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스승님, 저 아직 안 죽었어요

5화

겨울이 깊어지며 태청산에는 눈이 그칠 새 없이 내렸고, 산문 전체가 은백색으로 뒤덮여 봉우리마다 인적조차 지워질 지경이었는데, 강휘가 물을 지고 장작을 패는 잡역의 일상도 그 눈발처럼 무겁게, 그리고 끝없이 쌓여만 갔다. 새벽마다 얼어붙은 우물에서 두레박을 끌어올릴 때면 손끝이 갈라지듯 아려왔고, 저녁이면 도끼로 통나무를 쪼개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겹겹이 앉았는데, 그 굳은살 하나하나가 이 몸이 원래 지녔던 유약함과는 다른 종류의 흔적임을 강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조필은 예전의 위세를 되찾으려는 듯 더욱 집요하게 강휘를 괴롭혔으며, 지나칠 때마다 일부러 발을 걸거나 물동이를 걷어차는 등 유치한 훼방을 서슴지 않았는데, 급기야 관리를 맡은 노집사 앞에서 강휘가 게으르고 불충하다는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 자는 이미 한 번 절벽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몸이라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합니다." 조필이 노집사 앞에서 태연하게 그렇게 고했을 때, 강휘는 마당 한쪽에서 장작을 패다 그 말을 들었는데, 도끼를 내려찍는 손끝이 잠시 멈춰 서는 것을 애써 억눌렀다. "게다가 밤마다 처소에서 이상한 소리를 낸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혹여 산문의 법도를 어기고 사이한 술법을 익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조필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조소가 섞여 있었으며, 그 말을 듣는 순간 강휘의 가슴 한편이 철렁 내려앉았는데, 아직 어젯밤의 시도를 누구에게도 들킨 적이 없다고 믿었기에 그 말이 그저 조필의 억측인지, 혹은 진짜로 무언가를 눈치챈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노집사는 흰 눈썹을 찌푸리며 강휘를 훑어보았고, 그 눈빛 속에는 오랜 세월 산문의 법도를 지켜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냉정한 저울질이 담겨 있었는데, 결국 다음 절기까지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잡역 명부에서 이름을 빼겠다는 통보를 내렸다.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자리가 없다. 그것이 산문의 법도다." 노집사의 목소리는 담담했으나 그 안에 어떤 냉담한 확신이 서려 있어, 강휘는 이 몸이 살아온 십 년의 세월이 얼마나 하찮게 취급되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 말은 곧 태청문에서의 마지막 발판마저 잃게 된다는 뜻이어서, 강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눈발이 어깨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으며 마치 이 몸의 처지를 조롱하듯 하얗게 쌓여갔다. 조필은 그런 강휘를 곁눈질로 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가 강휘의 등 뒤로 오래도록 따라붙는 것만 같았는데, 강휘는 이를 악물고 그 시선을 무시한 채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밤, 강휘는 처소에 홀로 앉아 천지건곤결의 구결을 다시 처음부터 되짚었는데, 한 글자 한 글자를 되새길수록 이 몸으로는 결코 정통 수련의 절차를 밟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졌다. 정통의 길이란 것은 씨앗을 심고 물을 주어 서서히 자라나게 하는 것과 같았으나, 이 몸의 그릇은 이미 오래전 뒤틀리고 갈라진 밭이었으니, 아무리 정성을 들인들 그 위에서 온전한 결실을 기대할 수 없었다. 강휘는 그 사실을 깨닫자, 오히려 홍몽진기의 근원적인 흐름을 역으로 끌어와 육신 자체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위험천만한 시도였다. 성인계 경지의 기운을 육신 칠단의 그릇에 억지로 흘려 넣는 일이었으므로, 자칫 단전이 파열되어 그대로 절명할 수도 있었으나, 강휘는 이미 노집사의 통보를 받은 이상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살아온 세월이 하찮게 취급되는 것을 다시 겪을 수는 없다는, 어떤 절박함이 강휘의 손끝을 움직이게 했다. 강휘는 이를 악물고 눈을 감은 채 단전 깊은 곳의 홍몽진기를 서서히 끌어올렸다. 우웅— 낮은 진동음이 처소 안을 은은하게 채웠고, 그 소리는 마치 얼어붙은 대지 아래에서 봄을 준비하는 뿌리들이 조용히 꿈틀거리는 것과도 같았는데, 창밖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그 진동에 맞춰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전신의 혈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에는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차갑게 식어갔고, 그 극단의 온도 차 속에서 강휘는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그 밤 강휘는 처음으로 몸속 깊은 곳에서 얼어붙었던 무언가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며, 새벽이 오기 전까지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얼어붙을 정도로 처소 안은 차가웠으나, 강휘의 내부에서는 그와 정반대의 열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으니, 이는 마치 겨울 한가운데 홀로 봄을 품은 나무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 미세한 진동이 처소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 눈밭 위에 낯선 발자국 하나가 강휘의 처소 창문 아래에 남아 있었는데, 그 발자국의 깊이와 보폭이 태청문의 어느 잡역 제자나 도인의 것과도 같지 않았으며, 발끝의 각도와 눈을 밟은 힘의 균일함이 오랜 세월 무공을 연마한 자의 것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노집사였다. 노집사는 그 발자국 앞에 서서 한동안 미간을 좁힌 채 말을 잃었는데, 밤새 내린 눈이 그 흔적을 온전히 덮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발자국의 주인이 이곳을 다녀간 시각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새벽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와 눈가루를 흩날렸고, 그 바람 속에서 노집사의 흰 눈썹이 파르르 떨렸는데,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어떤 경계심이 서서히 깨어나는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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