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냉혈기사의 뜨거운 집착

5화

말발굽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진동인가 싶었는데, 이내 또렷한 말발굽 소리로 변해가며 마을 어귀의 흙길을 두드려댔고, 그 소리에 놀란 닭들이 요란하게 울며 담장 너머로 흩어졌다. 다섯 명의 근위병이 대열을 갖춘 채 마을로 들어섰고, 그 선두에 선 얼굴을 확인한 순간 서윤의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박민호였다. 지난밤 그 자리에서 무슨 치욕을 당했는지는 몰라도, 그의 눈빛에는 예전과는 다른 종류의 독기가 서려 있었다. 입꼬리는 억지로 끌어올린 듯 비뚤어져 있었고, 말고삐를 쥔 손에는 유난히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서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 어제 그렇게 당해놓고도 또 왔구나…… 근성 하나는 인정해줘야 하나. 하지만 그런 실없는 생각도 오래가지 못했다. 박민호가 말에서 내려 마차 앞을 정확히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백태현 경, 왕실의 명으로 두 분을 압송하겠습니다." 목소리는 딱딱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태현의 입가에 서늘한 웃음이 걸렸다. "압송이라니, 죄인처럼 취급하지 말라." 태현이 서윤을 등 뒤로 감추듯 세우며 검을 뽑았다. 칼날이 아침 햇살을 받아 짧게 번쩍였고, 병사들이 일제히 창을 겨누며 반원을 그리듯 마차를 둘러쌌다. 창끝이 서윤 쪽으로도 몇 개나 향해 있었는데, 그것을 본 서윤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마치 누군가 가슴 안쪽에서 북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박민호가 병사들에게 눈짓을 하며 서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영애, 이쪽으로 순순히 오시죠.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을 텐데." 그 말투에는 은근한 조롱이 섞여 있었다. 마치 어제의 굴욕을 조금이라도 되갚아주겠다는 듯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앙심이었다. 서윤은 그 손이 자신의 팔을 낚아채려는 순간을 아주 느리게 인지했다. 시간이 잠깐 늘어진 것처럼, 그 손이 다가오는 궤적이 눈앞에서 선명하게 재생되었고, 그와 동시에 서윤의 머릿속에서 예전 기억이 불쑥 튀어나왔다. * * * 궁에서 시녀들에게 손목을 붙잡혀 끌려가던 밤이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발이 끌리는 소리, 손목을 파고드는 손가락의 힘, 그리고 그 뒤로 매질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슬 퍼런 눈초리로 내려다볼 뿐이었고, 그 침묵이 오히려 매보다 더 아팠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마치 서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시선을 피했다. * * * 숨이 턱 막히고 손끝이 차갑게 식으면서, 서윤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감각,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감각, 그 모든 것이 오래전 그날과 똑같이 되살아났다. "싫어…… 싫어요, 놓으세요." 목소리가 떨려 나왔고, 스스로도 그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이렇게까지 겁먹은 목소리를 낸 게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오래전 학대의 기억들이 파편처럼 밀려들어 그녀를 삼켰다. 태현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정확히는, 뭔가 툭 끊어지는 감각이 뒷목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서윤이 저런 표정을 짓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저렇게 완전히 무너진 얼굴은. "손 치워라." 그가 낮게 내뱉은 한마디였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는데, 그 안에 담긴 냉기가 어찌나 짙었는지 주변 공기마저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듯했다. 박민호는 반사적으로 손을 놓았다. 그리고 태현의 눈을 마주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춤 물러났다. "오, 오지 마십시오! 저희는 명을 받고 온 것뿐입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방금까지 조롱하던 그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오히려 검을 든 태현보다 더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명이라니, 누구의 명인지 물어도 되겠나." 태현의 검끝이 병사들을 향해 서서히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느렸지만, 그 느림 속에 담긴 위압감이 창을 든 병사들의 발끝을 굳게 만들었다. 아무도 먼저 움직이지 못했다. 서윤은 여전히 몸을 떨며 오라비의 등을 붙잡았다. 손끝이 옷자락을 움켜쥐는 것만으로도 겨우 버티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오라버니, 저, 저 괜찮아요……"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그녀의 몸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고,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지 않았다. 태현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여동생이 아무리 입으로는 아무렇지 않다 말해도, 몸이 하는 말은 언제나 더 정직하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을 향해 무언가 결단을 내린 듯 자세를 바꾸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더 들어갔고, 발끝이 앞으로 살짝 이동했다. 다음 순간 어떤 움직임이 벌어질지, 지켜보던 병사들조차 숨을 멈추고 그 자세를 읽으려 애썼다. 그 순간, 하늘에서 이상한 붉은 빛이 마을 어귀 쪽 숲을 향해 스치듯 지나갔다. 병사들도, 태현도, 서윤도 그 빛을 보고 일제히 굳어버렸다. 마치 누군가 하늘에 붓을 대고 단 한 번 긋고 지나간 것처럼, 붉은 궤적이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는데, 그 잔상이 눈꺼풀 안쪽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자연의 빛이 아니었다. 노을도 아니었고, 벼락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세상의 시간을 억지로 되돌리거나 앞당기려는 것처럼, 이질적이고 불길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저게 뭐지." 태현이 낮게 중얼거리는 사이, 숲 너머에서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다른 낮고 이상한 진동이 땅을 타고 울려왔다. 발밑의 흙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고, 근처에 매어둔 말들이 갑자기 콧김을 내뿜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병사 하나가 창을 놓칠 뻔했는지 황급히 다시 움켜쥐는 소리가 들렸다. 서윤은 그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오싹한 감각과 함께, 자신이 이 타임라인 자체가 뭔가 크게 어긋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붉은 빛이 사라진 방향의 숲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마치 무언가가 그 안에서 숨을 고르며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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