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결혼식 날, 나는 울지 않았다.
대붕국 사신단이 준비한 마차에 오르면서도, 설란국의 성문이 점점 작아지는 걸 바라보면서도 그랬다. 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왕비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왕비는 흔들리지 않는다.
몸에 새겨진 그 말을 되새기며 나는 마차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있었다. 설란국의 산등성이가 낮아지고, 대붕국의 국경을 알리는 표지석이 지나가고, 풍경이 완전히 낯설어질 때까지도 나는 눈을 깜빡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사흘 밤낮을 달리는 여정이었다. 마차는 흔들렸고, 나는 그 흔들림에 맞춰 속으로 숫자를 세곤 했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세다 보면 눈물이 고일 틈이 없었다.
"왕비마님, 이것 좀 드세요."
소영이 말린 과일을 내밀었다. 설란국에서부터 챙겨 온 것이었다.
"됐어. 너 먹어."
"저는 됐어요. 마님 드시라고 챙긴 거예요."
나는 결국 그걸 받아 씹었다. 시고 달았다. 이상하게 그 맛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삼켰다. 왕비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마차가 대붕국 왕궁 앞에 멈춰 섰을 때, 나는 처음으로 흔들렸다. 성벽이 너무 높았다. 설란국 왕궁의 세 배는 되어 보였다. 성벽 위로 깃발이 몇 겹이나 겹쳐 걸려 있었는데, 그 숫자만으로도 이 나라가 얼마나 거대한지 짐작이 갔다.
"저게 다 대붕국 사람들이에요?"
내 옆에 앉은 박소영이 창밖을 내다보며 입을 벌렸다. 소영은 나보다 한 살 어린 내 전속 시녀였는데, 원래는 설란국 궁에 남을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따라나섰다.
"왕비마님 시집가시는데 저 혼자 남으면 뭐 해요."
그렇게 말하며 웃던 게 어제 같은데, 지금은 나보다 더 얼어 있었다. 소영의 손이 내 손을 슬며시 붙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나도 마찬가지였겠지.
"나도 처음 보는 거야. 너무 놀라지 마."
"놀라지 말라고 하시면서 마님 손도 떨리시는데요."
들켰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마차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붉은 예복을 입은 관료들, 갑옷을 갖춰 입은 기사들, 그 뒤로 늘어선 시녀들까지. 전부 나를 향해 예를 갖췄다. 그 광경이 낯설어서, 나는 잠깐 마차 계단에서 발을 헛디딜 뻔했다. 소영이 재빨리 팔을 붙잡아 줘서 겨우 넘어지지 않았다. 첫날부터 넘어졌다면 얼마나 우스운 소문이 돌았을까. 그런 생각이 스치자 오히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중 가장 앞에 선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왕비마님을 뵙습니다. 재상 윤태호입니다."
엄격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눈매가 날카로웠고,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표정 어딘가에 온화함이 섞여 있었다. 뭐지, 저 눈빛은. 적대적이지도, 형식적이지도 않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을 보는 듯한, 그런 눈이었다.
"이서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속으로는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태호 공작 뒤로 또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은발에 회색 눈,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청년이었다. 나를 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다. 마치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윤재하입니다."
그게 끝이었다. 예를 갖추긴 했지만, 목소리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대체 나한테 뭘 그렇게 못마땅해하는 거지. 만난 지 십 초도 안 됐는데. 태호 공작과 무슨 관계인지도 소개해 주지 않아서, 나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들일까. 조카일까. 표정은 완전히 다른데 눈매는 어딘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왕비마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다행히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 냉기를 밀어냈다. 시녀장 홍은주였다. 자리를 안내하는 손짓이 무척 정중했고, 표정에는 꾸밈없는 친절함이 묻어났다.
"긴 여정에 힘드셨겠어요. 처소는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꾸며 두었으니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그래, 이 사람은 적어도 편이구나. 나는 조금 안심하며 은주를 따라 걸었다. 걸음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서, 뒤따르는 내가 편하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런 작은 것에서 사람 됨됨이가 드러나는 법이지.
걷는 동안 기사 한 무리가 뒤따랐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청년이 있었다. 금발에 초록빛 눈동자,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몸놀림 하나하나가 절도 있었다. 걸음걸이만 봐도 오랫동안 몸을 다스려 온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호위 기사장, 서한결입니다."
그가 짧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시선조차 나에게 오래 머물지 않고 곧바로 정면을 향했다.
"제 아들입니다."
뒤따라온 중년의 남자가 웃으며 덧붙였다. 기사단장 서도후 후작이었다. 인상이 아들과는 딴판으로 사람 좋아 보였다.
"말이 없는 아이지만, 실력은 확실합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넓은 궁에서 적어도 셋은 내 편인 것 같았다. 태호 공작, 은주, 그리고 도후 후작.
반대로 재하는 확실히 아니었고. 한결은 아직 어느 쪽인지도 모르겠고.
그날 밤, 나는 처소에 앉아 창밖으로 낯선 궁의 지붕들을 바라보았다. 겹겹이 늘어선 기와가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났다. 설란국 궁과는 지붕 모양부터 달랐다. 처마 끝이 훨씬 날카롭게 치켜 올라가 있어서, 마치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였다.
소영이 옆에서 짐을 정리하며 계속 나를 살폈다.
"괜찮으세요?"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는데, 나는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마님, 저 아까 그 재하라는 분 말이에요. 눈빛이 진짜 이상했어요. 마님한테 무슨 원한 있는 사람처럼."
"나도 모르겠어. 처음 봤는데."
"혹시 마님 오시는 걸 반대했던 파벌 사람 아니에요?"
그럴듯한 얘기였다. 나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대붕국 왕실에도 나를 반기지 않는 세력이 있을 거라는 건 이미 예상했으니까.
"모르겠어. 일단은 자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왕비가 됐다. 대붕국의, 이 거대한 나라의 왕비.
남편은, 지금 어디 있을까.
결혼식 날에도 도현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예식이 워낙 형식적으로 진행됐고, 그는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을 뿐이다. 5년 전 그 사람과 지금의 그 사람이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서린아, 너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그날, 열일곱 살의 도현이 나무 그늘 아래서 그렇게 물었었다. 열네 살의 나는 뭐라고 대답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웃었던 얼굴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지금의 그 딱딱한 얼굴과는 전혀 다른, 그런 웃음이었다.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열네 살의 나, 열일곱 살의 그.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아니, 어쩌면 알았어도 달라질 건 없었을 거다.
생각에 잠긴 사이,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걸음. 하나가 아니라 여러 명.
소영이 벌떡 일어나 문가로 다가갔다.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등이 곧게 펴졌다. 왕비는 흔들리지 않는다, 라는 말이 다시 머릿속을 스쳤다.
"누구세요?"
대답은 없었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문 바로 앞에서 멈췄다. 소영이 나를 돌아봤다. 나도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이 시간에 누가.
대신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자리에, 한도현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