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서은은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방 안을 채운 것은 오후의 미지근한 햇살과, 그 햇살마저도 삼켜버릴 듯한 무거운 정적이었다. 그녀의 방에 걸린 거울은 은으로 세공된 테두리를 두르고 있었는데, 넝쿨무늬로 정교하게 얽힌 그 화려한 장식이 오히려 안에 담긴 얼굴과 어울리지 않아 늘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마치 낡은 양피지에 금박을 입혀놓은 것처럼, 겉과 속이 서로를 부정하는 모양새였다.
거울 속에는 얼굴 전체에 크고 작은 혹이 돋아난, 피부가 녹색과 백색으로 얼룩진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뺨 위의 혹 하나를 조심스레 눌러보았지만, 그것은 익숙한 통증조차 주지 않을 만큼 오래된 것이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저 단단하게 굳어버린 살덩이의 감촉뿐이었고, 그 무감각함이 오히려 그녀를 더 서글프게 만들었다.
고블린 공작령녀.
사교계 사람들이 등 뒤에서, 때로는 대놓고 그녀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밤새 울었지만, 여섯 번의 파혼을 겪고 난 지금은 그 이름 앞에서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것이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부정한다고 해서 거울 속 얼굴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서은은 거울에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원의 장미들이 붉게 피어 있었지만, 그녀는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자신에게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남의 것이었고, 그녀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뿐이었으니까. 장미 넝쿨 사이로 정원사가 지나가며 흥얼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는데, 그 평화로운 선율조차 그녀의 방 안까지는 온전히 스며들지 못하는 듯했다.
어머니 이지선이 아침에 다녀갔던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새 혼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서은은 이미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결말을 알고 있었다. 상대가 어떤 가문이든, 어떤 사람이든, 결국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도망칠 것이라는 것을.
"이번엔 조금 다를 것 같구나." 이지선은 딸의 손을 잡으며 그렇게 말했었다. 그 손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서은은 그 온기 아래 숨은 조바심을 느낄 수 있었다. "상대가 먼저 청혼을 넣었다고 하는구나. 얼굴도 보지 않고서."
"얼굴도 보지 않고서요." 서은은 그 말을 그대로 되받으며 물었다. "그럼 나중에 실제로 마주하고 나면, 어머니.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지선은 그 물음에 잠시 말을 잃었고, 서은은 그 침묵이 이미 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은은 그 말을 들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얼굴도 보지 않고서, 라는 말이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만들어냈다. 얼굴을 보지 않은 채로 청혼했다는 것은, 결국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 더 크게 실망할 여지를 남겨둔 것에 불과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기대라는 것은 늘 그런 식으로 배신을 예비해두는 법이었으니까.
어차피 나는 결혼도, 행복도 오래전에 포기했으니까.
그녀는 열두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파혼을 겪었다. 그때는 상대 소년이 자신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그 비명 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소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뒷걸음질 치던 순간, 그 뒤로 넘어진 화병이 깨지는 소리까지도. 그 후로도 몇 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결과는 늘 비슷했다. 어떤 이는 예의를 갖춰 조용히 물러났고, 그럴 때면 오히려 그 정중함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어떤 이는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내며 자리를 떴는데, 세 번째 파혼 상대였던 자작가의 아들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가 마치 벌레라도 만진 것처럼 손수건으로 자기 손을 문질러 닦았었다. 그 모든 경험들이 쌓여, 서은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어떤 기대도 품지 않기로 결심했다.
기대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는다.
그 말은 그녀가 스스로에게 걸어둔 유일한 방어였고, 지금까지 그 방어는 제법 잘 작동해왔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서은은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손끝으로 얼굴 위의 혹을 하나씩 훑어 내리며, 그녀는 이 얼굴로 태어난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사실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세상은 그녀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고, 그저 결과만을 보고 그녀를 판단했으니까. 태어남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녀는 무엇을 선택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가, 곧 스스로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부질없는 상상은 늘 더 큰 허기만을 남기는 법이었다.
하녀 하나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아가씨, 사흘 후에 열릴 연회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작님께서 이번 정혼 발표를 성대하게 치르길 원하십니다."
"성대하게." 서은은 그 말을 나지막이 되뇌며 실소를 흘렸다.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파기될 혼사인데, 성대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가씨, 그런 말씀은…." 하녀는 다급히 입을 열었으나 이내 말을 삼켰다. 그녀의 얼굴에는 안타까움과 조심스러움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 이상의 말을 꺼낼 용기는 없어 보였다.
"드레스는 어떤 색으로 준비할까요." 하녀는 화제를 돌리듯 조심스레 물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서은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사람들의 눈은 드레스가 아니라 내 얼굴에 먼저 닿을 테니까."
하녀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정수리를 바라보며, 서은은 문득 이 하녀조차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 보길 꺼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익숙한 일이었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녀가 물러난 뒤, 서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정원의 장미 너머로, 하늘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노을은 마치 누군가 하늘 전체에 피를 흩뿌려놓은 것처럼 짙었고, 그 빛깔이 방 안까지 스며들어 그녀의 얼룩진 뺨을 한층 더 기이하게 물들였다. 그녀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사흘 뒤의 연회에서 벌어질 일들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새로운 상대가 자신을 보고 놀라 굳어버릴 것이고, 사람들은 또 다시 등 뒤에서 수군거릴 것이며, 결국 이 혼사도 앞선 여섯 번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일곱 번째 파혼이 되겠지. 이번에는 몇 번째 문장에서 상대가 도망칠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서은은 문득 어머니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얼굴도 보지 않고서 청혼했다는 상대.
그 말이 왜 그렇게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인지, 그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이전의 여섯 번의 혼담에서는 늘 상대 쪽에서 초상화를 요구했고, 그 초상화가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파혼의 조짐이 시작되었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상대는 초상화조차 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은은 알 수 없었으나, 다만 아주 작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만큼 희미한 무언가가 그녀의 가슴 한구석에서 조용히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 서은은 애써 모른 척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정원의 장미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과는 무관하게 서은의 얼굴은 여전히 얼룩져 있었다. 그리고 사흘 뒤, 그 얼룩진 얼굴 앞에 서게 될 낯선 얼굴을 상상하며, 그녀는 스스로도 알지 못할 불안과 기대 사이에서 오래도록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