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잠 못 든 밤, 검이 빛나다

2화

게이트 안쪽은 안개가 짙었다. 발을 들이자마자 코끝에 닿는 공기부터 달랐다. 바깥세상의 공기와는 습도도 온도도 다른, 이 세계 특유의 미묘하게 비릿한 공기였다. 삼 년째 이 냄새를 맡고 있었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 됐다. 던전은 겉보기엔 무너진 도시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지형이 조금씩 바뀌는 불안정한 공간이었다. 지질학자들도, 마법공학자들도 이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했는데, 회사 내부 보고서에서는 그냥 '차원 간섭에 의한 지형 재구성'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처리해 두었다. 나는 그 표현이 사실은 '우리도 모른다'는 말을 어렵게 돌려 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의 지형은 무너진 다리와 협곡을 낀 형태였다. 나는 그 지형을 보며, 협곡이 있는 던전은 낙하 사고가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낙하 사고에 대한 기억은 회사 안전 교육 자료에서 본 통계였다. 협곡형 던전에서의 낙하로 인한 헌터 사망은 연간 평균 열두 건, 그중 회사 보상 처리까지 이어진 건 세 건 이하였는데, 나머지 아홉 건은 대부분 계약서 상 '자기 과실'로 처리되어 보상이 지급되지 않았다. 계약서 몇 조 몇 항, 그 문구까지도 나는 외우고 있었다. 자기 과실이라는 말 뒤에 숨은 계산이 뭔지도 알고 있었다. 보상금을 아끼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방어선, 그게 그 문구의 진짜 역할이었다. 나는 그 통계를 왜 아직도 외우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알아봤자 쓸 데가 없었다. 협곡을 없앨 수도, 낙하를 막을 수도 없었으니까. 그저 알고 있다는 사실만이 머릿속에 짐처럼 얹혀 있었다. 배낭에 꽂힌 드론이 낮은 진동을 내며 떠올랐다. 촬영 시작을 누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이 드론은 회사에서 지급한 것으로, 헌터의 공략 과정을 기록해 보험 처리와 분쟁 조정에 쓰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장비였다. 사망이든 부상이든 사고가 나면 이 영상이 유일한 증거가 됐다. 그래서 나는 이 드론을 신뢰했다. 적어도 이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드론 화면 한쪽 구석에 작은 숫자가 떠 있었다. 나는 그걸 그냥 회사 서버 전송 진행률 표시라고 생각했다. 늘 그런 숫자였으니까. 백분율로 차오르다가 백에 닿으면 전송 완료 알림이 뜨는 그 익숙한 진행바. 삼 년 동안 봐 온 화면이라 눈에 익어서, 별생각 없이 시선을 지나쳤다. 하지만 그날의 숫자는 진행률이 아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숫자는 시청자 수였다. 어제 업데이트된 드론의 신규 채널 목록 중 맨 위에는 '트루캐스트 자동 연동'이라는 항목이 새로 추가되어 있었고, 촬영 시작을 누른 내 손가락은 관성적으로 그 첫 번째 항목을 눌렀던 것이었다. 손가락 하나가 만든 실수였다. 아니, 실수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그저 습관이었다. 트루캐스트가 뭔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이 나라 사람 절반이 매일 들여다보는 실시간 방송 플랫폼이었고, 던전 공략 영상은 그 안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장르 중 하나였다. 유명 헌터들의 방송은 회당 수십만 명이 몰렸고, 그중 상위 랭커들은 방송 수익만으로 연봉 수십 억을 벌었다. 그들의 계약 구조도 대략 알고 있었다. 구독료, 후원금, 스폰서 광고까지 합치면 던전 공략 수당보다 방송 수익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도. 나는 그런 방송에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올 이유가 없었다. 얼굴을 팔 이유도, 이름을 알릴 이유도 없었다. 나에게 던전은 그저 노르마를 채우는 일터였을 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대가 아니었다. 숫자는 백에서 시작해 몇 초 만에 천을 넘어갔다. 나는 그걸 못 봤다. 협곡 안쪽에서 낮게 울리는 그르렁 소리에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오거였다. 다리 아래 협곡에서 몸을 일으키는 오거의 덩치는 짐작보다 컸는데, 이 던전의 오거는 A급으로 분류되는 개체였다. A급 몬스터를 처음 상대하는 헌터라면 다리가 얼어붙는다는 게 정설이었지만, 나는 그 정설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알아도 특별할 게 없었다. A급이든 B급이든, 나에게는 그저 처치해야 할 노르마 목록의 한 줄일 뿐이었으니까. 숫자로 따지면 오늘의 목표치는 A급 하나, B급 셋이었다. 오거를 잡으면 절반은 채우는 셈이었다. 그런 계산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굴러갔다. 두려움보다 셈이 먼저였다. 오거가 다리 위로 뛰어올랐다. 다리가 흔들렸고, 낡은 콘크리트 조각이 협곡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는 조각의 개수를 세다가, 나는 그게 무의미한 습관이라는 걸 깨닫고 그만뒀다. 검을 뽑았다. 검을 뽑는 순간의 소리, 쇠가 쇠를 스치는 마찰음. 나는 그 소리를 삼 년 넘게 들어왔고, 그 소리가 날 때마다 몸이 먼저 자세를 잡았다. 생각보다 몸이 앞서는 순간이었다. 이 검도 회사에서 지급받은 것이었다. 등급으로 따지면 중급, 시중 시세로는 대략 삼천만 원 선에서 거래되는 물건이었다. 개인 소유였다면 자랑할 만한 물건이었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대출된 장비였고, 계약이 끝나면 반납해야 했다. 손에 익은 무기조차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드론이 내 뒤에서 이 모든 장면을 담고 있었다. 화면 속 나는 겁먹은 기색 하나 없이 검을 든 채 오거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걸음걸이는 사냥이 아니라 출근길 같았다. 실제로 나에게는 이게 출근이었으니까. 매일 아침 게이트 앞에 서서 출입 카드를 찍고, 배정된 던전에 들어가 노르마를 채우고, 저녁이 되면 퇴근하듯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그런 반복이었다. 트루캐스트 채팅창에는 이미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채널 추천 알고리즘이 급상승 방송으로 이 화면을 잡아낸 건 촬영 시작 후 삼 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는데, 처음엔 '이게 뭐야', '해킹 방송인가' 하는 의문 섞인 댓글들이었다. 낯선 채널, 낯선 헌터, 화려한 스킬 이펙트도 없는 밋밋한 화면. 그런 방송이 급상승 목록에 뜨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그 댓글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오거가 팔을 크게 휘둘렀다. 다리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나는 그 팔의 궤적을 눈으로 좇으며, 반사적으로 이 오거의 근력을 계산했다. 팔 길이와 휘두르는 속도로 미뤄보면 타격 강도는 대략 삼 톤급, 사람 몸으로 그걸 정면으로 받으면 즉사였다. 즉사라는 말이 머릿속에 뜨는 순간에도 몸은 이미 다음 동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생각은 그저 행동을 뒤따라 기록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면으로 받을 생각이 없었다. 몸을 낮췄다. 오거의 팔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 밑을 통과하며 검을 옆으로 그었다. 손끝에 걸리는 저항이 거의 없었다. 그 감각이 이상하다고 느낀 건, 검이 지나간 자리에서 오거의 팔이 그대로 미끄러져 떨어졌을 때였다. 절단면이 너무 매끄러워서, 잘렸다는 사실보다 잘린 방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피가 튀지 않았다. 이 세계의 몬스터는 인간과 다른 체액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절단면에서는 검은 입자 같은 것이 흩어질 뿐이었는데, 그 입자가 안개 속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트루캐스트 화면 정면에 고스란히 잡히고 있었다. 마치 재가 날리는 것 같은 그 모습을, 나는 이미 수백 번 봤기 때문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채팅창의 분위기가 바뀐 건 그 순간부터였다. '뭐야 방금 그거', '한 방에 팔 잘렸는데?', '이거 CG 아니냐'는 댓글들이 순식간에 쏟아졌지만, 나는 그 반응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오거의 남은 팔을 향해 다시 검을 겨눴다. 오거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쳤다. 이 반응 역시 낯익었다. 몬스터도 통증을 느끼고, 통증을 느끼면 도망치려 한다는 사실을, 나는 삼 년 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도망치는 몬스터를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거리를 유지하며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엔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등 뒤는 협곡이었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오거도 알아챈 모양이었다. 몸을 웅크리며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그 자세조차 오래된 매뉴얼에 나온 그림과 똑같았다. 몸을 낮추고 남은 팔로 얼굴을 가리는 자세, 그건 방어라기보다는 마지막 반항이었다. 나는 검을 고쳐 잡았다. 다음 동작이 어떻게 될지, 이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검 끝을 오거의 목선에 맞추고, 무게 중심을 낮추고,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는 순서까지도. 드론의 화면이 그 순간 조금 흔들렸다. 카메라가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소리가 낮게 울렸는데, 그 소리는 마치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신호처럼 들렸다. 화면 구석의 시청자 수는 이미 만 단위를 넘어서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숫자를 보지 못한 채, 검을 겨눈 채로 오거를 향해 마지막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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