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깜박였다.
【고객님, 사망이 확인되었습니다.】
【정안회 긴급 프로모션이 적용되었습니다.】
도현은 아무 감각도 없이 그 문장을 '들었다'.
생각이 아니라 그냥 머릿속에 새겨졌다.
'뭐야.'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빛도, 소리도, 바닥도 없었다.
그저 검은 공백 속에 도현의 의식만 부유하고 있었다.
숨을 쉬어야 하는데 숨을 쉬는 감각조차 없었다.
심장이 뛰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낯선 목소리들이 겹쳐 울렸다.
남자의 목소리, 여자의 목소리,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다섯 개의 다른 리듬이 뒤섞여 흘렀다.
누군가는 울고 있었고, 누군가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또 다른 누군가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뇌었다.
"엄마, 엄마."
도현은 그것들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거… 다른 사람들이야.'
목소리들은 점점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울음이 웃음에 섞이고, 웃음이 다시 흥얼거림에 섞였다.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도현은 그 소리들이 자신의 두개골 안쪽에서 서로를 갈아 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용마에게 포식된 다섯 명의 인간 정보가 병합되었습니다.〉
〈베이스 신체 재구성이 완료되었습니다.〉
〈고객님께 새로운 신체가 지급되었습니다.〉
의식이 갑자기 확 밀려 올라왔다.
바닥이 생겼다.
차가운 감촉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도현은 눈을 떴다.
형광등 불빛이 눈을 찔렀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몇 번이나 깜박여야 시야가 겨우 초점을 잡았다.
천장은 낡은 타일로 덮여 있었고,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었다.
손끝을 움직여 보았다.
손가락이 길고 가늘었다.
손톱 아래 있던 습관적인 각질도 없었다.
손등의 흉터도, 어릴 적 넘어져 생긴 자국도 없었다.
'내 손이 아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가슴에 낯선 무게감이 느껴졌다.
도현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굳어버렸다.
분명 남자의 몸이 아니었다.
가느다란 손목, 좁은 어깨, 그리고 있어서는 안 될 곡선.
허리를 만져보았다.
손바닥에 낯선 굴곡이 닿았다.
'이게 뭐야.'
손을 떼지 못하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착각도 아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자 가슴이 눌리는 느낌이 낯설게 파고들었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조차 낯설게 나왔다.
가늘고 높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목에서 나온 소리라는 게 믿기지 않아서였다.
다시 시험해 보듯 짧게 소리를 내보았다.
"아."
똑같았다.
낯선 소녀의 목소리가 좁은 방 안에 울렸다.
근처에 놓인 스테인리스 트레이 위, 물이 담긴 그릇이 있었다.
도현은 떨리는 손으로 물 위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긴 백발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창백한 피부, 가늘고 긴 목.
낯선 여자의 얼굴이 물 위에서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내가 아니야.'
손끝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숨이 가슴 안에서 막혔다.
도현은 물그릇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물이 흔들리자 얼굴도 함께 일그러졌다.
그 일그러짐마저 도현의 것이 아니었다.
〈고객님의 새로운 신체는 용마의 뇌 조직을 기반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해당 재구성은 마법소녀화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도현은 헛웃음을 뱉었다.
"뭐? 마법소녀?"
목소리는 여전히 낯설었고, 그래서 더 우스웠다.
웃음이 나오는 건지 신경질이 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대답이 없었다.
알림창은 사람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다음 문구를 띄웠다.
〈고객님의 능력 각성률: 12%〉
〈각성률이 낮을 경우 신체 통합이 실패할 수 있습니다.〉
〈각성을 위해 시범 발현을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통합 실패하면 뭐가 되는데.'
물어도 대답은 없었다.
그저 다음 문장을 위한 여백처럼, 도현의 물음은 허공에 흩어졌다.
도현의 손끝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의도한 게 아니었다.
그냥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손가락 관절이 스스로 접히고 펴지며 어떤 궤적을 그렸다.
낯선 몸이 낯선 방식으로 마력을 다루고 있었다.
빛은 실처럼 가늘게 이어지다가 손목 주변에 감겨들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다만 몸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소진되는 느낌이 들었다.
배 속이 텅 비어가는 감각.
마치 몸 안의 어떤 저수지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거… 마력이라는 건가.'
빛이 잦아들자 손끝이 저릿하게 아려왔다.
근육이 아니라 신경 자체가 얇게 벗겨진 듯한 통증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다른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어느 여학생의 웃음소리, 좋아하던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던 손끝의 긴장.
휴대폰 액정을 몇 번이나 켜고 끄던 초조함.
전송 버튼 위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던 손가락.
도현의 것이 아닌 기억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현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남의 사진첩을 몰래 훔쳐본 것처럼, 죄스럽고도 생생했다.
'다섯 명 중 하나인가.'
다른 기억들도 조각조각 스쳐 갔다.
누군가의 손에 익은 국자, 누군가의 발밑에서 부서지던 낙엽 소리, 누군가의 마지막 숨.
도현은 그것들을 붙잡으려 했지만 붙잡을수록 흩어졌다.
마치 물속에서 손을 뻗어 빛을 움켜쥐려는 것 같았다.
도현은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손목에 낯선 문신 같은 문양이 옅게 새겨져 있었다.
검은 실선으로 이루어진 그 문양은 마치 심장처럼 천천히 박동하고 있었다.
문양을 손끝으로 문질러 보았다.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손이 닿는 순간 문양이 미세하게 밝아졌다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고객님의 마력 코어가 안정화되었습니다.〉
〈현재 남은 마력: 340/1000〉
숫자를 본 순간 도현은 낮게 욕설을 뱉었다.
"이게 다야?"
340이라는 숫자가 유독 초라하게 느껴졌다.
1000분의 340.
겨우 손끝에 실 같은 빛 한 줄기를 만드는 데 이만큼이 깎여 나갔다는 뜻이었다.
'이걸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대답 없이 알림창이 또 하나 떠올랐다.
〈고객님, 축하드립니다.〉
〈신규 고객 특전으로 기본 무기가 지급되었습니다.〉
손끝에서 무언가가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은빛 지팡이 하나가 손안에 잡혔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손바닥에 익숙지 않았다.
길이는 팔뚝 정도, 끝에는 작은 보석 같은 것이 박혀 있었는데 그 안쪽에서 옅은 빛이 맥동하고 있었다.
지팡이를 쥐자 손목의 문양이 반응하듯 짧게 깜박였다.
도현은 지팡이를 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죽었는데.'
'그런데 왜 살아 있는 거야.'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분명 그 순간, 도현은 죽었다.
그건 확실했다.
가슴에 무언가가 박히던 감각, 숨이 끊기던 순간의 무게감.
그런데 지금 이 몸은, 이 손은, 살아서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이게 사는 거야, 죽는 거야.'
방 안은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병실 같은 곳이었다.
창문은 없었고, 문 하나만이 굳게 닫혀 있었다.
벽 곳곳에 희미한 금이 가 있었고, 그 틈으로 낡은 시멘트 냄새가 스며 나왔다.
소독약 냄새와 뒤섞인 그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서 보려 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 몸의 근육이 아직 익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낯선 무게중심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한 걸음, 겨우 뗐다.
또 한 걸음.
벽을 짚어야 겨우 균형이 잡혔다.
트레이 옆에 놓인 작은 거울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도현은 그것을 집어 얼굴을 다시 비춰 보았다.
백발의 소녀가 그 안에서 자신을 마주 보고 있었다.
눈동자는 옅은 하늘색이었다.
낯설고, 낯설고, 또 낯설었다.
'이 얼굴로 어떻게 살라는 거야.'
그때였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일정한 간격으로 점점 다가오는 그 소리에, 도현의 심장이 다시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
거울 조각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팡이를 쥔 반대편 손도 저절로 굳었다.
발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문 바로 앞에서 멈춰서는가 싶더니,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