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냉혈기사의 뜨거운 집착

4화

남아 있는 여관방은 하나뿐이었다. 남부로 향하는 길목의 작은 마을, 지붕이 낮고 창문마다 삐걱거리는 나무 덧문이 달린 허름한 여관이었는데, 주인장은 손님용 침실이 두 개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태현이 허리춤에 매달린 낡은 주머니를 풀어 안에 든 동전을 세어보고는, 미간을 좁히며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어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이틀 뒤에 습지에 도착한다 해도, 그다음에 또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게다가 마차 수레바퀴도 갈아야 하고……"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던 서윤은 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다. 전생에 마트 전단지를 뒤적이며 십 원짜리까지 아끼던 습관이 몸에 붙어 있던 그녀에게는, 저 셈이 낯설기보다는 오히려 반가웠다. 이 세계의 귀족 영애 신분으로 살면서도 방 두 개쯤은 대수롭지 않게 잡던 예전의 습관이 남아 있었을 텐데, 태현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방 하나면 충분해요. 돈 아껴야죠." 서윤이 선뜻 동의하자 태현은 조금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주인장에게 방 하나를 청했다. 그런데 그 '방 하나'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 서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침대가 하나였다. 그것도 두 사람이 눕기에는 다소 좁아 보이는, 낡은 나무 프레임에 얇은 이불 한 장이 덮인 침대 하나. 문 앞에 우두커니 선 태현도 방 안을 훑어보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의 목울대가 한 번 오르내리는 게 보였고, 낮은 헛기침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갈랐다. "그…… 내가 바닥에서 자면 된다." "오라버니가 며칠째 마부 노릇에 마차 지키는 것까지 다 하시는데, 바닥에서까지 재우면 제가 사람도 아니죠." 서윤은 팔짱을 끼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이게 최선인가 하는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다고 이 늦은 밤에 다른 방을 구하러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무엇보다 태현이 오늘도 온종일 마차를 몰며 지쳐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같이 자요. 어차피 오누이잖아요." 말은 그렇게 뱉었지만, 정작 이불을 나눠 덮고 등을 맞대며 눕는 순간 서윤은 자신의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방 안의 촛불이 다 꺼진 뒤라 어둠뿐이었는데도, 등 뒤로 느껴지는 체온과 옷깃 스치는 소리 하나까지 유난히 선명하게 감각되었다.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 명명할 수 없었으나,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리고 귀 끝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서윤은 이건 그냥 낯선 곳에서 오는 불안감일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태현의 등이 커다랗고 단단하다는 것도,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 것도, 서윤은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노력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였고, 서윤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바깥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낮게 울렸고,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방바닥에 희미한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서윤은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다. "오라버니, 자요?" "아니, 아직." 목소리가 생각보다 가까이서 들려서 서윤은 흠칫했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계속 마음에 걸리던 질문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때 왜 저를 구하셨어요? 강소은한테 그렇게 빠져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태현이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그의 손이 조심스레 서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크고 거친 손이었지만, 그 손길에는 이상하리만치 다정함이 배어 있어서, 서윤은 숨을 죽인 채 그 온기를 가만히 느꼈다. "안개 속에서도, 네가 걷어차이는 소리는 뚫고 들어왔으니까." 그 말에 서윤은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대답이랄 것도 없는 짧은 말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오래도록 들어온 어떤 고백보다 더 묵직하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태현도 그런 그녀를 채근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등을 맞댄 채, 낯선 마을의 낯선 침대 위에서 하룻밤을 흘려보냈다. 다음 날 아침,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짐을 챙겨 마차에 오르려는 순간, 태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마을 어귀,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길목에 고정되었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여러 겹으로 겹쳐 울리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적어도 대여섯 필은 되어 보이는 규칙적인 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벌써 따라왔나."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젯밤 다정했던 손길의 잔상은 이미 그의 얼굴에서 지워지고 없었고, 서윤은 그 표정의 변화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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