 곧추세웠다.
털이 곤두선 채로 귀를 바짝 세웠다.
"진동을 너무 크게 냈어. 숨소리까지 죄다."
"그럼 이제 어떡해."
"뛰어. 지금."
셋은 동시에 몸을 일으켜 반대편으로 뛰었다.
발이 잔해 사이를 헤집으며 미끄러졌다.
등 뒤에서 촉수 여러 개가 동시에 잔해를 뚫고 솟아올랐다.
쾅! 쾅! 쾅!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돌조각 하나가 강도현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뜨거운 통증이 순식간에 번졌다.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자 피가 묻어났다.
소녀가 넘어질 뻔한 걸 강도현이 팔을 뻗어 붙잡았다.
"놓지 마."
짧은 명령.
소녀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이 강도현의 손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작은 손톱이 손등을 파고들었다.
아팠지만 놓을 수 없었다.
촉수 하나가 그들의 도주로를 가로막았다.
시커먼 표면이 미끄덩거리며 꿈틀거렸다.
비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앞으로 갈 수도, 뒤로 갈 수도 없었다.
강도현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목덜미가 축축하게 젖었다.
시야가 순간 좁아지는 듯했다.
'여기서 끝인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또 다른 촉수가 반대편에서 스멀스멀 뻗어 나오는 게 보였다.
포위였다.
빠져나갈 틈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금호가 낮게 외쳤다.
"오른쪽!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