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그 알림창을 다시 보기 위해 정말 못 할 짓 없이 다 해봤다. 절벽까지는 아니어도 마을 뒤편 낮은 언덕에서 몸을 던지듯 굴러도 보고, 사흘을 굶어 정신이 아득해질 때까지 버텨도 보고, 심지어 밤새 눈도 깜박이지 않고 어둠 속 한 점을 노려보기도 했다.
첫 번째, 언덕에서 구르기.
무릎이 찢어졌다. 정확히는 다시 찢어졌다. 이미 한 번 딱지가 앉았던 자리가 또 벌어지면서 피가 배어 나왔고, 마을 노인 하나가 지나가다가 “저 아 또 저러네” 하며 혀를 찼다. 나는 흙바닥에 앉아 무릎을 붙잡고 씨발, 씨발, 하고 이를 갈았다.
두 번째, 굶기.
사흘째 되던 날, 시야가 흐려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결국 마당 한복판에서 픽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때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물그릇을 들고 내 얼굴에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다. “애가 왜 이렇게 삐쩍 말랐대” 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창을 보려다 진짜로 뒤지겠구나.
세 번째, 안 자고 어둠 노려보기.
이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 밤새 눈 하나 깜박이지 않으려고 안구를 억지로 벌리고 버텼는데, 다음 날 아침 눈이 새빨갛게 부어올라서 지나가던 꼬맹이들이 나를 보고 “좀비다!” 하며 도망갔다. 좀비. 씨발, 좀비라니.
결과는 처참했다. 무릎은 다시 찢어졌고, 어지럼증에 몇 번이나 쓰러졌으며, 눈은 충혈되어 좀비 취급을 받았다. 소득은, 없었다.
씨발, 진짜 헛것을 본 건가.
그렇게 자조하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어느 오후, 마을 공터에서 아이들 여럿이 모여 이상한 동작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두 팔을 크게 휘돌리고, 무릎을 살짝 굽힌 채 허리를 곧게 세우고,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며 정형화된 자세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그냥 체조인가 싶었는데, 아이들 뒤에 서 있던 어른 한 명이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숨은 배꼽 아래로! 어깨에 힘 빼고! 그게 무공의 기초 호흡법이다, 이놈들아!”
무공.
그 두 글자가 귀에 꽂히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이 세계에는 진짜로 무공이라는 게 존재했다. 소설이나 게임에서나 보던 단어가 눈앞에서 아이들 훈육용 체조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반가웠다.
나는 담벼락 뒤에 몸을 숨긴 채 그 동작을 눈에 담았다. 팔을 어떤 각도로 휘두르는지, 숨을 어느 박자에 맞춰 들이쉬고 내쉬는지, 발은 어디에 두는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지겨워하며 딴짓을 할 때도 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 저 어른이 “다시! 처음부터!” 하고 소리칠 때마다 나는 속으로 그 동작을 따라 그렸다.
밤이 되어 사람이 없는 뒷산으로 올라갔다. 달빛만 겨우 스며드는 그곳에서 나는 낮에 본 동작을 혼자 따라해 봤다.
결과는 역시나 처참했다.
첫 시도에서 균형을 잃고 그대로 자빠졌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숨을 잘못 쉬어 사레들려 한참을 기침했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팔을 억지로 꺾는 방향으로 휘두르다가 인대가 삐끗해서 손목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불운은 성실함을 배신했다.
이 몸뚱이는 정말로 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폐물이었고, 흉내조차 제대로 안 됐다. 나는 흙바닥에 널브러진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별이 유난히 많이 뜬 밤이었는데, 그게 더 서글펐다. 이렇게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서 나는 손목을 붙잡고 낑낑거리고 있다니.
이러다가 정말 이 시골 마을 뒷산에서 조용히 죽어 나가겠구나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 흔적도 없이, 무공이라는 단어에 흥분해서 팔이나 삐끗한 채로.
그날 밤, 열에 들뜬 채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삐끗한 손목이 욱신거렸고 무릎의 상처 자리도 따끔거렸는데, 그 통증들 사이로 또 그 창이 떠올랐다.
이번엔 단순한 알림이 아니었다. 실제로 여러 줄의 대화가 흐르는 화면이었다.
[운룡 : 오늘 삼계 초식 세 번째 관문 통과함ㅋㅋ]
[백우 : 축하 ㄷㄷ 나는 아직 이계 후기에서 못 벗어남]
[적혈랑 : 형들 다 미쳤네 나는 아직 입미경임]
[운룡 : 입미경이면 아직 갈 길 멀었지 ㅋㅋ 힘내라]
[백우 : ㅋㅋㅋ 적혈랑 힘내라]
[적혈랑 : 씨발 다들 놀리기만 하고]
나는 그 대화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입미경, 이계, 삼계. 낯선 단어들이었지만 문맥상 무공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저들은 어딘가에서 실제로 저 경지를 밟고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저 대화창을 향해 손가락을 뻗어 뭐라도 눌러보려 했다. 아이콘 같은 걸 찾아 톡톡 두드려도 보고, 화면을 밀듯이 손을 휘저어도 보았지만, 손가락은 그저 허공을 휘저을 뿐 아무 반응도 없었다.
입력이 안 돼.
씨발, 이게 뭐야 진짜. 나는 이불을 걷어차며 속으로 욕을 삼켰다. 보이기만 하고 만질 수는 없다니, 이런 병신 같은 시스템이 어디 있어.
답답함에 이를 악물고 있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스쳤다. 손가락으로 누르는 게 아니라면, 몸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까 뒷산에서 그렇게 자빠지고 삐끗하면서도 흉내 냈던 그 호흡법.
나는 낮에 봤던 그 호흡법을 다시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배꼽 아래 어딘가로 숨을 밀어 넣는다는 감각으로, 최대한 정확하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쉬어 보았다.
그 순간 명치 아래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마치 스마트폰이 무음으로 짧게 울린 것 같은, 손끝에 닿을 듯 말 듯한 감각이었다.
뭐야, 이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다시 채팅창을 확인했지만 대화는 그대로였다. 아무 변화도 없었다. 운룡도, 백우도, 적혈랑도 여전히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창은 정지된 사진처럼 고요했다.
그런데 분명 뭔가 반응이 있었다.
착각이었을까. 손목이 아파서 헛것을 느낀 걸까. 나는 확신할 수 없는 그 미세한 떨림 하나를 붙잡고, 다시 한번 같은 자세로 눈을 감고 같은 호흡을 반복했다. 배꼽 아래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번엔 명치 아래가 아니라 창 전체가 옅게 깜박였다.
정말 우연일까?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고, 벽에 걸린 낡은 등불 하나만이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손목의 통증도, 무릎의 상처도 그 순간만큼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저 창이, 저 옅은 깜박임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세 번째로 시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손이 떨려서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만약 이번에도 반응이 있다면. 만약 이게 착각이 아니라면.
나는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