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눈발이 성긴 계곡 사이, 강휘가 몸을 웅크리고 있던 바위틈으로 곽삼의 손이 스며들어 옷자락을 움켜쥔 것은 그가 미처 숨소리를 가라앉히기도 전의 일이었는데, 그 순간 강휘는 눈을 번쩍 뜨며 그 손목을 낚아채 비틀었고, 그 동작이 자신의 의지보다 먼저 몸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매끄럽게 이어져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몸은 여전히 얼어붙은 흙바닥처럼 무겁고 둔했으나, 손끝만은 오랜 세월 갈고닦은 습(習)을 잊지 않았으니, 그것이 바로 육신 칠단의 초라한 그릇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무언가였다.
으악!
곽삼이 짧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고, 그 소리를 들은 동료 도적 둘이 험상궂은 얼굴로 바위틈을 향해 달려왔는데, 그들의 허리춤에 매인 곡도가 눈빛보다 먼저 흉기임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걸음걸이마다 눈밭을 짓밟는 소리가 둔중하게 울려 강휘의 귀에 박혀들었다.
"이 자식, 안 죽었잖아!"
한 놈이 곡도를 뽑아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강휘는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다급히 천지건곤결의 기운을 끌어올려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는데, 그것이 바로 건곤일척(乾坤一擲)—마치 하늘과 땅을 손바닥 하나에 뒤집어 놓듯 상대의 힘을 그대로 되받아치는 초식이었다. 단전 깊은 곳에서 미약하게 남아 있던 진기가 실낱같이 손끝으로 흘러들었고, 그 흐름이 이토록 가늘고 위태로운데도 초식은 정확히 형(形)을 갖추었다.
쾅!
곡도와 손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계곡을 울렸고, 그 반동으로 도적의 손목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이며 곡도가 허공으로 튕겨 날아갔는데, 강휘 자신도 그 위력에 놀라 잠시 숨이 막혔으니, 이런 초라한 그릇으로도 이런 위력이 나온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튕겨 나간 곡도가 눈밭에 박히며 흰 눈가루를 흩뜨렸고, 그 짧은 순간 강휘의 눈앞으로 지난 천 년의 싸움들이 스쳐 지나갔으나, 지금 이 손은 그 시절의 손이 아니었다.
남은 도적 하나가 이를 갈며 다시 달려들었는데, 그 눈빛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함께 뒤엉켜 있었다.
쐐액!
곡도가 목덜미를 노리고 파고드는 순간, 강휘는 몸을 낮추며 상대의 다리를 걷어찼는데, 균형을 잃은 도적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자신의 곡도 위로 엎어졌고, 그 칼끝이 정확히 심장을 관통하는 소리가 축축하게 울렸다.
푹!
도적은 짧은 신음 한 번 내지 못하고 그대로 숨이 끊어졌으며, 그 몸이 눈밭 위로 쓰러지면서 붉은 피가 순백의 눈을 물들여갔는데, 그 붉음이 번지는 속도가 이상하게도 느리게만 느껴졌다.
강휘는 그 자리에 굳은 채 서서 자신의 손을, 그리고 눈앞에 널브러진 도적의 시신을 번갈아 바라보았는데, 그의 손이 저지른 첫 살인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온몸을 훑고 지나가며 손끝이 저절로 떨려왔다. 손바닥에는 아직 상대의 체온이 남아 있는 듯했고, 그 온기가 식어가는 감각이 소름처럼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천진대성으로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수와 요괴를 베어온 그였으나, 그것들은 언제나 명분과 위엄을 갖춘 싸움이었을 뿐이었고, 하늘의 뜻을 받아 악을 벌하는 자리에서 내린 칼이었으므로 그 손에는 늘 정당함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처럼 초라한 몸으로, 도망칠 곳도 없이 궁지에 몰려 벌인 살육에는 어떤 명분도 붙일 수 없었으므로, 그는 자신이 알던 위엄과 지금의 무력함 사이에 놓인 간극을 온몸으로 절감했다. 하늘을 짓누르던 팔 하나로 산을 무너뜨리던 시절의 그가, 이제는 도적 하나의 목숨을 빼앗고도 이토록 손을 떨어야 한다는 것이—그것이 곧 지금 그가 딛고 선 자리였다.
곽삼이 벌떡 일어나 도망치는 발소리가 멀어지고, 남아 있던 다른 도적도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며 사라졌지만, 강휘는 그 자리에서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시신 위로 내리는 눈발이 점점 짙어지며 핏자국을 서서히 덮어가는 것을 그는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계곡 아래에서 위로 훑고 올라왔고, 그 서늘한 기운이 목덜미를 스치는 순간에도 그는 미처 몸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 멀리 눈발 사이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으며, 그 걸음걸이에는 방금 도망친 도적들의 다급함과는 전혀 다른, 절도 있고 무거운 기세가 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