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천장이었다. 형광등 하나 없이 백열등 소켓만 덜렁 달린, 벽지 무늬가 누렇게 바랜 좁은 천장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마흔여덟 살 먹은 인간이 눈을 뜨자마자 천장 벽지 무늬로 이상함을 감지한다는 게 좀 우스운 얘기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회사에서 야근하다 책상에 엎어져 죽은 것 같은 그 마지막 기억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눈앞에 있는 건 유치원생이 그려놓은 것 같은 꽃무늬 벽지였고, 나는 그 순간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천장 무늬를 좀 더 자세히 뜯어봤다. 분홍색 튤립 같은 게 반복되는 패턴으로 찍혀 있었는데, 군데군데 곰팡이 자국인지 물이 샌 흔적인지 모를 갈색 얼룩이 져 있었다. 그 얼룩 하나하나가 이상하게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마치 시력이 갑자기 좋아진 것 같은, 아니 정확히는 세상을 보는 각도 자체가 낮아진 것 같은 그런 감각이었다. 눈높이가 달랐다. 누워 있는 채로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손을 들어봤다. 작았다. 손가락이, 손목이, 그리고 그 손목에 이어진 팔뚝까지 전부 낯설 정도로 가늘고 짧아서,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켰다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손등에 있어야 할 흉터도 없었다. 이십 대 초반에 술 먹고 넘어져서 생긴, 삼십 년 가까이 지워지지 않던 그 흉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게, 되네...?' 하는 생각이 스쳤는데, 정확히 무엇이 되었다는 건지도 모른 채 일단 몸을 일으켜 앉았다.
몸을 일으키는 과정부터가 낯설었다. 팔에 힘을 주는 감각, 상체를 세우는 무게중심, 그 모든 게 마흔여덟 해 동안 익숙해진 몸의 감각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오랫동안 안 쓰던 기계를 다시 켠 것 같은, 뭔가 삐걱거리면서도 이상하게 가벼운 그런 느낌. 발을 침대 밑으로 내려서 방바닥에 딱 붙여봤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나무 장판의 서늘한 감촉조차 생경했다. 나는 그 상태로 목을 한번 가다듬고 소리를 내봤다.
"어... 어어."
새된 소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목소리라는 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 더 소름이 돋았던 것 같다. 방구석에 놓인 낡은 나무 책상, 그 위에 널브러진 몽당연필과 지우개 가루, 손바닥만 한 자석 필통, 그리고 벽에 붙은 시간표 — 거기 적힌 숫자를 보고 나는 완전히 정신이 아득해졌다.
1985년.
나는 그 숫자를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마흔여덟 해를 살고 회사 책상에서 과로로 뻗어버린 인간이, 서른여덟 해나 되는 세월을 거슬러 초등학교 4학년생의 몸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으니까. 그렇다고 이걸 부정할 방법도 없었다. 손발이 작고, 목소리를 내보니 새된 소년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방 안 어디를 봐도 1980년대 물건들뿐이었으니까. 책상 위에 놓인 국민학교 알림장, 벽에 붙은 텔레비전 편성표, 그리고 창가에 매달린 조그만 캘린더까지 — 죄다 지금 시대엔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물건들이었다. 그야말로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확신을 결정적으로 만든 건, 방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온 여자의 얼굴이었다.
"한결아, 밥 먹었으면 얼른 준비해. 오늘 등록하러 가야 하니까."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서른여덟 해 전에 죽은 걸로만 알았던 얼굴, 회사 책상에 엎어져 있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원망하고 저주했던 그 얼굴이 눈앞에 젊고 생생한 모습으로 서 있었으니까. 어머니였다. 마흔여덟 인생을 통째로 갈아 넣어 이 순간의 원흉으로 지목했던 사람이, 지금 이 순간 삼십 대 초반의 앳된 얼굴로 내 방문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기억 속 어머니는 흰머리가 반쯤은 섞인, 주름이 깊게 진 얼굴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얼굴은 그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피부가 팽팽하고, 눈가에 주름이라고는 웃을 때 살짝 잡히는 잔주름 하나 정도. 목소리도 지금보다 한결 카랑카랑했다. 나는 그 낯설고도 익숙한 얼굴을 보면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반가움인지, 원망인지, 아니면 그 둘이 뒤섞인 뭔가인지 스스로도 헷갈렸다.
"등록... 이요?"
내 목소리가 낯설게 갈라져 나왔는데, 그게 원래 열 살 아이의 목소리라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도 나는 그 질문의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안다는 표현조차 부족했다. 나는 그 질문의 답을 몸으로 살아냈던 사람이었으니까.
"학원. 이번에 새로 생긴 데 있잖아, 거기 배치시험 보러 가야 한다니까. 옆집 정순이네 아들도 거기 다닌대. 너도 이제부터 정신 좀 차려야 돼."
그 순간 나는 완전히 확신했다. 지금이 정확히 그날이라는 걸. 내 인생 전체를 뒤틀어놓은 그 강압적 입시교육의 첫 페이지, 마흔여덟이 되도록 나를 짓눌렀던 그 사슬의 시작점이 바로 오늘이라는 걸.
요컨대 나는 그 사슬을 온몸으로 겪어낸 사람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십 년 가까이를 학원과 과외와 모의고사 사이에서 쳇바퀴 돌리듯 살았고, 정작 그렇게 갈아 넣은 청춘의 결과물이라는 게 지방 사립대 졸업장과 만년 대리 자리, 그리고 연봉 사천만 원짜리 회사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였다. 그 학원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순간이 바로 오늘이었을 줄이야. 나는 그 배치시험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반 배정 때문에 울고 짜던 기억, 상위반에 들지 못했다고 등짝을 맞았던 기억, 그런 파편들이 갑자기 물밀듯이 밀려왔다.
어머니는 그걸 두고 늘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이를 갈았다. 노력을 안 한 게 아니라, 애초에 노력이라는 개념 자체를 강압으로 주입받은 사람에게 남는 게 뭔지, 그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매일 밤 열 시, 열한 시까지 학원 문 앞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서 있었던 그 시절이, 지금 이 순간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시작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알겠어요."
나는 겉으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계산을 굴리고 있었다. 만약 이게 진짜라면 — 그러니까 내가 정말로 1985년, 열 살짜리 몸으로 되돌아온 게 맞다면 — 나에게는 이 시대의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압도적인 자산이 있는 셈이었다. 마흔여덟 해 동안 쌓아온 사회 경험, 세상 돌아가는 이치, 그리고 다가올 삼십팔 년의 역사를 통째로 알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
간단한 계산이었다. 88올림픽이 언제 열리는지, 부동산이 언제 폭등하는지, 어느 회사 주식이 언제 상장하는지, 나는 그 모든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이게... 반칙이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곧바로 그 생각을 정정했다. 반칙이 아니라 복수의 도구였다. 어머니가 나를 이 학원이라는 톱니바퀴에 밀어 넣으려 한다면, 나는 그 톱니바퀴 안에서 이번엔 절대 갈리지 않는 존재가 되어주겠다는 결심이 섰다. 겉으로는 순응하는 모범생, 속으로는 마흔여덟 인생의 원한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존재. 그게 이번 생에서 내가 맡을 역할이었다.
어머니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골목길, 연립주택 담벼락에 붙은 낡은 선거 포스터, 저 멀리서 들려오는 리어카 장수의 확성기 소리 — "찹쌀떡, 메밀묵 사려어" 하는 그 특유의 늘어지는 가락까지, 이 모든 게 진짜라는 걸 실감하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나는 창문 쪽으로 다가가 손끝으로 유리를 만져봤다. 차가웠다. 진짜였다. 가짜라면 이렇게까지 감각이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시야 한켠에 뭔가 낯선 문구가 떠올랐다.
[알림: 특수 능력 '48년의 기억'이 감지되었습니다.]
나는 그 문구를 보자마자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문구는 마치 게임 속 알림창처럼 시야 한 귀퉁이에 떠 있다가 몇 초 뒤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나는 손을 뻗어 그 자리를 만져보려 했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마치 눈앞 허공에 홀로그램이 떴다가 꺼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특수 능력이라니. 그럼 이게... 게임이야?'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웠다. 게임이라면 이렇게까지 통증이 생생하지도, 이렇게까지 방바닥이 차갑지도 않을 테니까.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방금 본 게 헛것인지 아니면 진짜인지를 곱씹었다. 만약 이게 진짜 능력이라면, 그것도 이름까지 붙은 능력이라면, 이건 단순한 회귀 이상의 무언가가 얽혀 있다는 뜻이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이 상황 전체를 설계했다는 뜻이기도 했고.
확실한 건, 이 몸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뭔가 심상찮은 일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단순히 시간을 거슬러 온 것뿐이라면 이렇게 알림창까지 뜰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나는 방바닥에 널브러진 몽당연필 하나를 집어 들고, 그 끝을 손톱으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해봤다. 뭔가가 더 있다. 이 '능력'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무언가가.
그리고 그 심상찮음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