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계 최강자의 서울 유람

2화

강남경찰서 형사과. 조서를 쓰던 강태석의 손이 잠시 멈췄다. 앞에 앉은 청년, 백무진이 팔짱을 낀 채 하품을 하고 있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그의 옷에는 아직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남의 피였다. "이름." "백무진." "나이." "그런 걸 왜 재는지 모르겠군." 강태석은 한숨을 삼켰다. 경력 이십 년 동안 별의별 사람을 다 봤지만, 이런 인간은 처음이었다. 총을 맨손으로 잡아내고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태도였다. 심지어 그 총알이 관통한 벽을 손가락으로 두드려보며 신기해하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참고인 진술만 받으면 되는데, 이거...' 강태석은 조서 위에 볼펜을 톡톡 두드렸다. "직업은." "없다." "주소는." "없다." "가족은." 백무진은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강태석은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은행 CCTV 영상이 모든 걸 증명해줄 터였다. 결국 사건은 정당방위로 정리됐다. 강도범 세 명이 흉기를 들고 은행에 들어왔고, 백무진이 그중 하나를 맨손으로 제압하는 과정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경찰 상부에서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조사가 끝난 뒤 강태석이 청년을 배웅하러 나섰을 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백무진의 그림자가 유독 길게 늘어져 있었다. "묵을 곳은 있나." "없다." 백무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마치 남의 일을 말하듯이. 강태석은 잠시 그를 쳐다봤다. 뭔가 미심쩍었지만, 이상하게 이 청년을 그냥 보내기가 꺼려졌다. '경찰 생활 이십 년에 이런 감이 든 건 처음인데.' "...하루 정도는 재워줄 수 있다." 그 한마디가, 훗날 그의 가족을 완전히 바꿔놓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강태석의 집. 좁은 마당이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다. 담벼락에는 오래된 담쟁이가 얼기설기 뻗어 있었다. 문을 열자 휠체어를 탄 여인이 마중 나왔다. 오미란이었다. "여보, 손님이신가요?" "어쩌다 보니..." 강태석이 어색하게 웃었다. 오미란은 백무진을 바라보다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눈빛에는 경계심보다 호기심이 먼저였다. "들어오세요. 마침 저녁이 남았어요." 식탁에는 세 사람 몫이 아닌 두 사람 몫만 차려져 있었다. 국그릇 하나가 유독 비어 보였다. 백무진이 그것을 눈치채고 물었다. "아들은 없나." 순간 오미란의 손끝이 떨렸다. 숟가락을 든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강태석은 시선을 떨어뜨려 물잔만 바라봤다. "...있습니다." 강태석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지금은 구치소에 있죠." 백무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이유는." "동네 불량배들이 여자애 하나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그걸 보고 참지 못하고 싸웠어요." 강태석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젓가락이 식탁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상대 중 하나가 크게 다쳤습니다. 그런데 그쪽 아버지가 지역 유지라, 재판까지 넘어갔죠." "..." "제가 형사대 대대장까지 지낸 사람인데도, 이 일에는 손을 못 쓰고 있습니다." 강태석의 목소리에 무력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평생 남을 잡아 넣는 일을 해왔는데, 정작 제 아들 하나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짓눌렀다. 오미란이 조용히 남편의 손을 감쌌다. "도윤이는... 잘못한 게 없어요. 정말로."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남이 괴롭힘당하는 걸 못 보는 아이였는데... 그게 죄가 되나요." 백무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재밌군.' 입 밖으로는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젓가락을 들고 밥을 한술 떴다. 반찬은 평범했지만, 오랜만에 먹는 집밥 같은 맛이었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겠다." "예?" 강태석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묵을 곳이 필요하다고 했잖나. 여기가 마음에 든다." 강태석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숟가락을 든 채 오미란과 눈을 마주쳤지만, 그녀 역시 대답을 찾지 못한 얼굴이었다. 다만 이 이상한 청년에게서, 뭔가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설명할 수 없지만, 거부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다음 날. 강남구치소 접견실. 강태석이 유리 칸막이 너머 아들을 마주했다. 강도윤이었다. 짧은 머리에 눈매가 강도만큼 사나웠지만, 지금은 초췌한 얼굴이었다.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버지." "괜찮으냐." "괜찮을 리가요." 강도윤이 씁쓸하게 웃었다. "여기 사람들, 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눈으로 봐요. 그냥... 폭력 전과자로만 취급하니까." 강태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리 너머로 손을 대보고 싶었지만, 칸막이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저 진짜, 그 새끼들이 여자애를...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안다." 강태석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믿는다. 하지만... 재판까지 시간이 걸린다." 강도윤의 눈에 잠시 물기가 어렸다가, 곧 지워졌다. 입술을 꾹 깨물며 참는 듯했다. "괜찮아요.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목소리는 스스로도 확신이 없어 보였다. "어머니는요." "잘 계신다. 걱정 마라." "...제가 여기 있는 거, 어머니 몸에도 안 좋을 텐데." 강도윤이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을 보는 강태석의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면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호가 들려왔다. 강도윤이 급히 물었다. "아버지, 재판은 언제쯤이에요." "곧 날짜가 잡힐 거다. 조금만 더 견뎌라." "...예." 면회가 끝나고, 접견실을 나서던 강태석의 휴대폰이 울렸다. 구치소 관리팀장의 번호였다. 강태석은 순간 불길한 예감에 발걸음을 멈췄다. "강 대장님... 저기, 급한 소식이 있는데요." 목소리에 다급함이 실려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오늘 밤 도윤이가 있는 사동에서, 좀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강태석의 손끝이 굳었다. "...무슨 움직임 말입니까." 전화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짧은 정적이 강태석의 심장을 옥죄었다. "확실하진 않은데, 조직적인 걸로 보입니다." "조직적이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몇몇 재소자들이 짜고 도윤이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쪽 유지 아들 측에서 손을 쓴 것 같기도 하고요." 강태석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손에 든 휴대폰이 땀으로 미끈거렸다. "당장 조치를 취해주십시오." "저희도 최대한 신경 쓰고 있습니다만... 오늘 밤은, 인력이 부족해서요." 전화가 끊겼다. 강태석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밤이 되기까지, 몇 시간이나 남았는지 그는 정확히 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몇 시간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사실이 그를 미치도록 조급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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