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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다은이 한람 가 저택에서 눈을 뜬 지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다은은 거의 하루의 절반을 잠으로 보냈다. 눈을 뜨면 천장의 낯선 무늬를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으면 곧바로 잠에 빠져드는 식이었다. 의원은 그것을 두고 몸이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이런 겁니다. 몸이 너무 지쳐 있으면 정신이 먼저 쉬려고 드는 법이지요." 의원은 다은의 맥을 짚으며 그렇게 말했다. 다은은 그 말을 알아듣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저 눈만 깜박였다. 서준은 매일 한 번씩 별채에 들렀다. 특별히 할 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아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첫날은 문 앞에서 시종에게 상태를 묻고 돌아갔다. 둘째 날은 문턱을 넘어 방 안까지 들어갔지만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고 나왔다. 그리고 그 두 번의 방문 사이, 서준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지.' 서준은 스스로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남의 사정에 이렇게까지 마음을 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 작고 마른 아이를 보면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저절로 별채 쪽으로 향했다. *** 다은은 서준이 들를 때마다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반쯤 가렸다. 경계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만 들려도 몸이 먼저 굳었다. 그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좋은 일로 문이 열린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이름이 뭐야." 서준이 세 번째로 방문한 날, 처음으로 물었다. "...다은이요." 짧은 대답이었다. 성은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에게 성이 있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유씨 가문에서는 늘 그냥 '다은'이라고만 불렸으니까. "나이는?" "열세 살이요." 서준은 잠시 다은을 바라봤다. 열세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아이는 지나치게 작고 말라 있었다. 손목은 서준의 두 손가락으로도 다 감쌀 수 있을 만큼 얇았고, 눈은 나이보다 훨씬 더 깊고 지쳐 보였다. 원래도 왜소한 체구인 듯했지만, 최근 몇 달간의 굶주림이 그 위에 더 깎아 낸 흔적이 뚜렷했다. "밥은 잘 먹었어?" 서준이 물었다. "...네." 다은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옆에 놓인 밥상은 절반도 비워지지 않은 채였다. 서준은 그걸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억지로 먹이려 든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럼, 다은아. 어디서 왔어?" 서준이 다시 물었다. 다은은 그 질문에 오래 침묵했다. 손끝으로 이불의 실밥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였다. 대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서준은 그 침묵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대신 방을 나서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뭔가 있구나.' 확신이 들었다. *** 서준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다음 날, 의원과 시종을 시켜 다은이 왔던 길 근처 마을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멀리 갈 필요 없다. 그 근처 마을들만 돌아보고 소문을 모아 와." 서준이 말했다. 시종은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왔다. 유씨 가문의 딸이 며칠 전 실종됐다는 소문이 근방에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정호라는 자가 딸을 찾는다고 여기저기 사람을 풀었다는데... 실제로는 별로 찾는 시늉도 안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시종이 조심스레 보고했다. "찾는 시늉만 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서준이 되물었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그 집 딸이 원래도 몸이 약해서 자주 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나흘째 코빼기도 안 비치는데, 그 집안에서는 크게 소란을 피우지도 않는다고요. 오히려 조용히 넘어가려는 눈치라던데..." 서준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찾는 시늉만 한다는 게 무슨 뜻이지.' 딸이 사라졌다면 부모라면 당연히 발이 닳도록 찾아 헤매야 할 텐데, 오히려 조용히 덮으려 한다는 건 이상했다. 마치 사라진 게 잘된 일이라는 것처럼. *** 그날 저녁, 서준은 다은의 몸에 남은 상처들을 다시 떠올렸다. 오래된 상처와 새 상처가 뒤섞여 있다던 의원의 말도 함께. 등에는 채찍질로 생긴 것으로 보이는 흉터가 여러 겹으로 겹쳐 있었고, 팔목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도 있었다. 의원은 그 상처들을 보며 낮게 혀를 찼다. "이 정도 상처면, 한두 번 맞은 게 아닙니다. 몇 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당한 상처로 보입니다."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서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별채로 향했다. 다은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이었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온갖 추측이 오갔다. 학대인지, 아니면 그저 방치인지, 혹은 둘 다인지. 하지만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서준의 발걸음은 잠시 멈춰졌다. 방 안에서 낮은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다은이 홀로 울고 있었다. 소리를 죽이려 애쓰는 듯, 흐느낌은 끊어질 듯 이어지다 다시 끊어졌다. 서준은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괜찮냐고 물어야 하는지, 아니면 조용히 자리를 비켜 줘야 하는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다. 결국 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 한편 한도현은 서재에서 유씨 가문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등불 아래 종이를 넘기는 손길이 점점 느려졌다. "유정호... 이 집이 이 아이를 입양했다는 기록이 있군." 한도현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아이의 생부모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어." 보고서에는 다은이 일곱 살 무렵 유씨 가문에 맡겨졌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 이전의 정보는 완전히 백지였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지워 버린 것처럼. 출생지도, 부모의 이름도, 어디서 왔는지도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한도현은 종이를 몇 번이나 뒤집어 보았다. 뒷면에도 앞면에도, 더 이상의 기록은 없었다. "보통 입양이라면 최소한 어디서 데려왔는지는 남기는 법인데." 한도현이 낮게 중얼거렸다. 관공서의 기록이란 원래 형식적이더라도 최소한의 흔적은 남기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이 아이의 경우는 마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처리되어 있었다. 한도현은 보고서를 덮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거,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 될 수도 있겠군." 서재 창밖으로 별채의 불빛이 아직 꺼지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에서 다은이 어떤 밤을 보내고 있는지, 한도현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흔들리는 불빛을 바라보며, 한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든 보고서를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감각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하게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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