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청류산 정상엔 늘 안개가 걸려 있었다. 그 안개를 뚫고 매일 아침 도끼질 소리가 울렸는데, 이서하가 장작을 패는 소리였다. 열일곱 해를 살아오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일이었다.
도끼가 허공을 가르는 궤적은 매일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결과는 늘 같았다. 장작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지고, 그 반쪼가리가 다시 반으로 갈라지고, 그렇게 손바닥만 한 조각이 될 때까지 이서하는 멈추지 않았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턱 끝에 매달렸다가 떨어졌다. 떨어진 자리에 흙이 젖었다.
퍽!
도끼가 다시 한 번 장작을 내리쳤다. 나뭇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손목이 아직 굳었구나." 곽태산이 마루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다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나무라는 기색이 없었다. 다만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제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데요." 이서하가 도끼를 내려놓으며 대꾸했다.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사부를 바라보았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곽태산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지팡이도 없이 걷는 걸음이 스물의 청년보다 가벼웠다. 그는 이서하의 손목을 잡아 가볍게 흔들었다. "힘을 준 채로 흘리면, 기는 몸 안에서 부딪치기만 하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또 저 말이다.' 이서하는 속으로 그렇게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곽태산의 가르침은 늘 같은 문장으로 시작해 다른 결론으로 끝나곤 했다. 힘을 흘려라. 흘리되 놓지 마라. 그 말을 처음 들은 게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곽태산의 눈빛이 조금 더 깊어졌다는 것뿐이었다.
"다시 해보아라." 곽태산이 손목을 놓으며 말했다.
이서하는 도끼를 다시 들었다. 이번엔 사부가 말한 대로, 팔에 준 힘을 끝까지 쥐지 않고 손목에서 흘려보내듯 내리쳤다.
쩍-
장작이 갈라지는 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깊었다. 이서하는 그 차이를 느꼈지만, 정확히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조금 나아졌다." 곽태산이 짧게 평했다. 칭찬이라기엔 인색했지만, 곽태산에게서 나온 말 중 가장 후한 평가였다.
이서하는 청류산에서 태어난 게 아니었다. 곽태산이 산 아래 어느 겨울, 버려진 아이를 주워 데려왔다고 했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부모가 누구인지, 어느 마을에서 왔는지, 곽태산은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다. 물어본 적은 있었다. 대답은 늘 같았다. "지금은 알 필요 없다." 그 말 뒤엔 언제나 침묵이 이어졌고, 이서하는 그 침묵의 무게를 감히 재려 하지 않았다.
"사부님." 이서하가 물었다. "저는 왜 여기서만 살아야 합니까."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 살고 있는 거다." 곽태산이 짧게 답했다. "산 아래는 아직 네가 감당할 곳이 아니야."
"언제쯤이면 감당할 수 있게 됩니까."
곽태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먼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 침묵이 무언가를 삼키고 있다는 것만은 이서하도 느낄 수 있었다. 곽태산의 눈가 주름이 평소보다 깊어 보였다. 그것이 나이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이서하는 구분할 수 없었다.
"산 아래 사람들은." 곽태산이 문득 입을 열었다. "선한 얼굴로 나쁜 짓을 하고, 나쁜 얼굴로 선한 짓을 한다. 그 둘을 가려낼 눈이 없으면 산을 내려가는 것 자체가 독이다."
"저는 아직 그 눈이 없습니까."
"아직은." 곽태산이 그렇게만 답했다.
'사부님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서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캐묻지 않았다. 캐묻지 않는 것도 그가 배운 것 중 하나였다. 곽태산은 늘 말했다. '묻지 않아도 알게 될 날이 온다. 그날을 기다리는 법을 배워라.' 이서하는 그 가르침을 따랐고, 지금까지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
그날 오후, 곽태산은 짐을 꾸렸다. 약초 자루를 어깨에 걸치고 지팡이를 짚었다. 자루 안에는 산 곳곳에서 캐 모은 약초들이 잘 마른 채로 들어 있었다. 이서하가 여름내 캐고 말린 것들이었다.
"산 아래 다녀오마." 그가 말했다. "청류촌에 약을 팔고 며칠 뒤 돌아올 것이다."
"저도 가겠습니다."
"안 된다." 곽태산의 어조는 단호했다. "산을 지켜라. 그것이 네 몫이다."
"산에 지킬 게 무엇이 있습니까. 짐승도, 사람도 오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니 지켜야 한다." 곽태산이 말했다. 그 말의 논리를 이서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이서하는 더 묻지 않았다. 사부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 그것이 그가 아는 유일한 예의였다. 대신 곽태산의 짐을 대신 들어 마당까지 옮겨주었다. 자루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이렇게 무거운 걸 혼자 지고 가시렵니까."
"평생 지고 다닌 것이다." 곽태산이 웃었다. 드물게 보이는 웃음이었다.
곽태산은 떠나기 전 이서하의 어깨를 한 번 짚었다. 손바닥이 두툼하고 거칠었다. 그 손이 어깨에 닿았을 때 이서하는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오래 머문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끝이 어깨뼈를 짚듯이 힘이 들어가 있었다.
"네 안의 기운은 남들과 다르다." 곽태산이 낮게 말했다. "언젠가 그것이 드러날 날이 온다. 그날이 오면, 겁먹지 마라. 그것이 곧 너다."
"무슨 말씀이신지..."
"때가 되면 알게 된다." 곽태산은 더 말하지 않고 산길을 내려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이서하는 왠지 모를 불안을 느꼈다. 평소와 다른 말이었다. 평소와 다른 손길이었다. 곽태산의 걸음이 안개 속으로 하나씩 흐려지는 걸 지켜보다가, 이서하는 마당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별일 아닐 것이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도끼를 들었다. 도끼질을 시작했지만, 평소와 같은 박자가 나오지 않았다. 손목에서 흘려야 할 힘이 자꾸 어딘가에서 걸렸다.
+++
첫날은 평소와 같이 흘러갔다. 아침에 도끼질을 하고, 낮에는 약초를 캐고, 저녁엔 홀로 밥을 지었다. 곽태산이 없는 부엌은 유난히 넓게 느껴졌다.
이튿날도 비슷했다. 다만 이서하는 산길이 시작되는 초입까지 몇 번이나 내려가 서성였다. 사부가 돌아올 리 없는 시각이란 걸 알면서도 발이 그쪽으로 향했다.
사흘이 지나도 곽태산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서하는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청류촌까지 내려가 약을 파는 데는 원래 며칠이 걸렸다. 곽태산은 흥정을 서두르는 법이 없었고, 값을 깎으려는 상인을 상대로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나흘째 되던 날, 산길 아래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뛰어오는 걸음이었다. 평소 곽태산의 걸음과는 완전히 다른, 급하고 거친 소리였다.
이서하는 도끼를 내려놓고 마당으로 나섰다.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관졸 복색을 한 사내가 숨을 몰아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이마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관졸의 옷깃엔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산길을 뛰어 오른 흔적이었다.
"여기가... 곽 노인의 거처요?" 사내가 물었다. 숨이 아직 고르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서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관졸은 잠시 숨을 고르며 이서하를 훑어보았다. 그 시선엔 동정도 무게감도 없었다. 그저 심부름을 온 자의 무심함만 있었다.
"청류촌 저잣거리에서... 노인 한 분이 변사체로 발견됐소." 관졸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품에서 나온 목패에 이 산의 이름이 적혀 있었소."
이서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손끝부터 감각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도끼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려, 도끼는 이미 발치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그럴 리가..." 그의 입에서 겨우 나온 말이었다. 목소리가 스스로의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들렸다.
"이름이 곽태산이라 하던데." 관졸이 소매에서 꾸깃꾸깃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관아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였다. "맞소?"
"...맞습니다." 이서하가 겨우 답했다.
관졸은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의 표정엔 동정도, 무게감도 없었다. 그저 귀찮은 심부름을 마쳤다는 안도만 있었다.
"내려가 확인하시오. 관아에서 시신을 맡아두고 있소. 사흘 안에 찾아가지 않으면 무연고로 처리한다 했으니, 서두르는 게 좋을 거요."
"어찌 죽었습니까." 이서하가 물었다. 목소리에 겨우 힘을 실었다.
"그건 나도 모르오." 관졸이 어깨를 으쓱했다. "관아에서도 정확히 밝히지 못했다고 들었소. 그냥... 저잣거리 뒷골목에서 발견됐다고만 알고 있소."
관졸은 그 말을 남기고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그의 뒷모습이 안개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이서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관졸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이서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부님이 죽었다.' 그 사실이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됐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이서하는 곽태산이 떠나기 직전 짚었던 어깨를 손으로 짚어보았다. 그 손길의 무게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네 안의 기운은 남들과 다르다. 언젠가 그것이 드러날 날이 온다. 그날이 오면, 겁먹지 마라.' 그 말이 새삼 다른 의미로 들렸다. 마치 마지막 인사처럼.
산바람이 불었다. 평소라면 시원했을 그 바람이, 오늘은 이상하게 차가웠다. 안개는 여전히 산 정상을 감싸고 있었고, 그 안개 속으로 곽태산이 걸어간 산길만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 이서하는 그 빈 산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발치에 떨어진 도끼를 주워 들었다. 산을 내려갈 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