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던전 입구는 어둡고 축축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습기와 곰팡이, 그리고 뭔가 썩어가는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가, 다른 신참들 시선이 느껴져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서아를 비롯한 F랭크 신참 열 몇 명이 한 조로 묶였다.
앞장서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처음이었으니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서로 눈치만 봤다. 이 좁은 통로 안에서 누가 먼저 발을 떼느냐가 곧 목숨을 건 도박처럼 느껴졌다.
"저희끼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서아가 내 옆에서 속삭였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이런 곳에 던져진 게 얼마나 무서울까. 나도 마은 넘은 인생 살면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지만.
나도 모른다.
하지만 마흔 살 인생 경험이라는 게 아예 쓸모없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십수 년을 버티며 배운 게 하나 있다면, 모르는 상황일수록 아는 척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최소한의 안전 수칙은 지켜야 한다는 것.
"일단 벽을 짚고 이동해요. 소리 내지 말고."
어디서 본 상식이었는지 모르겠다.
영화였나, 게임이었나.
어쨌든 지금은 그 상식이 유일한 실마리였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거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던전 안으로 들어가자 통로가 좁아졌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벽을 짚은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다.
"마족이에요..."
누군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한마디에 다들 얼어붙었다. 누군가는 숨소리조차 죽였다.
그때였다.
통로 뒤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걸음걸이가 여유로웠다.
갑옷도 화려했다.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도망쳐야 하나, 싸워야 하나, 판단이 서기도 전에 그 사람이 먼저 우리를 알아챘다.
"거기, 신참들. 여기서 뭐 해?"
낮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 던전 안에서 가장 위압적인 존재가 나타났다는 걸.
"F랭크 첫 임무예요..."
서아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겨우 나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긴장한 거겠지.
"이런 미친. 인솔자도 없이 신참들만 보냈다고?"
남자는 혀를 찼다.
그리고 우리를 훑어봤다.
시선이 한 명 한 명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괜히 등이 곧아졌다. 마치 면접관 앞에 선 신입사원처럼.
"내 이름은 이도현이야. A랭크. 오늘 이쪽 던전 순찰 중이었는데, 잘 걸렸네."
A랭크라니.
이제까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높은 등급이었다.
이 세계에서 등급이 뭘 의미하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적어도 그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여기서는 이 남자가 우리 목숨을 쥐고 있다는 것.
"살려주세요..."
어린 소년이 울먹이며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겨우 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이였다. 저런 애까지 이런 곳에 던져놓다니, 이 세계는 대체 무슨 논리로 돌아가는 걸까.
"살려는 줄 게 아니라, 원래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잠깐 붙어와. 앞에 마족 무리가 있는데 신참들끼리 마주쳤으면 반은 죽었을 거야."
반은 죽었을 거라는 말이 너무 태연하게 나왔다. 그만큼 이곳에서는 흔한 일이라는 뜻일까.
이도현이 앞장섰다.
우리는 그 뒤를 조심스레 따랐다.
발걸음이 그제야 조금 가벼워졌다. 적어도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통로 끝에서 정말로 마족 셋이 나타났다.
검은 피부, 붉은 눈, 뾰족한 이빨.
숨이 턱 막혔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흉측했다. 저런 걸 신참들끼리 만났다면 정말로 몰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도현이 검을 뽑았다.
순식간이었다.
마족 셋이 그대로 쓰러졌다.
칼날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저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마리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게 A랭크라는 건가.
"휴우."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겨우 참았다. 옆에서 서아도 비슷한 얼굴이었다.
"자, 이제부터는 나랑 같이 움직여. 신참들 이렇게 혼자 두면 안 되지."
이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의외로 다정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 하나로 방금까지의 공포가 조금 옅어지는 기분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날부터 이도현은 우리 조를 챙겨줬다.
원래 그의 임무가 아니었는데도.
"넌 이름이 뭐야?"
이도현이 나에게 물었다.
"강민준입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데?"
"마흔이었어요, 원래 세계에서는."
"그래? 그럼 여기서도 마흔인 거지. 나이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여기선 강함이 다야."
강함이 다인 세계.
적응해야 할 새로운 논리였다.
회사에서는 연차가 곧 계급이었다. 나이 어린 팀장 밑에서 굽신거리던 시절도 있었고, 어린 후배들 눈치 보며 커피 심부름 하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것들이 전부 무의미하다니.
며칠이 지나고, 우리는 조금씩 던전 생활에 적응해갔다.
이도현이 가르쳐준 전투 기술, 서아와 다른 신참들과 함께 나누는 물자.
검을 쥐는 법, 발을 딛는 법, 마족의 약점을 노리는 법.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야 했다. 몸이 삐걱거렸지만, 이상하게도 예전 회사에서 엑셀 함수 배울 때보다 머리에 더 잘 들어왔다.
소속감이라는 게 이런 걸까.
회사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강민준씨,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서아가 웃으며 말했다.
어느새 나를 의지하는 듯했다.
"서아씨도요. 오늘 꽤 잘 싸웠어요."
"에이, 아직 부족해요."
소소한 대화였지만 마음이 편했다.
이런 대화 한마디에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회사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거기선 서로 칭찬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는데.
이도현은 가끔 자기 이야기를 해줬다.
모닥불 앞에 앉아, 검을 손질하면서 툭툭 던지듯 말했다. 자랑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나도 처음엔 F랭크였어. 3년 걸려서 A랭크까지 왔지."
"3년이나요?"
"응. 여긴 시간이 다르게 흘러. 원래 세계 시간이랑 여기 시간이랑 비율이 달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말이 신경 쓰였다.
3년이라니. 여기 시간으로 3년이면, 원래 세계에서는 대체 얼마나 지난 걸까.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럼 저희가 여기서 오래 있으면..."
"원래 세계에서는 별로 안 지났을 수도 있어.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고. 정확히는 아무도 몰라."
아무도 모른다는 대답이 불안했다.
정확히 모른다는 말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회사 다닐 때는 적어도 월급날은 정확히 알고 있었는데.
"신이 그러던데, 마왕만 무찌르면 돌려보내준다고 했어요."
"신이? 너 신을 만났어?"
"소환될 때요."
이도현의 표정이 순간 묘하게 변했다.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 저 표정은, 뭔가를 숨기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뭔가... 아시는 거 있으세요?"
"아니, 그냥. 신이라는 존재가 하는 말은... 조심해야 해."
조심해야 한다는 말.
그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당장은 캐물을 여유가 없었다.
이도현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사라졌다. 마치 방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는 더 묻고 싶었지만, 그의 눈빛에서 그만하라는 신호를 읽었다.
그날 밤, 던전 밖 야영지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신참들과 이도현이 함께 앉았다.
불꽃이 탁탁 튀는 소리, 그리고 그 위로 흐르는 낮은 대화들. 며칠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었다.
서아는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다른 신참 아이들도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아이들 중 몇몇은 벌써 서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마족을 흉내 내며 으르렁거렸고, 다른 애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렇게 다 같이 있으니까 좀 낫네요."
서아가 말했다.
"그렇지. 혼자면 못 버텨. 여긴 원래 그런 곳이야."
이도현이 대답했다.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 사람들의 낮은 웃음소리.
오랜만에 느끼는 평온함이었다.
나는 불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세계에 떨어진 게 최악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적어도 여기서는 서로를 챙기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평온함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강민준씨, 계약서 같은 거 받으셨어요? 소환될 때?"
서아가 문득 물었다.
"계약서요? 아니요, 그런 건 없었는데요."
"저도 없었는데... 이도현님은요?"
순간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을 텐데, 그게 하필 잘못된 사람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이도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불빛에 비친 그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까지 웃고 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받았어. 근데 그건 너네가 알 필요 없어."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평소와는 다른, 뭔가를 억누르는 듯한 어조였다.
뭔가 숨기는 게 있었다.
그 말투에서 느껴진 거리감이 낯설었다. 여태까지 우리를 챙겨주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순간, 모닥불 너머로 낯선 존재의 시선이 느껴진 것 같았다.
착각이었을까.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어둠 속을 살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선의 잔상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도현도 그걸 느낀 걸까. 그의 손이 검 손잡이로 슬며시 향하는 걸, 나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