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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이튿날 아침, 하은은 여느 때처럼 가족들과 함께 식사 자리에 앉았으나, 그 자리의 분위기는 여느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서글펐다. 식탁 위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떨어져 은식기들을 반짝이게 만들었고, 그 반짝임이 지나치게 눈부셔서 하은은 오히려 눈을 찌푸렸는데, 이 저택의 모든 것이 그러했다. 겉으로는 완벽하게 정갈했고, 그 안에는 서서히 곪아가는 것들이 있었다. 선우진혁은 신문을 넘기며 식사를 하고 있었고, 시선은 단 한 번도 아내 쪽을 향하지 않았으며, 그 무심함은 오늘 하루의 일과 중 하나를 처리하는 사람의 태도와 다를 바 없었다. 검게 젖은 머리카락 아래로 드리운 짙은 눈썹과, 신문의 활자를 따라가는 차가운 눈동자는 이 집안의 주인다운 위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 위엄이 아내에게는 단 한 조각도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강서윤은 그런 남편의 얼굴을 흘끔거리다가도 이내 시선을 접시로 떨어뜨리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포크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하은은 놓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직도 저 사람을……' 그 뒷말을 잇지 못한 채 하은은 조용히 수프를 떠 넘겼다. "오늘 저녁에 후작 부인의 모임이 있다고 들었소." 진혁이 신문을 넘기며 무심하게 던진 말에 강서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는데, 그 밝아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하은은 마음이 아렸다. 마치 오랫동안 물기 없이 말라 있던 꽃이 단 한 방울의 물에도 순식간에 고개를 드는 것 같아서, 하은은 그 반응이 반가움보다는 오히려 서글픔으로 다가왔다. "네, 저도 참석할 예정이에요. 당신도 오시나요?" 목소리에 실린 기대감이 너무 선명해서, 옆에서 듣는 하은조차 숨을 죽이고 진혁의 대답을 기다릴 정도였다. "난 그 시간에 다른 약속이 있소." 짧은 대답이었고, 강서윤은 그 짧음 속에 실린 냉기를 애써 못 본 척했다. 입가에는 여전히 웃음이 걸려 있었으나, 그 웃음의 끝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하은은 오랜 시간 이 여자를 곁에서 지켜본 딸의 눈으로 알아챘다. "그럼…… 다녀와서 저녁이라도 함께……" "늦을 것 같으니 기다리지 마시오." 대화는 그렇게 끝났고, 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문을 접으며 하은을 향해서는 짧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을 뿐, 아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이 걸음마다 완벽한 절제를 유지하고 있어서, 마치 아무런 감정도 남기지 않고 무대를 떠나는 배우처럼 보였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고, 강서윤은 그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문을 바라보다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하은에게 시선을 돌렸다. "밥 다 먹었니, 하은아?" 그 웃음이 너무 능숙해서 하은은 오히려 소름이 돋았고, '저건 웃는 게 아니라 참는 거야'라는 생각이 스쳤다. 얼마나 오랫동안 저런 웃음을 연습해왔을까, 얼마나 많은 아침을 저런 얼굴로 견뎌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하은은 자신도 모르게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반드시 저 웃음을 진짜로 만들어드릴 거야.' 그 다짐은 마음속에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 집에 온 이후로 매일 아침 되풀이해온 다짐이었으나, 오늘은 그 다짐이 유독 선명하게 가슴을 찔렀다. 식사가 끝난 뒤, 하은은 곧장 별채로 향했다. 별채로 가는 복도는 본채보다 훨씬 어둡고 조용했는데, 그 어둠과 조용함이 그곳에 사는 아이의 처지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아서 하은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곳에는 이 집안의 또 다른 아이, 여덟 살배기 선우도현이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도현은 원래 남쪽의 다른 백작가에서 태어났으나, '불운한 체질'이라는 이유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가에서 버려졌고, 후사가 필요했던 선우 후작가에 양자로 들어온 아이였다. 이 저택에서 그는 표면적으로는 후작의 아들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누구도 진심으로 반기지 않는 존재였다. 하인들조차 그를 대할 때는 필요 이상의 격식을 차렸는데, 그 격식이 오히려 거리감을 만든다는 것을, 여덟 살짜리 아이가 모를 리 없었다. 게임 속에서 이 아이는 훗날 성장하여 여주인공을 공략할 수 있는 서브 남주 캐릭터였다는 사실을, 하은은 물론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설정이 아니라 이 아이가 이 저택에서 유일하게 어머니의 상태를 눈치채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이 냉랭한 집안에서 유일하게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하은에게는 그 어떤 설정보다 소중했다. "도현아." 하은이 부르자 도현은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는데,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한 눈빛이 하은을 마주했다. 그 눈빛은 여덟 살짜리 아이의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의 냉정함을 알아버린 사람의 것에 더 가까웠다. "어머니 일로 왔구나." 먼저 짐작해 말하는 그 태도에 하은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고, '역시 이 아이라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 아이에게만은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이 하은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도현은 아마 짐작조차 못 할 것이었다. "응. 부탁이 있어." "들어보고." 도현의 대답은 짧았지만 거절의 뜻은 아니었고, 하은은 그 옆에 바싹 다가앉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책장을 넘기던 도현의 손이 자연스럽게 멈추었고, 그 작은 손가락들이 책 위에서 조용히 접혔다.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미워하게 만들고 싶은 게 아니야. 오히려 계속 좋아하시게 만들고 싶어. 다만 그 방식을……" "바꾸고 싶다는 거지." 도현이 말을 가로채듯 정리해 주었고, 하은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이 집에서 눈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 후작님이 부인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도현의 목소리에는 냉소가 아니라 오히려 씁쓸함이 배어 있었는데, 그 씁쓸함은 아마도 자신 역시 이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자각에서 오는 것이었으리라고 하은은 짐작했다. 도현은 잠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가, 다시 하은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부인께서 매일 아침 저 문을 바라보시는 거, 나도 알아. 저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보고 계시는 거." 그 말에 하은은 숨이 턱 막혔다. 자신만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장면을, 이 어린아이가 이미 몇 번이나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 집의 냉랭함이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이 아이도 나만큼이나, 이 집에서 위태로운 존재구나.' 그런 생각에 이르자 하은은 도현의 손을 슬쩍 잡았고, 도현은 그 손을 뿌리치지 않은 채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내가 뭘 해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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