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홀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나를 향한 손가락질로 바뀌었다.
방금까지도 화기애애하게 부채를 흔들며 담소를 나누던 영애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나를 마치 처음 보는 벌레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표정 전환 빠른 거 보니 다들 연기 지망생인가.'
영애들의 증언은 끊이지 않았다.
"저도 소은 영애가 서은하 영애 앞에서 울먹이는 걸 봤어요."
"맞아요, 그때 소은 영애 손목에 멍이 있었잖아요."
"저는 소은 영애가 밤새 울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시녀들 사이에서 다 아는 얘기예요."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마치 준비한 대본을 읊듯 이야기했다.
어색하지도, 서로 겹치지도 않게.
나는 그저 서 있었다.
반박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다들 짜기라도 한 거야, 뭐야.'
짜지 않았다면 이렇게 정교할 수가 없다.
소은이 뒤에서 얼마나 오래 준비했을지 짐작이 갔다.
못해도 한 달, 아니 어쩌면 그 이상.
'그동안 나는 뭐 했지. 아, 맞다. 얘 밥 챙겨주고 있었지.'
허탈함이 몰려왔지만 겉으로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런 데서 흔들리면 그대로 끝장이라는 걸,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침착해. 표정 무너지면 그대로 끝이야.'
홀 안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마치 내가 무슨 말을 더 할지 기다리는 것처럼. 하지만 그 눈빛에는 기대가 아니라 조소가 섞여 있었다.
"그런 적 없다니요."
소은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언니, 저 무서웠어요. 정말로요……"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그 흔들림조차 계산된 듣기 좋은 흔들림이었다. 마치 성우가 대본을 읽듯이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한 떨림으로.
'저 눈물 진짜 예술이네. 상 줘야 되는 거 아니야.'
손수건 하나 없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더 가엾어 보이도록 계산된 동작이라는 걸, 나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소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분홍빛 눈동자 속에 담긴 것은 슬픔이 아니라, 승리의 확신이었다.
순간적으로 스치는 그 눈빛을 나만 본 것 같았다.
찰나였다. 하지만 분명했다.
저건 두려움에 떠는 눈이 아니었다. 사냥을 마친 뒤 마지막 숨통을 조이기 직전의 눈빛이었다.
"증거가 있습니까."
나는 물었다.
"저를 학대했다고 증언하시는 분들, 그 증거가 있으신가요."
순간 홀이 조용해졌다.
증언한 영애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증거는 없지.'
말로 만들어진 증언은 아무리 많아도 결국 말일 뿐이다. 손목의 멍도, 밤새 울었다는 소문도, 결국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 실체가 없었다.
'그럼 이제 뭐, 다들 뻘쭘해서 넘어가겠지.'
착각이었다.
그때, 아버지가 홀 안으로 들어왔다.
서 공작.
큰 키에 은발이 섞인 머리, 늘 감정을 알 수 없는 눈을 가진 남자.
내 아버지였다.
발걸음 소리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가 걸어오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비켰다. 홀 안의 무게가 그 한 사람 때문에 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 안도했다.
'아버지가 오셨어. 이제 증명할 수 있어.'
아버지라면, 내가 소은을 학대한 적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같은 지붕 아래서 오 년을 함께 살았으니까.
식사 시간마다, 명절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소은에게 손끝 하나 대는 것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보지 않았다.
소은에게 먼저 다가가 그 어깨를 감쌌다.
"많이 놀랐겠구나."
그 한마디에, 나는 뭔가가 뚝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마음속에서.
물리적인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들렸다.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다가 결국 끊어지는 소리 같은 것.
"아버지."
나는 겨우 그를 불렀다.
"저는 정말 그런 적 없습니다."
아버지가 그제야 나를 돌아보았다.
그 눈빛에 담긴 것은, 분노도 실망도 아니었다.
그저 무심함이었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화는 적어도 관심의 증거니까. 지금 저 눈빛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도 않다는 눈빛이었다.
"은하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이렇게 많은 사람이 증언을 하는데, 다 거짓이라는 거냐."
'그래, 다 거짓이야. 아버지도 알잖아.'
나는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목구멍 어딘가에서 말이 걸려서 나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다섯 살 때 소은이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나는 늘 언니였고, 늘 이해해야 하는 쪽이었다. 그 관계가 오늘 뒤바뀐 것뿐이었다.
"소은이가 너보다 어리고, 이 집에 온 지 오 년밖에 안 됐다. 네가 조금 더 이해해줬어야지."
'이해? 이해라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웃지 않았다.
웃으면 진짜 미친 사람이 되는 거니까.
지난 오 년간의 이해가 부족했다는 소리를 이 자리에서 들으니, 뭔가 억울함을 넘어서 우스울 지경이었다. 매번 참았던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소은이 내 방에서 물건을 가져가도, 내 다과회를 망쳐도, 나는 늘 웃으며 넘겼다. 그런데 지금 이해가 부족했다는 말을 듣는 처지였다.
이시우가 다시 나섰다.
"이 정도면 명백하다고 봅니다. 서은하 양의 혼약을 파기하고, 왕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국외로 추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외 추방.
그 단어가 홀 안에 울리는 순간, 나는 짧게 숨을 멈췄다.
'추방이라니. 진짜로 그렇게까지.'
소설 속에서 서은하는 정확히 이 시점에 추방을 당했다.
그리고 그 이후, 다온 왕국은 서서히 악마의 힘에 잠식되어갔다.
서은하가 홀로 정화하고 있던 악마의 보석이, 그녀가 사라지자 폭주했기 때문이었다.
보석은 왕궁 지하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었고, 매달 초하루마다 정화를 하지 않으면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을 통해 악마의 기운이 새어 나온다는 설정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오직 서은하 하나뿐이었다.
'나 없으면 이 나라 망하는데.'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자랑이 아니라, 진짜로.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증거도 없고, 설명하려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헛소리로 몰려 더 나쁜 상황이 될 게 뻔했다.
'그러게 좀 조심하지, 왜 이렇게 서두르실까.'
이시우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저 남자는 지금 자기가 나라를 망칠 판결을 내리는 것도 모르고 저렇게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니.
"판결은 사흘 뒤, 국왕 전하 앞에서 정식으로 내려질 것입니다."
이시우가 그렇게 선언하며 자리에서 내려왔다.
소은은 여전히 아버지의 품에 안겨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 뒤로 슬쩍 보이는 눈빛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분명했다.
나는 홀로 남았다.
주변의 시선이 전부 나를 향해 있었지만, 그중 누구도 내 편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 누구도 나서서 편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다들 그렇지. 나서봤자 손해니까.'
이해는 됐다. 나라도 저 자리에 있었으면 굳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사흘.'
사흘 안에 뭘 할 수 있을까.
결백을 증명할 시간도, 방법도 없었다.
증인도 없고, 물증도 없었다. 소은이 남긴 것은 오직 눈물과 말뿐이었고, 나는 그 말들을 뒤집을 만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등에 흐르던 식은땀이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부채를 접었다.
손끝이 떨렸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홀을 빠져나갔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뒤통수에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홀 문을 지나 복도로 나올 때까지, 그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목덜미에 걸린 목걸이가 이상하게 뜨거워졌다.
마치 심장처럼, 쿵, 쿵, 뛰는 것 같은 감각.
처음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끝으로 목걸이를 만진 순간, 그 열기는 착각이 아니었다. 손바닥이 델 것 같은 온도였다.
'설마.'
나는 걸음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