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박태수와의 거래를 두어 차례 더 성사시켰다. 매번 거래는 순조롭게 흘러갔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가져다주는 물건의 품질이 늘 기대치를 웃돌았고, 박태수 쪽에서도 나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걸 학습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목이 부러졌던 그 부하 하나의 사례가 아마 조직 내부에서 꽤 오래 회자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거래들 사이, 나는 은서와 상의한 끝에 사역마 한 마리를 태수건설 창고 구석에 몰래 심어두기로 했다. 손톱만 한 크기로 압축시킨 그 조그만 감시자는 어둠 속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창고 천장 배관 사이 그늘진 틈새에 조심스럽게 밀어넣었다. 사역마를 소환하고 배치하는 데에는 마력이 소모됐지만, 그 대가로 얻는 정보의 가치를 생각하면 오히려 헐값이라는 계산이 섰다.
'시각을 공유한다'는 이 능력의 특성상, 나는 직접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도 그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렴풋이 지켜볼 수 있었는데, 문제는 집중력을 꽤 많이 잡아먹는다는 점이었다. 눈을 감고 사역마의 시야에 의식을 맞추면, 마치 텔레비전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쪽의 광경이 흐릿하게 겹쳐 보였다. 화질은 나쁜 편이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그날 밤 창고 안쪽 사무실에서는 박태수와 부하들 몇 명이 모여 회의랍시고 떠들고 있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담배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그 좁은 방 안 풍경이, 사역마의 시야를 통해 넘어온 순간 유난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는 방 안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은 채, 그 광경에 온전히 집중했다.
"...그러니까, 정체를 도무지 못 잡겠다는 거 아닙니까." 최강일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박태수의 오른팔이라는 얘기를 어제 부하 하나에게서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는데, 목소리 톤만 들어도 성격이 급한 부류라는 게 짐작됐다.
"신용조회도 안 되고, 지문 대조도 안 되고, 하다못해 CCTV 얼굴 인식조차 걸리는 게 없어." 다른 부하가 태블릿을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화면 불빛에 얼굴이 파랗게 물든 그 남자는 뭔가 초조한 듯 다리를 떨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였다. 내 신원 자체가 이 세계 어디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조회를 해봐야 나올 게 없는 게 당연했다. 그 사실을 들으며 나는 픽 웃음이 나왔다. 유령이라는 말이 어쩌면 정확한 비유일지도 몰랐다.
"그럼 그놈이 유령이란 거냐?" 최강일이 코웃음 치며 반문했는데, 그 말에 회의실 안이 잠시 어색한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는 게, 그들 역시 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다는 뜻이었다.
박태수는 담배를 태우며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이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령이든 뭐든, 그놈 능력은 진짜야. 강일이 네가 붙였던 애들도 손목이 부러졌잖아."
그 말에 최강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마 자기가 붙였던 인력들이 당한 일이라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더 위험한 거죠. 지금이라도 손을 써야 합니다." 최강일이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손을 쓴다는 거야." 박태수가 되물었고, 최강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을 이었다.
"제거든, 아니면 회유든. 어느 쪽이든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죠. 소문이 벌써 옆동네까지 퍼졌습니다."
그 말에 나는 사역마의 시야 너머로도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그 감각은 실제로 몸이 위협받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생생했는데, 아무래도 내 무의식이 이 대화의 무게를 실제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문이 벌써 그렇게까지 퍼졌다면, 이 지역 언더월드 전체가 나라는 존재를 어떤 형태로든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부산 쪽 조직에서도 그 얘기 들었다더군요. 신원불명 초능력자가 통영에서 금 거래를 뚫었다고." 태블릿을 들고 있던 부하가 덧붙였는데, 그 정보가 어디까지 왜곡되어 퍼졌을지 가늠할 수 없어 더 불안했다. '금 거래를 뚫었다'는 표현부터가 이미 과장이었다. 나는 그냥 정당한 값을 받고 팔았을 뿐인데, 소문이라는 게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서 점점 부풀려지는 모양이었다.
박태수는 한동안 담배 연기를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당장은 건드리지 마. 아직 그놈이 우리 편에 서 있는 게 손해가 아니야. 매달 물량도 쏠쏠하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안도했다가, 곧바로 다시 긴장했다. 박태수의 판단이 지금은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그 판단이 언제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이해관계로 유지되는 관계란 원래 그런 법이었다.
"그놈이 언제까지 우리 편에 서 있을 거란 보장이 어딨습니까." 최강일이 반박했는데, 그 말투에서 이미 뭔가 결심한 듯한 기색이 엿보였다. 목소리에 담긴 날카로움이, 단순한 걱정을 넘어선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놈, 조만간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은데.' 하는 예감이 사역마의 시야를 지켜보던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박혔다. 그런 예감은 대체로 틀리지 않는다는 게,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상 얻은 나름의 법칙이었다.
회의는 그렇게 결론 없이 끝났다. 몇 마디 더 이어지긴 했지만 대부분은 서로 언성만 높이다가 흩어지는 식이었고, 박태수가 자리를 뜨자 나머지 부하들도 눈치를 보며 하나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사역마의 감시 시야를 끊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이 잠깐 핑 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오랜 시간 시야를 공유하고 있으면 늘 이런 부작용이 따라왔다.
옆에서 그 내용을 조용히 듣고 있던 은서에게, 나는 방금 본 광경을 하나씩 풀어서 전달했다.
"제거든 회유든, 이라고 했죠?" 은서가 담담하게 되물었는데, 그 어조가 지나치게 평온해서 오히려 내가 더 신경이 곤두섰다. 수백 년을 살아온 존재답게, 은서는 이런 종류의 위협 앞에서도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저 남자, 최강일이라는 사람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은서가 덧붙였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묻자, 은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그 침묵이 꼭 뭔가를 신중하게 고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박태수는 계산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지만, 저 남자는 감정으로 움직이는 부류거든요. 그런 부류가 제일 예측이 안 돼요."
그 말에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계산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손해와 이익을 저울질하니까 어느 정도 행동을 예상할 수 있지만, 감정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그 저울이 언제든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다는 뜻이었다. 수백 년을 살아온 존재의 판단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가 있었다.
"...그러면 최강일이 먼저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네." 나는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박태수가 만류하는 이상 대놓고는 못 움직이겠지만, 뒤에서 뭔가 벌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어요." 은서가 냉정하게 덧붙였다.
"...일단은 계속 이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결론을 내렸다. 사실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더 답답했다. 신원증 없이 이 세계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언더월드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이렇게 소문이 퍼지는 채로 방치하면 더 큰 위험이 다가올 게 뻔했다.
"차라리 조직을 하나 새로 만드는 건 어때요?" 은서가 문득 제안했다.
"...조직?" 내가 되묻자, 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태수 쪽에 계속 얹혀가는 형태로는 결국 저 최강일 같은 사람이 문제를 만들 거예요. 차라리 독립적인 발판을 마련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그 말이 일리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은 아니었다. 조직을 만든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고, 자금도 인맥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요컨대 어느 쪽이든 조만간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 결단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신원증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겠지. 그게 있어야 뭘 해도 정상적으로 굴러갈 테니까."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밤이 깊어지고, 임시로 얻은 좁은 숙소 방 안에서 은서가 잠든 걸 확인한 뒤, 나는 창문 너머로 통영의 야경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항구 쪽에서 흘러오는 비릿한 바닷바람이 창틀 사이로 스며들었고, 멀리서 컨테이너 크레인의 붉은 경고등이 규칙적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소문이 부산까지 넘어갔다면, 이제 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원 미상의 초능력자를 어떻게든 파악하려는 눈길들이 이 좁은 도시 곳곳에서 서서히 좁혀오고 있을 게 분명했고, 그중 누군가는 이미 나를 특정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을지도 몰랐다. 나는 창문에 이마를 살짝 대고, 유리 표면의 서늘한 감촉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조심해야 한다.' 그 생각을 몇 번이나 곱씹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무탈하게 넘어왔지만, 언제까지 이 운이 이어질지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었다. 은서의 말대로 최강일 같은 부류가 뒤에서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부산 쪽에서 흘러온 소문이 또 어떤 방향으로 튈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생각을 정리하다가, 나는 결국 별다른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로 침대에 몸을 뉘였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가장 답답했지만, 초조해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내 휴대폰 대신 쓰고 있던 은서의 낡은 태블릿 화면에, 낯선 번호로부터 문자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처음엔 스팸 문자인가 싶어 무심코 화면을 넘겼는데, 내용을 확인한 순간 손끝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발신인 미표시. 내용은 단 한 줄이었다.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