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연회장은 황금빛 샹들리에 불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 화려함 속에서 귀족들의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와 낮은 웅얼거림이 뒤섞여 공간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벽을 따라 늘어선 은쟁반 위의 크리스털 잔들이 불빛을 되받아 반짝였고, 그 사이로 흐르는 현악 선율은 우아했지만 어딘가 공허하게 울렸다. 서은은 부모의 곁에 서서 그 소음을 견디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들이 하나같이 호기심과 조소가 뒤섞인 것임을 그녀는 이미 익숙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여섯 번. 그녀는 속으로 되짚었다. 여섯 번의 파혼이 남긴 것은 상처가 아니라 이 익숙함이었다.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닿는 순간, 그 뒤에 이어질 반응을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되어버린 것. 그것이 오히려 더 서글픈 일이라는 걸 서은은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연회장 입구에서 낮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돌아갔고, 웅얼거림이 순간 잦아들었다가 곧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저 사람이 강자작가의 아들이라던가."
"상인의 자식이 감히 공작가 연회에 저리 당당하게 들어오다니."
"소문으로는 아가씨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청혼서를 넣었다더군요. 대체 무슨 속셈인지."
그 말에 몇몇 부인들이 부채 뒤에서 웃음소리를 삼켰고, 그 웃음소리는 유리잔이 부딪는 소리와 뒤섞여 연회장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도윤은 그 시선들을 하나하나 느끼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검은 예복을 단정하게 갈무리한 채, 등을 곧게 세우고 정면을 응시하며 걸어 들어왔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냥터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짐승처럼 보였지만, 그 눈빛에는 두려움 대신 흔들림 없는 결의만이 담겨 있었다. 걸음마다 시선이 그의 뒤를 쫓았으나, 그는 단 한 번도 곁눈질하지 않았다. 마치 이 연회장 안의 모든 소리가 그와는 아무 상관 없는 배경음인 듯, 그의 시선은 오직 한 곳, 서은을 향해서만 일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서은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녀는 이미 이 순간을, 여섯 번이나 겪었던 그 순간을 예감하고 있었다. 상대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 굳어버리는 순간, 그 짧은 정지 후에 이어질 비명 혹은 침묵.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미 그 뒤에 이어질 대사까지 외우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군요.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도윤은 그녀의 앞에 멈춰 서서,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의 눈빛에는 놀람도, 혐오도 없었다. 다만 무언가 오래도록 찾아왔던 것을 마침내 발견한 사람의 눈빛, 그런 것이 서은의 얼굴 위에서 조용히 머물렀다. 서은은 그 눈빛의 낯섦에 오히려 당황했다. 익숙한 반응이 오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선우서은 아가씨." 도윤은 한쪽 무릎을 살짝 굽히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강도윤이라 합니다."
연회장 안의 수군거림이 다시 커졌다. 몇몇 귀족들은 부채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았고, 그중 하나는 옆 사람에게 낮게 속삭였다. "저 얼굴을 보고도 저리 태연할 수 있는 건, 필시 재산에 눈이 먼 것이겠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지요."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공작가의 이름을 얻고 싶은 상인의 자식이니, 저 정도 각오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은은 그 속삭임들을 놓치지 않았다. 귀에 익은 조소의 결을 그녀는 손끝의 감각처럼 정확히 구분해낼 수 있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물러서려 했지만, 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이 순간을."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연회장 안 사람들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했다. "얼굴을 보지 않고 청혼을 넣었다는 이유로 다들 저를 의심하시더군요. 하지만 저는 아가씨의 얼굴이 아니라, 아가씨가 견뎌온 시간을 존중하고 싶었습니다."
순간 연회장 안의 웅얼거림이 뚝 끊겼다. 부채 뒤에서 새어 나오던 웃음소리도, 유리잔이 부딪는 소리마저도 잠시 멈춘 듯했다. 그 침묵은 실체가 있는 것처럼 연회장 안을 가득 채웠고,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조소가 아니라 낯선 당혹감을 담은 채 두 사람에게 고정되었다.
서은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낯선 감정이 스쳤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니 애초에 느껴본 적 없었던 종류의 기대감이었다. 그녀는 그 감정의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가슴 안쪽이 조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은, 왜 도망치지 않는 걸까.
멀지 않은 곳에서 이지선 공작부인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부채를 살짝 접으며 옆에 서 있던 시녀에게 낮게 속삭였다. "저 청년, 생각보다 흥미롭구나."
"부인, 하지만 저리 대놓고 예법을 무시하며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조금 무례하지 않습니까?"
"무례?" 이지선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딸과 도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랜 시간 딸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보지 못한 어미의 것이었다. "내 딸의 눈이 저렇게 빛나는 걸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나."
그 말에 시녀는 더 이상 답하지 못했고, 이지선은 부채를 다시 펼쳐 얼굴 반쪽을 가린 채 두 사람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 순간, 서은의 뺨에 옅은 홍조가 스쳤다. 그녀는 그것을 감추려 고개를 숙였지만, 도윤은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고, 그의 입가에도 조심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는 승리감이나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마치 오래 앓던 사람이 처음으로 통증 없는 숨을 내쉬었을 때 짓는 표정과 닮아 있었다.
연회장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처음의 조소와 수군거림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몇몇 귀족들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함께 어렴풋한 인정이 섞여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낮게 감탄사를 흘렸고, 누군가는 옆 사람에게 귓속말로 그의 가문의 재력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지선 공작부인이 다가와 도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자, 그 대화를 지켜보던 이들 사이에서는 이 혼담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술렁임이 퍼져나갔다.
"강도윤 군이라 했나." 이지선이 부채 끝으로 살짝 그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 말을 이런 자리에서 하다니, 겁이 없구나."
"부인 앞이라 오히려 더 솔직해질 수 있었습니다." 도윤은 담담하게 답했다. "숨길수록 의심만 커지는 법이니까요."
이지선은 그 대답에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그녀의 평소 절제된 태도와는 다르게 조금은 즐거움이 섞여 있었고, 주변 귀족들은 그 웃음의 의미를 해석하려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서은은 그 모든 변화를 느끼며, 처음으로 이 연회장 안에서 자신이 조소의 대상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보이고 있다는 낯선 감각에 휩싸였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위험한 것인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적어도 도윤의 곁에 서 있는 이 순간만큼은 숨이 막히지 않았다. 그녀는 오랜만에 어깨를 조금 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짧은 안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연회장 저편,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걸어오는 낮고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다른 발소리들과는 확연히 달랐는데, 마치 바닥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낮게 울리는 듯한 진동을 담고 있었다.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웅얼거림이 하나둘 잦아들었고, 방금까지 두 사람을 향해 있던 시선들이 슬며시 그 발소리의 주인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서은은 그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서늘한 감각이 이미 그녀에게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선우태호였다.
공작의 눈빛은 딸과 도윤을 번갈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 담긴 것은 조금 전 이지선이 보였던 흥미로움과는 전혀 다른, 차갑게 얼어붙은 냉기였다. 그의 턱은 단단하게 조여져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변 귀족들이 슬며시 몸을 비켜 길을 내주었다. 그가 두 사람을 향해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 흐르던 온기를 얼려버리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