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곡소리가 궁 전체를 뒤덮었다.
국왕의 붕어 소식은 별궁 담장 안까지 스며들어 왔다. 담장 밖에서 들려오는 곡소리는 낮고 길게 이어졌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슬픔보다 먼저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는 이틀 동안 문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인질인 내가 함부로 국상 자리에 나설 처지가 아니라는 걸 궁녀들의 눈빛이 매번 상기시켜주었다.
궁녀들은 문을 열 때마다 내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내가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막아야 할지 미리 고민하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국상이라는 게 어떤 자리인지, 대현국 공주라는 신분으로 그 앞에 서면 어떤 시선을 받게 될지는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이틀 내내 창밖만 바라보며 밥알을 씹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건지 마는 건지도 모를 정도였다. 이헌은, 아니, 이제는 국왕이 될 그는 상중에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 정신을 차릴 여유가 어디 있겠나. 그런데도 나는 그 사실이 서운했다. 서운해할 자격이 있나 싶어서 스스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즉위식은 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왕태자였던 이헌이 국왕으로 즉위하는 자리, 궁정 전체가 모이는 자리에 나 같은 존재조차 형식적으로는 초대받아야 했다. 대현국 공주라는 신분이 그날만큼은 쓸모가 있었다. 평소엔 짐짝처럼 취급받다가 이런 날에만 명함이 되는 게 우습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 초대장을 받았다.
궁녀들이 나를 단장시키는 손길에는 평소보다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검은 예복. 화려한 무늬 하나 없이 그저 짙은 색으로만 온몸을 감쌌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설 정도로 딱딱했다. 웃지도, 울지도 않은 얼굴. 그게 오늘 내가 지어야 할 유일한 표정이었다.
대전 한쪽 구석에 섰다. 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다. 그저 관찰자로 이 순간을 지나가고 싶었다. 대전 안은 향냄비에서 올라오는 향 냄새와 사람들의 낮은 숨소리로 가득했다. 다들 슬픔을 억누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딘가에는 새 국왕에 대한 기대와 계산이 뒤섞여 있는 눈빛들도 보였다. 궁이란 곳은 늘 이런 식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다음 권력의 향방을 재는 곳.
북소리가 울리고, 대전 문이 열렸다.
쿵.
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대전 안의 모든 숨소리가 한순간 멈췄다.
이헌이 걸어 들어왔다. 검은 곤룡포를 입은 그의 모습은 낯설었다. 늘 나를 부드럽게 바라보던 눈빛이 오늘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걸음걸이도 달랐다. 예전의 그는 걸을 때 어딘가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한 발짝 한 발짝이 무게를 짊어진 듯 무거웠다. 저 자리가 그를 저렇게 바꾼 걸까, 아니면 원래 저런 얼굴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나는 대답을 알 수 없었다.
대소신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나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전하께 만세.”
외침이 대전을 가득 채웠다. 그 소리는 파도처럼 몇 번이고 반복되어 대전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다. 그 순간 나는 이헌이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갔다는 걸 실감했다. 이제 그는 왕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존재.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 눈앞에서 그 장면을 직접 보는 건 또 다른 충격이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조여왔다. 이별을 실감하는 감각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다.
즉위식이 끝나고 연회가 이어졌다. 나는 구석 자리에서 물러나 있었는데, 그때 시야에 명혜왕후가 들어왔다.
왕태후의 자리에서 그녀는 화려한 예복을 입고 있었지만 표정은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아들을 전쟁에서 잃고, 남편을 병으로 잃은 여인. 두 번의 죽음을 짊어진 얼굴이 저런 걸까. 나는 그 얼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 시선이 대전을 훑다가 나에게 멈췄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녀가 천천히 걸어왔다. 걸음마다 예복 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주변의 대소신료들이 알아서 길을 터주었다. 마치 물살이 갈라지듯, 사람들은 그녀의 걸음을 피해 조용히 물러섰다.
“대현국의 공주가 여기 있었구나.”
목소리에 냉기가 서려 있었다. 그 한마디에 주변 온도가 몇 도는 떨어진 것 같았다.
“새 국왕의 즉위를 축하드립니다, 왕태후 마마.”
나는 최대한 격식을 갖춰 예를 올렸다.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애써 힘을 주었다.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웃음이 아니었다. 비웃음에 가까웠다.
“축하라니. 네가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주변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모였다.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누군가는 안타까운 눈으로, 누군가는 흥미로운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연극 무대 위에 세워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핏줄이 감히 여기 서서 국상을 논하다니.”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칼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대현국이 이 나라와 전쟁을 벌였고, 나는 그 결과로 이곳에 인질로 보내진 존재였으니까. 사실을 들이대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왕후 마마.”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헌이었다. 언제 왔는지 그가 우리 사이에 서 있었다. 그의 등장에 주변 공기가 다시 한번 얼어붙었다.
“오늘은 즉위를 경축하는 자리입니다.”
“전하.”
명혜왕후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흔들렸다. 아들을 바라보는 눈에는 원망과 애틋함이 뒤섞여 있었다.
“이 아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불경입니다.”
“그 아이는 제가 초대한 손님입니다.”
이헌의 대답이 짧고 명확했다. 그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명혜왕후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가, 이내 무언가를 억누르듯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손끝이 옷자락을 꽉 움켜쥐는 게 보였다.
“……알겠, 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말을 끊으며 자리를 떴다. 뒷모습마저 서늘했다. 주변의 시선들이 서서히 흩어졌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뒷모습이 완전히 물러난 게 아니라는 것을. 오늘의 일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이헌이 나를 돌아보았다.
“괜찮아?”
“네.”
괜찮지 않았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 나라에 온 이후로 나는 늘 이 대답만 반복해온 것 같았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는 법. 그게 인질로서 내가 배운 유일한 생존 기술이었다.
“오늘은 조용히 물러나 있어. 내가 나중에 따로 보러 갈게.”
“네, 전하.”
호칭이 바뀌었다는 걸 그도 나도 동시에 느꼈다. 어색한 정적이 잠시 흘렀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를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짧은 차이가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편하게 불러도 돼.”
그가 낮게 덧붙였지만, 나는 이미 그 거리감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왕과 인질. 오늘부로 우리 사이엔 새로운 이름이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그 이름은 예전의 어떤 호칭보다 무겁고 단단해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연회장을 빠져나오는 길, 나는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등 뒤로 여전히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대현국 공주, 인질, 전하가 초대한 손님. 각기 다른 말들이 나를 두고 오갔지만 정작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명혜왕후의 시선이 여전히 어딘가에서 나를 좇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그녀의 눈이 아직도 내 뒷목에 박혀 있는 것처럼, 서늘한 감각이 계속해서 나를 따라왔다. 오늘 그녀가 물러난 것은 이헌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을 뿐, 결코 마음을 접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별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