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낡은 던전 벽면 사이로 습기 찬 공기가 흘렀다.
카메라를 든 신참 탐험자가 렌즈 너머로 그 장면을 계속 찍고 있었다.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렌즈를 고정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름은 몰랐다. 그냥 채집꾼으로 배정받은 애가 이상하게 움직인다는 것만 알았다.
던전 초입, 슬라임 몇 마리나 잡고 채집물 몇 개 챙겨서 돌아가는 게 원래 일정이었다.
그런데 저건 뭐야.
렌즈 속에서 도현이 슬라임 무리를 향해 낫을 휘두르고 있었다.
동작이 이상했다. 초보자의 몸짓이 아니었다. 낫을 다루는 손목의 각도, 체중을 옮기는 발놀림, 전부 다 지나치게 능숙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연속으로 베어 넘어갔다.
슬라임의 몸통이 갈라지며 끈적한 잔해가 바닥에 흩어졌다.
[레벨업!]
시스템 알림음이 연달아 울렸다.
도현의 얼굴에 표정이 어렸다.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웃는 게 아니었다.
눈이 풀린 채, 입가에 침이 살짝 고인 채, 헐떡이며 웃고 있었다.
저거 사람 맞아.
카메라를 든 신참의 손이 떨렸다.
렌즈 속 소년의 표정이 클로즈업됐다. 화면 가득 채운 그 얼굴이 신참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도현은 주변을 인식하지 못한 듯 보였다. 몬스터가 사라질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경험치 알림음 자체가 자극제인 것처럼.
허벅지가 살짝 떨렸다.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다시 낫을 고쳐 쥐었다.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또 다른 몬스터 무리가 나타났다. 이번엔 조금 더 큰 놈들, 이족보행하는 코볼트 형태의 몬스터였다.
도현이 그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낫을 고쳐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기대감이었다.
더 큰 놈일수록 경험치도 크겠지.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첫 번째 코볼트가 도끼를 들고 달려왔다. 도현은 그 자리에서 몸을 낮췄다. 놈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며 낫을 위로 그었다.
살점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크리티컬 히트!]
[레벨업!]
짜릿함이 이번엔 파도처럼 밀려왔다.
도현의 무릎이 꺾였다. 잠시 바닥에 손을 짚었다가 다시 일어났다.
하아.
숨소리가 거칠었다.
이마에 맺힌 땀이 눈썹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마저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남은 코볼트 두 마리가 동시에 덤벼들었다.
도현은 낫을 양손으로 고쳐 잡았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머릿속으로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몸이 반응했다.
첫 번째 놈의 목을 스치듯 그었다.
두 번째 놈의 배를 갈랐다.
두 놈이 동시에 쓰러지는 소리가 겹쳐 울렸다.
[레벨업!]
[레벨업!]
연속된 알림음이 던전 공기를 울렸다.
도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미친.
미쳤다.
이거 미친 것 같다.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두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손끝에 몬스터의 흔적이 묻어 뺨에 검은 얼룩이 생겼다.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듯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전부 지켜보던 신참 탐험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카메라를 든 손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저놈 뭐야.
저거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레벨업할 때마다 저렇게 반응하는 게 정상이야.
머릿속으로 질문이 연달아 떠올랐다가 아무 대답도 얻지 못한 채 흩어졌다.
신참은 뒷걸음질 쳤다. 발이 나뭇가지를 밟았다.
뚝.
작은 소리였는데도 도현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눈이 마주쳤다.
풀린 눈, 헐떡이는 숨, 낫에 묻은 몬스터의 흔적.
그 모든 게 한 화면에 담겼다.
도현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신참은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안녕하세요.
도현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목소리는 지나치게 태연했다. 방금까지 몬스터를 갈라 죽인 사람의 목소리라기엔 너무 부드러웠다.
신참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아, 아니에요.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요.
신참이 카메라를 황급히 내리며 뒷걸음질 쳤다.
손이 덜덜 떨려서 카메라를 제대로 잡지도 못했다.
잠깐만요, 같이 사냥하실래요? 여기 몬스터 진짜 많은데.
도현이 순수하게 물었다.
정말 순수하게, 아무 의심도 없이.
그 태도가 오히려 더 무서웠다.
신참은 대답 대신 몸을 돌렸다.
그대로 던전 입구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이 아니었다. 전력 질주였다.
발밑에 널린 잔해를 밟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저기요.
도현이 그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지만 신참은 돌아보지 않았다.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던전 입구로 통하는 좁은 통로 안으로 신참의 몸이 사라졌다.
카메라 화면에는 이미 십여 분치의 영상이 담겨 있었다.
경험치에 취한 채 웃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초보 탐험자의 손을 떠나 세상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파일은 아직 아무 데도 올라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손끝이 어디로 움직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도현은 뒤늦게 그 상황을 눈치챘다.
방금 그 사람, 뭘 찍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낫을 든 손이 그 자리에 멈췄다.
전신에 흐르던 짜릿함이 순간 서늘한 것으로 바뀌었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도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