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9살 미소녀 연금술사

2화

5교시가 끝날 무렵, 배 속의 신호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꾸르르륵. 나는 책상 아래로 손을 뻗어 배를 슬며시 눌렀다. (참자. 조금만 참으면 돼.) 선생님의 목소리가 멀리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칠판에 적힌 글자들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오후 햇살이 유난히 따갑게 느껴졌다. 책상 위에 놓인 필통이, 지우개 가루가, 짝꿍의 필기 소리까지도 전부 낯설게 느껴졌다. 시계를 보았다. 수업이 끝나기까지 아직 십분이 남아 있었다. 십분이 마치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배 속에서 뭔가가 뒤틀리는 듯한 감각이 다시 올라왔다. 나는 허벅지에 힘을 주고, 등을 곧게 세웠다. (움직이면 안 돼.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안 돼.) 서준이 옆자리에서 나를 살펴보았다. "도현아, 너 진짜 안색이 안 좋아." 그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괜찮아…" 나는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살짝 배어 있었다. 서준은 뭔가 더 물으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다시 다물었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민재가 뒷자리에서 팔을 뻗어 내 어깨를 툭 쳤다. "화장실 갔다 와. 참지 말고." 짧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목소리에는 걱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께 손을 들어 허락을 구했다. "화장실 다녀와도 될까요."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교실 문을 열고 나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반 아이들의 시선이 등 뒤에 따라붙는 것 같았다. 화장실로 가는 복도는 길게 느껴졌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복도 창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국기 게양대의 줄이 탁, 탁,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혔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제발… 아무 일 없이 도착하게 해줘.)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배 속이 요동쳤다.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다행히 화장실에 도착해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세면대 앞에서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거울 속 내 얼굴은 평소보다 창백했다. (이제 괜찮을 거야.) 하지만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배 속이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다. (한 번 갔다 왔는데 왜 또…) 그 낌새는 마치 잦아들었다가 다시 밀려오는 파도 같았다. 밀려왔다 잠잠해지고, 다시 밀려오는. 나는 배를 문지르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별거 아닐 거야. 그냥 신경이 예민해진 거야.) 종례가 끝나고, 나는 결심을 굳혔다. 오늘, 지금, 한소은에게 마음을 전하기로. (더 이상 미루면 후회할 거야.) 나는 가방을 챙기며 심호흡을 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긴장감과 배 속의 불편함이 뒤섞여 이상한 감각을 만들어냈다. 교실을 나서기 전, 나는 필통과 교과서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그것이 정말 필요한 확인인지, 그냥 시간을 끌기 위한 행동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서준과 민재는 이미 내 결심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저기서 기다려. 우리가 자리 비켜줄게." 서준이 운동장 한쪽 벚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떨지 말고. 잘 될 거야." 민재가 내 등을 툭 밀었다. 작은 응원이었지만, 그 손길이 묘하게 든든하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몇 번이나 배를 문질렀다. (지금은 안 돼. 딱 이 순간만은 참아줘.) 벚나무 그늘 아래,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바닥에 얼룩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사귀가 서로 부딪치며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평소라면 평온하게 들렸을 그 소리가, 오늘은 이상하게 낯선 파문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소은을 기다렸다. 가방끈을 쥔 손에 땀이 배어들었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동시에 배 속의 신호도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꾸르르르륵. (왜 하필 지금…)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발끝으로 땅을 톡톡 두드리며 애써 다른 곳에 신경을 돌리려 했다. 멀리서 축구공 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가 이내 흩어졌다. 시간이 유난히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한소은이 가방을 메고 다가왔다. 교복 치마 아래로 살짝 흔들리는 걸음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도현이 맞지? 나 좀 보자고 했다면서."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또렷했다. 나는 순간 모든 배 속의 불편함을 잊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응… 저기, 소은아." 말을 꺼내려는 순간, 배 속에서 강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안 돼. 지금은 안 돼.) 나는 다리에 힘을 주며 버텼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한소은은 내 표정을 살피며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 아니야… 괜찮아." 목소리가 갈라졌다. "할 말 있으면 해." 소은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웃었다. 그 순한 미소가 오히려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목이 타는 듯했다. "나… 사실 오래전부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뱃속에서 참을 수 없는 압박이 밀려왔다. 손이 떨렸다. 이마에 땀이 흘렀다. 시야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제발, 조금만 더…)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배를 움켜쥐듯 버텼다. 하지만 몸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의지와 몸이 완전히 분리된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뚝.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나는 온몸의 힘이 아래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안 돼…) 정적이 흘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마저 멈춘 것 같았다. 소은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놀람에서 당혹으로, 그리고 서서히 혐오로. 그 변화가 마치 슬로모션처럼 눈앞에서 펼쳐졌다. 주변에 있던 몇몇 학생들이 이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누군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서 있었다. 다리를 따라 흘러내리는 축축한 감각이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발끝부터 시작된 그 감각이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번져나갔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아니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뭐야… 저거…" "헐, 진짜야?" 웅성거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커졌다. 누군가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가 귓속을 파고들며 메아리처럼 울렸다. 소은은 아무 말 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의 발걸음이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질 때마다 나와의 거리가 마치 영원처럼 벌어지는 것 같았다. 그 표정에서 나는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끝났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듯 주저앉았다. 바닥의 흙먼지가 손바닥에 닿는 감각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주변의 시선이 화살처럼 온몸에 꽂혔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렸고, 그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조롱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그저 바닥에 그려진 벚나무 그늘의 얼룩무늬만을 바라보았다. 그 무늬가 마치 나를 비웃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멀리서 서준과 민재가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마저도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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