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제가 전쟁광에게 시집갑니다

5화

혼담이 성사된 지 한 달 만에, 유겸과 이서연은 처음으로 같은 자리에 서게 되었다. 탐라국과 쌍인제국의 중간 지점, 오래전부터 두 나라의 사신들이 협상을 벌일 때마다 이용해온 항구 도시의 회담청이 그 장소였는데, 이곳 사람들은 이 건물을 두고 '결정이 내려지는 곳'이라 불렀다. 실제로 지난 백 년간 이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조약과 혼약이 맺어졌는지 아는 이는 드물었으나, 오늘 이 자리가 그 목록에 또 하나의 이름을 더하리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양국의 대신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치러지는 상견례라는 형식이 두 사람에게는 각기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이서연에게는 탑 밖에서 처음으로 맞는 공식 석상이었고, 유겸에게는 3개월 안에 다시 떠나야 할 전쟁 사이에 억지로 끼워 넣은 낯선 의무였다. 회담청은 항구를 그대로 내려다보는 이층 건물로, 창밖으로는 정박한 함선들의 돛대가 숲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 창가에 자리한 등불들이 낮인데도 켜져 있었는데, 바다 안개가 짙어 실내까지 어스름이 스며드는 계절이었기 때문이다. 대신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부채로 얼굴을 가리거나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이 뻔한 정략을 관망하고 있었고, 그 무료한 시선들 사이로 두 주인공이 들어섰다. 회담청에 들어선 유겸을 처음 본 순간, 이서연은 소문과 실제 사이의 간극을 곧바로 느꼈다. 검은 머리와 진주색 눈, 전장의 흉터가 남은 손—혈욕의 악귀라는 별명에 걸맞게 험악한 인상이었으나, 그 눈빛에는 소문이 말하던 광기 대신 오히려 지친 무심함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적진 하나를 통째로 불태우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즐겨 했으나, 지금 이서연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저 오래 걸어온 사람처럼 어깨가 무거워 보일 뿐이었다. 이서연은 그 간극을 놓치지 않고 속으로 새겨두었다. 소문이 만든 괴물과 실제 인물 사이의 거리,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딛고 설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었다. 괴물이라 불리는 자는 다루기 어렵지만, 지친 사람은 다루기 쉽다. 이서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유겸 역시 이서연을 마주하고는 잠시 말을 잃었다. 병약하다 들었던 공주는 예상보다 작았지만, 그 청록빛 눈은 빛을 따라 무지개처럼 어른거리며 소문 그대로 신비로웠는데, 그보다 더 그를 멈추게 한 것은 그 눈에 담긴 두려움의 부재였다. 열다섯의 나이에, 전쟁광이라 불리는 남자 앞에서 이토록 태연한 표정을 짓는 사람을 그는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마주한 사람들은 대개 두 부류였다. 그의 이름만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자들과, 억지로 태연한 척하며 손끝만 떨던 자들. 이서연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가 무섭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의 시선은 유겸의 얼굴이 아니라 그 눈 뒤에 있는 무언가를 읽으려는 듯 차분히 머물러 있었다.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서연이 먼저 예를 갖추며 입을 열었다. 그 말투는 지나치게 유순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그녀가 계산해 둔 첫수였다. 유순함으로 상대를 안심시키는 것, 그것은 탑 안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가 익힌 몇 안 되는 무기 중 하나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유겸이 짧게 답했다. 화려한 언사도, 다정한 배려도 없는 그 대답에 회담청의 대신들은 헛기침을 했다. 몇몇은 부채로 입을 가리며 눈살을 찌푸렸고, 쌍인제국 측 대신 하나는 옆 사람에게 낮게 뭐라 속삭였는데, 그 속삭임의 내용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예법도 모르는 야만인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서연은 오히려 그 무뚝뚝함이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위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금껏 상대해온 탑 안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정한 말로 서로를 옭아매는 자들이었으니, 이 투박한 대답 한 줄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선재하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재빠르게 채웠다. "두 분 다 처음이시니 다소 어색하신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혼인이란 원래 서서히 알아가는 것이지요." 지나치게 다정한 그 말투에 유겸은 옆으로 눈을 흘겼고, 이서연은 그 말속에서 이 남자가 이 혼담의 진짜 설계자임을 다시 확인했다. 선재하의 목소리는 회담청 안의 누구보다도 부드러웠는데, 그 부드러움이 오히려 이서연에게는 경계의 신호였다. 사람이 지나치게 예의 바를 때는, 대개 감춰야 할 것이 있는 법이었다. "선재하 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서연이 짧게 맞받으며 미소 지었는데, 그 미소는 다은이 보기에도 낯설 만큼 완벽하게 다듬어진 것이었다. 다은은 오랫동안 이서연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 미소가 진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조립된 것임을 한눈에 알아챘다. 공주님이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아셨던가, 다은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표면적인 대화는 예의 바르게 오갔으나, 회담청의 공기는 팽팽했다. 대신들의 형식적인 축사와 양국의 국호를 나열하는 문서 낭독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정작 그 자리의 주인공인 두 사람은 서로를 곁눈으로 가늠하고 있었다. 유겸은 이 결혼이 그저 3개월의 숨돌림 뒤에 잊힐 정략일 뿐이라 여겼고, 이서연은 그 3개월 안에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완성해야 한다는 계산을 이미 끝내 두고 있었다. 전쟁터로 돌아갈 남자에게 이 자리는 잠시 머무는 정거장이었을 뿐이나, 탑에서 벗어난 여자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서로가 상대의 진짜 얼굴을 전혀 모른 채 나눈 그 짧은 인사말 뒤로, 회담청 창밖에서는 때마침 불어온 바닷바람이 등불을 흔들었다. 등불의 그림자가 벽을 따라 길게 늘어졌다가 다시 오그라들기를 반복했는데, 그 흔들림 속에서 다은은 낮게 속삭였다. "공주님, 저 사람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경계가 반쯤 섞여 있었으나, 이서연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유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이제 막 시작된 게임의 첫수를 확인한 자의 서늘한 만족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만족감 뒤편으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작은 그림자 하나가 함께 스쳐 지나갔는데, 그것이 무엇을 예고하는 것인지는 아직 회담청 안의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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