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누명 영애, 발효로 웃다

5화

그날 이후 서연과 하나 사이에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통하는 묘한 신뢰가 생겨났는데, 하나는 더 이상 서연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일같이 항아리 곁에 앉아 발효가 진행되는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며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냈다. "언니, 이건 왜 색이 변해요?" "이건 어제보다 냄새가 더 좋아졌어요." "근데 왜 이 항아리는 뚜껑을 자주 열면 안 돼요?" 그런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해주는 동안, 서연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어떤 감각을, 자신의 힘이 누군가에게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을 다시 배워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저택에서 자라며 늘 감춰야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이었다. 저택에서는 누구도 서연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이상한 기운을 발견할 때마다 흠칫 물러서거나, 뒤에서 수군거리며 손가락질하는 것이 전부였을 뿐, 그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그런 색을 만들어내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으니, 하나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쏟아지는 질문들이 서연에게는 낯설고도 벅찬 것이었다. '이런 게……, 이런 게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거였구나.'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서연은 가슴 한쪽이 뭉근하게 데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 온기가 익숙하지 않아 몇 번이나 숨을 삼켜야 했다. 서연은 그날부터 조금씩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든 장과 절임을 나누어주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귀족 출신이라는 이유로 경계하던 사람들도, 몇 번 맛을 본 뒤로는 그녀의 솜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중 몇몇은 은근슬쩍 소금이나 콩을 나누어주며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장을 나누어주러 갔을 때만 해도 마을 아낙들은 팔짱을 낀 채 서연을 위아래로 훑어보기만 했었다. "귀족 아가씨가 이런 걸 만들었다고요? 흥, 믿기지 않네요." 누군가 그렇게 코웃음을 치며 돌아섰을 때, 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항아리를 내려놓고 발걸음을 돌렸었는데, 그러나 며칠 뒤 그 아낙이 슬그머니 오두막 앞을 찾아와 남은 장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서연은 그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맛이, 결국 맛이 모든 편견을 이겨낸 것이었다. "이 여편네, 손끝에 뭔가 있는 것 같지 않아?" 마을 아낙 하나가 그렇게 속닥거리는 것을 서연은 우연히 들었지만, 그 말에 담긴 것이 경멸이 아니라 순수한 감탄이라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힘이 저주가 아니라 재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품게 되었다. 그 순간 서연의 뒷목이 뜨거워졌다. 수십 번도 더 들어본 비슷한 말이었지만, 그때마다 그것은 항상 손가락질과 함께였고, 곱씹을수록 서연의 마음을 갈아내는 칼날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 이 말에는 그런 날카로움이 전혀 없었으니, 그저 순박한 감탄과 부러움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 숨기지만은 않겠어.' 그 다짐이 서연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그녀는 하나와 함께 작은 발효 작업장을 넓혀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오두막 뒤편의 공터에 항아리를 몇 개 더 놓고, 하나가 좋아하는 여러 채소들로 다양한 절임을 시도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무를 썰고,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마늘과 고추를 다져 넣는 손길이 하루하루 늘어갈수록, 오두막 뒤편은 조금씩 작은 시장의 형태를 갖추어갔다. "언니, 이 항아리에는 뭘 넣을 거예요?" "이건 하나가 좋아하는 오이로 해볼까?" 그런 대화가 오갈 때마다 하나는 손을 흔들며 뛰어다녔고, 그 작은 발걸음 소리가 오두막 안을 가득 채우는 동안, 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었는데, 그것은 저택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여유로움이었다. "우리, 여기서 장사해도 될까요?" 하나가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물었을 때, 서연은 잠시 망설였는데, 왕실의 서약을 떠올리면 이 모든 것이 위험한 도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지 않으면 결국 굶어 죽거나 잊혀갈 뿐이라는 현실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왕실의 서약이란, 서연의 힘이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그녀 스스로 다짐하고 맹세한 굴레와도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을 어길 경우 처형이 내려질 것이라는 경고를 이미 분명히 들었으니, 그 서약을 떠올릴 때마다 서연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계속 숨어 지내다가는 결국 굶어 죽고 말 거야.' 그 두 갈래의 생각이 서연의 머릿속에서 팽팽하게 부딪히는 동안, 하나는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으로 서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해보자." 서연이 그렇게 답하자 하나는 함성을 지르며 좋아했고, 그 모습을 보며 서연도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그 웃음 속에는 오랜 세월 억눌러왔던 무언가가 조금씩 풀려나가는 듯한 해방감이 담겨 있었다. 그날 밤, 서연은 오랫동안 잠들지 못한 채 오두막 천장을 바라보며 자신이 내린 결정이 옳았는지를 몇 번이나 되짚어보았는데, 하나의 웃는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그 불안은 조금씩 잦아들었고, 결국 그녀는 이곳에서라면 어쩌면 정말로 새로운 삶을 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조심스레 품은 채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시간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는데, 어느 날 오후 마을 어귀에 낯선 마차 한 대가 멈춰 서고, 그 안에서 검은 로브를 두른 남자 하나가 내려섰기 때문이었다. 덜컹. 마차 바퀴가 흙길 위에서 멈추는 소리가 들리자, 오두막에서 절임을 다지고 있던 서연의 손이 순간 멈추었다. 남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뭔가를 묻고 다니는 듯했는데,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하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렸고, 아이는 서연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며 그대로 몸을 숨기려 했다. "하나야, 왜 그래?" 서연이 놀라 물었지만, 하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몸을 떨며 오두막 안쪽으로 서연을 끌어당길 뿐이었는데, 그 떨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며 서연은 재빨리 하나를 등 뒤로 숨기고, 남자가 다가오는 방향을 경계하며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나의 작은 손이 서연의 손을 얼마나 세게 붙잡고 있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였다. '도대체 저 남자가 누구길래……, 하나가 이렇게까지 떠는 걸까.' 그 의문이 서연의 머릿속을 스치는 사이, 남자는 이내 마을 이장과 몇 마디를 나눈 뒤, 시선을 돌려 서연의 오두막 쪽을 정확히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이 마치 무언가를 확신한 사람의 것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고, 그 순간 서연의 가슴 한구석에서 서늘한 예감이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검은 로브 자락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마저 이곳까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저 남자……, 하나를 찾아온 걸까.' 그 생각이 스치는 것과 동시에, 남자의 발걸음이 천천히 오두막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고, 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며, 다가오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사박, 사박. 흙길을 밟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서연의 심장은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고, 그녀는 하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온몸에 힘을 그러모으며, 오두막 문 앞을 가로막듯 자세를 고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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