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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검을 쓰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마력 흐름을 읽는 버릇이 있는데, 나 이도현은 그 여자를 처음 국경 검문소에서 마주친 순간부터 그 버릇이 유난히 요란하게 반응하는 걸 느꼈다. 검문소라는 곳이 원래 그런 곳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지나가는 여행자들, 상인들, 순례자들 사이에서 대부분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잡음일 뿐인데, 그 여자가 통과하려는 순간 내 검이 손목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이 정도로 정제된 마력을 몸에 지니고도 감추는 법을 아는 인간이라니.' 흔한 여행자로 위장하려는 태도는 어설펐다. 옷차림은 국경 마을의 흔한 삼베옷이었고, 걸음걸이도 일부러 어눌하게 꾸민 듯 부자연스러웠는데, 그런 위장은 딱 봐도 며칠 전에 급하게 배운 흉내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안에 도는 마력만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었다. 명운국 쪽에서 넘어온 사람이라면 필시 신전 계열의 인물일 텐데, 그 정도 순도의 마력을 지닌 자가 통행증마저 제대로 없이 국경을 넘으려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오히려 흥미로운 퍼즐 조각처럼 다가왔다. '통행증도 없이 이 정도 마력을 들고 다니다니, 배짱인지 무모함인지.' 나는 검문소 관리에게 눈짓 한 번으로 그녀를 통과시켰고, 그녀는 내가 왜 자신을 봐줬는지도 모른 채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는데, 옆에 있던 부관이 "저 여자 뭔데 그냥 보내십니까" 하고 물었을 때 나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궁금한 걸 굳이 티 낼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검문소에서 그녀를 도와준 뒤로 은밀히 사람을 붙여 그녀의 행적을 살피게 했는데, 그 결과 그녀가 국경 마을에서 상단 짐꾼 자리를 구했다는 보고를 받고는 실소를 흘렸다. '저 정도 마력을 가지고 짐이나 나른다니, 아깝게 됐군.' 명운국 신전에서 그 정도 순도의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사제급 이상일 텐데, 그런 사람이 며칠 새 짐수레를 끌고 흙먼지 속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는 상상을 하니 어딘가 우습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심복이 가져온 보고서에는 그녀가 짐꾼 일을 하며 상단 사람들과 나눈 시시콜콜한 대화까지 적혀 있었는데, 나는 그걸 읽다가 문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어 서류를 덮었다. 국경 지역 관리인 내가 이름도 모르는 여행자 하나의 동선을 이렇게 세세히 캐고 있다는 게, 냉정히 보면 직무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다음 보고를 기다리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시장에서 그녀와 두 번째로 마주친 건 사실 완전한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향할 대열의 경로를 미리 파악해두었고, 마침 그 마을에 들를 일도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접점을 만들어낸 것에 가까웠다. 시장은 여느 국경 마을 시장답게 소란스러웠다. 말린 과일과 향료 냄새가 뒤섞이고, 상인들의 흥정 소리가 여기저기서 부딛혔는데, 나는 그 속에서 그녀가 상단 물건을 나르며 이마의 땀을 훔치는 모습을 발견했다. 상인과의 대화는 실제로 제국 내정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그 사이 몇 번이나 시선이 그녀 쪽으로 향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인이 세금 문제로 투덜대는 걸 듣는 척하면서도 내 눈은 자꾸 그녀의 손끝을, 짐을 나를 때마다 살짝 흘러나오는 미약한 마력의 잔재를 좇고 있었다. '이거 직업병이 아니라 다른 뭔가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자각이 들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그녀가 내 지도를 살피며 정체를 캐묻던 순간, 나는 진실을 밝히지 않고 애매하게 넘겼는데, 그건 단순히 신분을 숨기고 싶다는 습관적 경계심 때문이 아니라 이 여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금 더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이 지도, 어디서 구한 거예요?"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을 때, 나는 대수롭지 않은 척 대답했다. "제국의 일을 좀 봐주는 사람이라, 이런 것쯤은 쉽게 구합니다." '제국의 일을 좀 봐주는 사람이라니, 이 정도면 거짓말도 아니지.' 국경 관리라는 직책을 그렇게 뭉뚱그려 표현한 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느끼지 않아도 됐다. 그녀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묘하게 입을 삐죽였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고, 그 표정이 어쩐지 재미있어서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녀가 황도까지 간다고 말했을 때 내 표정이 순간 굳었다는 걸 나 자신도 뒤늦게 깨달았는데, 그건 황도에 요즘 감돌고 있는 불온한 공기 때문이었다. 최근 황궁 내부에서는 몇몇 대신들이 은밀히 파벌을 이루어 황위 계승 구도에 손을 대려 한다는 첩보가 끊이지 않았고, 그 중심에는 오래전 숙청되었어야 할 반역 세력의 잔당이 여전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국경을 지키는 관리 입장에서 황도의 정치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려야 정상인데, 요 몇 달간 올라오는 서신들은 그 거리감을 자꾸 좁혀오고 있었다. '하필 이런 시기에 저런 마력을 가진 여자가 황도로 들어온다니.' 명운국 신전 계열의 마력을 지닌 자가 하필 지금, 하필 황도로 향한다는 사실이 단순한 우연으로 넘겨지지가 않았다. 나는 우연을 믿지 않는 성격이다. 우연이라는 단어는 대개 준비가 부족한 자들이 사후에 붙이는 핑계일 뿐이라는 게 내 오랜 지론이었다. 나는 그녀가 그 소용돌이에 어떤 식으로든 얽혀들 가능성을 지우지 못한 채, 밤늦게 숙소로 돌아와 심복에게서 온 서신을 펼쳤다. 숙소는 국경 관리답게 화려할 것 없는 목조 건물이었고, 창밖으로는 마을의 등불이 하나둘 꺼져가고 있었다. 나는 촛대 하나를 끌어당겨 서신을 그 옆에 두고 읽기 시작했는데, 서신에는 황도 내 모 대신의 저택에서 수상한 회합이 있었다는 보고와 함께, 그 회합에 참석한 인물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이름을 하나씩 눌러 읽어가던 나는 그 명단 속에 낯익은 이름 하나가 섞여 있는 걸 발견한 순간 손끝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그 이름은 내가 가장 신뢰해야 할, 그러나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글자가 바뀔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 내가 잘못 읽은 건 아닐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종이 위의 글씨도 함께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 흔들림 속에서 오래전부터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어떤 진실이 서서히 형체를 갖추는 걸 느꼈다. 나는 서신을 접으며 잠시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았고, 그 어둠 속 어딘가에서 그녀가 탄 상단의 마차가 황도를 향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짐꾼 신분으로 위장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여자와, 황궁 깊숙한 곳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반역의 잔당. 이 두 개의 실이 언젠가 한 지점에서 엉킬 거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그 예감의 근거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라면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을 것이다. 그저 오랜 세월 검을 쥐고 살아온 자의 직감 같은 것이었다. '얽히게 하지 않는 게 맞는데.' 그렇게 생각했으면서도, 나는 이미 그녀의 다음 행적을 확인할 사람을 하나 더 붙이라는 명을 내리고 있었다. 부관을 불러 조용히 지시를 내리는 내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했지만, 명을 내리는 그 손끝에는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든 조급함이 배어 있었다는 걸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그날 밤 나는 그 모순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채, 서신 속 명단의 이름을 다시 한번 눌러 읽으며 이 조용한 평화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창밖의 어둠은 여전히 짙었고, 그 어둠 너머 어딘가에서 마차 바퀴가 흙길을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그 착각을 떨쳐내려 눈을 감았지만, 감은 눈 속에서도 그녀가 지도를 들여다보던 진지한 옆얼굴과, 명단 위에 적힌 낯익은 이름이 번갈아 떠올랐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얼굴이 어느 순간 하나의 사건 속에서 마주치게 될 거라는 확신이, 그날 밤 나를 끝내 잠들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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