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9살 미소녀 연금술사

5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지지지직. 나는 화면을 확인했다. [이서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드디어…) 손끝이 저절로 화면 위로 향했다. 서준도 옆에서 화면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그의 숨소리가 순간 멈춘 것 같았다. "누나야?" 서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응." 나는 짧게 대답하고 메시지를 열었다. [도현아. 자세한 건 지금 말할 수 없어. 오늘 밤 클랜온라인에 접속해. 튜토리얼 끝내고 '초입 마을' 광장으로 와. 거기서 기다릴게.] 짧고 건조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딘가 다급함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문장 사이사이에 뭔가를 억지로 눌러 담은 듯한 느낌이었다.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몇 번이고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눈으로 훑었다. 평소 누나의 말투와는 확실히 달랐다. 이서연은 원래 필요한 말만 정확하게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메시지에는 뭔가 빠진 것 같은, 설명하지 않은 여백이 느껴졌다. [혹시 지금 무슨 상태인지 알아?]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일 분. 이 분. 삼 분.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함이 커졌다. 나는 화면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서준은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앉아 함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나서야 짧은 문장이 도착했다. [게임 안에서 얘기해줄게. 지금은 위험할 수도 있어서 그래.] 문득 전에 들었던 ‘낯익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기묘한 소리와 누나가 말한 위험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닐까. (위험… 하다니?)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감각이 스쳤다.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진 것 같았다. 창밖에서 들려오던 벌레 소리조차 순간 낯설게 들렸다. 서준도 그 메시지를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 그의 목소리에도 긴장이 배어 있었다. "몰라… 근데 누나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처음이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평소 이서연은 짧고 무뚝뚝했지만, 이렇게 알쏭달쏭한 메시지를 보낸 적은 없었다. 연락도 드물었고, 하는 말도 늘 명확했다. 그런 누나가 갑자기 이런 식으로 다급하게, 그리고 모호하게 연락을 해온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누나가 뭔가 알고 있는 걸까.) 나는 작아진 몸을 내려다보았다. 옷소매가 팔목을 덮고 남을 정도로 헐렁했다. 여전히 낯설었지만, 조금씩 그 무게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손을 폈다가 다시 오므려보았다. 평소보다 작은 손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이 몸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 그 생각이 스치자 소름이 돋았다. 피부 위로 미세한 한기가 지나갔다. 누나가 말한 '위험'이라는 단어와 지금 내 몸에 벌어진 이 이상한 변화가 서로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서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접속해보자. 민재도 오늘 접속한다고 했으니까."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신중했다. "그래.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친구들과 즐겁게 게임을 시작할 예정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이유로 접속을 결심하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신나게 캐릭터를 어떻게 꾸밀지, 어떤 직업을 고를지 이야기했던 걸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은 그런 여유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이 정체불명의 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 생각만이 지금 이 순간 나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었다. 서준이 방 한쪽에 놓인 VR 캡슐을 가리켰다. "이거 예전에 네가 미리 주문해놓은 거지? 오늘 배송 왔던데." 나는 그제야 며칠 전 주문했던 최신형 VR 기기를 떠올렸다. 박스는 아직 뜯지도 않은 채 방 한쪽에 놓여 있었다. 겉면에는 매끈한 은색 로고와 함께 '풀다이브 캡슐 - 프리미엄 라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실 이 기기를 주문할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걸로 접속하면 돼?" "응, 이게 요즘 나온 풀다이브 기기잖아. 신체 사이즈에 맞춰서 자동으로 조정된다던데." 서준이 설명하며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테이프를 뜯어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부스럭. 포장재를 걷어내자 매끈한 캡슐형 기기가 드러났다. 겉면은 흰색과 짙은 남색이 섞인 세련된 디자인이었고, 내부에는 은은한 푸른빛이 감지 센서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서준이 능숙하게 케이블을 연결하고 전원을 켰다. 윙- 낮은 기계 구동음이 방 안을 채웠다. "생각보다 조립이 간단하네." 서준이 중얼거리며 설정 화면을 몇 번 터치했다. "신체 정보는 최초 접속할 때 자동으로 스캔한대. 너 몸 상태가 바뀌었으니까, 그거 그대로 인식할 거야." (내 몸이 이렇게 변해도… 접속은 가능한 걸까.) 불안한 마음이 스쳤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누나의 메시지를 무시할 수도 없었고, 답을 찾을 다른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준의 도움으로 나는 캡슐 안에 자리를 잡았다. 좌석은 마치 몸에 맞춰 만들어진 것처럼 부드럽게 감싸 안았지만, 원래 성인 남성의 체형을 기준으로 설계된 탓인지 지금의 작아진 몸에는 헐렁하게 느껴졌다. 작아진 몸이 캡슐 안에서 유난히 왜소하게 느껴졌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서늘한 소재의 감촉이 피부에 닿았다. 서준이 캡슐 옆에 서서 마지막으로 몇 가지를 확인했다. "생체 인식 센서 위치 확인했고… 신경 연결 단자도 정상이야." 그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오갔다. "준비됐어?" 서준이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눌러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응. 접속할게." 캡슐의 덮개가 서서히 닫혔다. 스으윽- 부드러운 기계음과 함께 시야를 가리는 덮개가 천천히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캡슐을 바라보고 있는 서준의 얼굴이었다. 눈앞이 어두워졌다.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조금 전까지 나눴던 서준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서연이 보낸 짧은 문장들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위험할 수도 있어서'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낮은 기계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생체 정보를 인식합니다.] 몸 전체를 훑는 듯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피부 표면을 스캔하는 것 같은 서늘한 감각이 지나갔다. [신체 사이즈를 재조정합니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심장이 조금 빨리 뛰기 시작했다. (역시… 이 몸 상태도 인식하는구나.) 기기가 내 변화된 몸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안심되면서도 동시에 불안했다. [클랜온라인에 접속합니다.]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이게… 시작인가.) 그 짧은 순간, 나는 오늘 하루 동안 벌어진 모든 일들을 떠올렸다. 한소은 앞에서의 굴욕, 순식간에 작아져버린 몸, 그리고 그런 나를 아무 말 없이 도와준 친구들. 서준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민재가 오늘 접속한다며 남긴 짧은 메시지도 스쳐 지나갔다. 그 모든 것의 답이 이 게임 속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동시에, 이서연이 남긴 짧은 문장 속 '위험'이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평소와 다른 그 문장의 온도가, 자꾸만 신경을 긁었다. 하얀 빛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빛의 입자들이 마치 물결처럼 시야 전체를 뒤덮었다. 그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낯선 파문 같은 것이 느껴졌다. 분명 처음 접속하는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감각이었지만, 그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이질감이었다. (뭐지, 이 느낌은.) 나는 그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었다. (누나… 대체 뭘 알고 있는 거야.)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저 빛 너머에서 찾아야 했다. 의식이 완전히 게임 속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오늘 하루 겪은 모든 굴욕과 혼란이, 어쩌면 그저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이상하게도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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