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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궁정에서 열린 작은 연회는 두 번째 만남의 자리였는데, 첫 만남과는 달리 이번에는 여러 귀족 자제들이 함께한 공식적인 사교의 장이어서 서아는 그 규모만으로도 긴장이 되었다. 높은 천장에는 촛불을 켠 샹들리에가 몇 개나 매달려 있었고, 그 불빛이 대리석 바닥에 부서져 내리며 방 전체를 은은한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는데, 어딘가에서는 현악기 소리가 낮게 흐르고 있어 마치 오래된 영상 속 세트장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아는 할머니의 당부대로 조용히 벽 쪽에 서서 상황을 관찰했는데,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영애들 사이에서 이현우는 여전히 무대 중앙에 서 있는 사람처럼 존재감이 도드라졌다. 그는 굳이 나서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저건 태생이 다른 사람이구나.' 서아는 그 생각을 하며 자신이 입고 있는 드레스의 끈을 슬쩍 매만졌다. 할머니가 골라준 옷이었는데,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한 색감이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해주어 다행이라 여겼다. 주변의 영애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대부분은 이현우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분이 오늘도 저렇게 서 계시네요." "누구와도 춤을 추지 않으신다더군요." 그 말을 듣던 서아는 괜히 마음이 조여드는 것 같았지만, 곧 스스로도 어이없어져서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연회의 흐름이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 이웃한 소국의 사절로 온 젊은 귀공자 하나가 서아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갈색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청년이었는데, 걸음걸이에서부터 예의를 갖춘 사람 특유의 절제된 태도가 느껴졌다. 그가 서아 앞에 멈춰 서서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영애, 다음 춤을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그의 말투는 상냥했고 표정에도 특별한 의도가 없어 보였는데, 서아는 그저 예의상 손을 마주 잡으려 손끝을 들었을 뿐이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누구와도 얽히고 싶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서 완전히 사람들과 단절되어 있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 손이 채 닿기도 전에, 그림자 하나가 두 사람 사이로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현우였다. 그는 언제 다가왔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존재감으로 서아와 귀공자 사이에 몸을 세웠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그쪽으로 쏠렸는데, 몇몇은 숨죽인 채 이 상황을 지켜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현우는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춤은 내가 신청했소."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는데, 서아는 방금 전까지 이현우와 어떤 약속도 나눈 적이 없었다. '언제 그런 약속을.' 서아는 속으로 반문했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자리의 누구도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젊은 귀공자는 곧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그의 얼굴에 잠깐 스쳐 지나간 당혹감을 서아는 놓치지 않았는데, 자신도 지금 그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서아는 그 순간, 이현우의 손이 자신의 팔꿈치를 감싸는 것을 느꼈는데, 강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놓아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실려 있는 손길이었다. 손의 온도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지만, 그 접촉만으로도 팔 전체에 이상한 긴장이 퍼지는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을 무도장 중앙으로 이끄는 동안, 서아는 주변의 시선이 순식간에 두 사람에게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는 호기심과 놀라움, 그리고 몇몇은 노골적인 의심까지 섞여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모든 시선의 무게가 서아의 등을 짓누르는 듯했다. "방금 그건." 서아가 말을 꺼내려 하자, 이현우가 낮게 대답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냉정했지만, 서아는 그 냉정함 아래에서 무언가 다른 것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마치 자신의 소유물을 확인하듯,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듯, 그는 서아의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춤의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음악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두 사람의 발이 대리석 바닥을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조차 서아에게는 낯설게 크게 들렸다. 그 거리가 서아에게는 지나치게 가까워서 심장이 낯선 리듬으로 뛰기 시작했고, 이현우의 옷깃에서 옅게 풍기는 나무 향 같은 냄새가 코끝을 스칠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이건 다정함이 아니라.' 서아는 그 생각을 끝맺지 못했는데, 춤이 끝날 때까지 이현우가 단 한 번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고, 마치 서아가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눈빛 같았다. 그 눈빛은 아버지가 초상화를 바라보던 그 눈빛과 어딘가 닮아 있어서, 서아는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늘 그런 눈으로 벽에 걸린 그림 하나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는데, 그 그림 속 여인이 지금 영지 별당에 갇혀 있는 한소연이라는 것을 서아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시선이 사랑이었다면, 그 끝은 지금 아버지 곁에 없는 여인과, 밤마다 홀로 술잔을 비우는 아버지로 남았다. 춤이 끝나고 이현우가 손을 놓았을 때, 서아는 잠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낮은 웅성거림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벌써 확신에 가까운 소문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듯했다. '이게 무슨 소문거리가 될까.' 서아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정작 자신조차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연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서아는 할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마차 바퀴가 돌길 위를 구르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밤공기가 창틈으로 스며들었는데, 정혜원은 별다른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서아는 할머니 역시 오늘의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전하께서는." 서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자, 정혜원이 짧게 대답했다. "단순한 다정함이 아니다." 그 말이 위로인지 경고인지 서아는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할머니의 목소리에 어떤 우려가 섞여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껴졌는데, 정혜원은 그 이상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서아는 더 묻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옆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어떤 대답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방으로 돌아온 서아는 침대에 누워 오늘 이현우가 보여준 그 단호한 손길을 다시 떠올렸다. 다른 남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그 순간의 그는, 자신에게 다정하려던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지키려던 것처럼 보였다. 마치 값비싼 유리 인형을 누가 손대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감싸 안는 손길처럼. '그게 사랑이라면, 나는 어떻게 그걸 받아야 하는 걸까.' 그 물음 앞에서 서아는 다시 아버지의 그 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한소연을 향한 아버지의 열정도 처음에는 저런 종류의 확신과 다정함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지금, 영지 별당에 격리된 한 여자와, 밤마다 술잔을 비우는 한 남자로 남아 있었다. 서아는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이현우의 그 눈빛이 자신에게도 같은 결말을 가져올까 봐 무서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 무서움 속에서도 오늘 그의 손이 자신의 허리에 닿았을 때 느꼈던 그 낯선 온기를 완전히 지워낼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밤이 깊어가도록 서아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천장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뒤척이다가, 문득 오늘 이현우가 자신을 이끌던 그 확신에 찬 걸음이 떠올랐는데, 그 걸음에는 망설임이라는 것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저 사람은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 답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서아를 가장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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